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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ju Kim
- @fjvbn20031
들어가며 — 「시민 케인」을 세 번 껐습니다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시민 케인」을 세 번 껐습니다. 20분쯤에서 한 번, 40분쯤에서 두 번. 매번 "역시 나는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끝났습니다.
네 번째에 성공한 이유는 제가 갑자기 안목이 생겨서가 아닙니다. 순서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이에 다른 흑백영화 대여섯 편을 봤고, 흑백 화면의 인물을 구별하는 데 익숙해졌고, 1940년대 배우들의 발성이 왜 그렇게 연극적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같은 영화가 전혀 다르게 굴러갔습니다.
명작 목록은 이미 세상에 넘칩니다. 부족한 것은 어떤 순서로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디서 꺼도 되는가입니다. 이 글은 25편을 순위가 아니라 초보 관객이 실제로 부딪히는 다섯 가지 문제로 나눕니다. 줄거리는 전제 이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구조가 궁금해지면 3막 구조 편이나 캐릭터 아크 편이 다음 정거장입니다. 이 글은 그 전 단계, 그러니까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순위표가 입문에 쓸모없는 이유
명작 순위표는 대개 이미 100편쯤 본 사람들이 투표한 결과입니다. 영국 영화협회(BFI)가 발행하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2022년 전 세계 비평가·큐레이터·연구자 1,6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는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이 1위에 올랐습니다(집계 결과). 훌륭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201분 동안 한 여성의 가사 노동을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따라갑니다. 첫 영화로 이걸 고르는 것은, 등산이 처음인 사람에게 히말라야 원정대 명단을 건네는 것과 같습니다.
순위표는 정점을 알려 주지만 경사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입문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점이 아니라 경사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순위 대신 다음 표처럼 "지금 당신이 겪는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 지금 당신의 상태 | 첫 편 | 두 번째 | 세 번째 |
|---|---|---|---|
| 흑백을 30분 이상 못 본다 | 「12인의 성난 사람들」 | 「제3의 사나이」 | 「라쇼몽」 |
| 느린 영화에서 계속 딴생각이 난다 | 「화양연화」 | 「동경 이야기」 | 「클로즈업」 |
| 요즘 장르물의 뿌리가 궁금하다 | 「에이리언」 | 「이중 배상」 | 「7인의 사무라이」 |
| 영화가 형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보고 싶다 | 「네 멋대로 해라」 | 「시민 케인」 | 「페르소나」 |
| 할리우드 밖을 거의 못 봤다 | 「하녀」 | 「잊혀진 사람들」 | 「투키 부키」 |
가로줄 하나만 고르시면 됩니다. 세 편을 다 보고 나서 다음 줄로 넘어가도 늦지 않습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래에 적은 러닝타임은 어림값입니다. 고전 영화는 극장 개봉판, 해외 수출판, 복원본이 제각각이고 무성영화는 상영 속도에 따라 길이가 달라집니다. 몇 분 차이는 판본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 1 — 흑백이 견뎌지지 않을 때
흑백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입니다. 인물 구별이 안 되고, 화면에서 눈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대사 톤이 과장돼 들립니다. 이건 안목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의 문제이고, 대여섯 편이면 대체로 끝납니다. 그 대여섯 편은 짧고 이야기가 선명한 것으로 고르는 게 맞습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 1957 · 약 96분
배심원 열두 명이 한 방에서 평결을 논의하는 이야기입니다. 장소가 거의 바뀌지 않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어서, 흑백 적응용 첫 영화로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인물이 열둘이나 되지만 각자 앉은 자리가 정해져 있어 얼굴이 헷갈리지 않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대사가 곧 액션인 영화를 못 견디는 분. 폭발도 추격도 없고, 사람들이 서서 말싸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3의 사나이」 캐럴 리드 · 1949 · 약 104분(영국판)
전후 빈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입니다. 기울어진 카메라 앵글과 젖은 돌바닥에 반사되는 빛이 유명해서, "흑백은 색이 빠진 화면이 아니라 다른 재료"라는 걸 처음 체감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치터 연주로 된 음악도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주인공이 계속 헤매고 다니는 구조를 답답해하는 분. 중반까지 사건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라쇼몽」 구로사와 아키라 · 1950 · 약 88분
같은 사건을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르게 증언합니다. 88분이라는 짧은 길이 안에서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개념을 완성해 버린 영화라, 이후 수십 년치 드라마와 소설이 여기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결말에서 진상을 확정해 주지 않으면 화가 나는 분. 이 영화는 끝까지 답을 정해 주지 않습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 빌리 와일더 · 1959 · 약 121분
고전 코미디가 지금도 웃기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영화입니다. 1959년 작품인데 대사 리듬이 현대 시트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옛날 영화는 느리다"는 편견을 가장 빨리 깨 줍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시대적 성 관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에서 웃음이 멈추는 분. 오늘의 기준으로 불편한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전거 도둑」 비토리오 데 시카 · 1948 · 약 89분
전후 로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다닙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보고 나면 며칠 남습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이 한 편을 보는 게 빠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감정적으로 소진돼 있는 시기. 이 영화는 관객에게 출구를 주지 않습니다.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미루셔도 됩니다.
문제 2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느린 영화가 지루하지 않아지는 순간은 대체로 관찰 대상을 바꿨을 때 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를 계속 물으면 느린 영화는 실패합니다. 대신 "지금 화면 안에서 무엇이 조금씩 변하고 있지"를 물으면 갑자기 밀도가 생깁니다. 사람의 자세, 빛의 각도, 반복되는 동작에서 어긋나는 한 번.
한 가지 실용적인 요령이 있습니다. 느린 영화는 피곤한 밤에 보지 마십시오. 대부분의 "지루하다"는 사실 "졸리다"입니다.
「화양연화」 왕가위 · 2000 · 약 98분
1960년대 홍콩, 옆집에 사는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사이트 앤드 사운드」 2022년 투표에서 5위에 올랐는데, 느린 영화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음악과 색채가 워낙 강해서 이야기를 놓쳐도 화면이 계속 붙듭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인물이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는 분. 이 영화는 침묵이 사건입니다.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 1953 · 약 136분
노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찾아갑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오즈는 카메라를 다다미 높이에 고정해 두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이 고정된 시선이 30분쯤 지나면 이상하게 편안해집니다. 가족에 관해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잔인하게 정확한 축에 듭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는 분.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지금 진행형으로 힘든 분에게는 꽤 아픈 영화입니다.
「클로즈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1990 · 약 98분
실제로 있었던 사칭 사건을, 그 사건의 당사자들이 직접 자기 자신을 연기하며 재현합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을 이보다 우아하게 보여 준 영화는 드뭅니다. 이란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에도 좋은 첫 편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법정 장면의 긴 대화를 자막으로 따라가는 게 힘든 분. 정보량이 많고 화면은 거의 정적입니다.
「스토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 1979 · 약 161분
세 남자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금지 구역으로 들어갑니다. SF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신앙과 욕망에 관한 철학 대화극입니다. 화면의 질감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대부분의 사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첫 30분에서 안 맞는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끄셔도 됩니다. 나중에 다시 오면 됩니다.
「잔느 딜망」 샹탈 아케르만 · 1975 · 약 201분
한 여성의 사흘치 일상을 거의 생략 없이 따라갑니다. 감자를 깎고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정리합니다. 반복이 완벽할수록 아주 작은 어긋남이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원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대다수. 이 영화는 입문작이 아니라 한참 뒤에 오는 목적지입니다. 앞의 24편을 다 보고 나서 오셔도 늦지 않습니다.
문제 3 — 장르의 원형이 궁금할 때
요즘 보는 스릴러, 액션, SF의 문법은 대부분 어딘가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입니다. 원형을 보면 두 가지가 생깁니다. 첫째, 최근 작품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보입니다. 둘째, 무엇을 안 하기로 했는지가 보입니다. 두 번째가 더 재미있습니다.
「이중 배상」 빌리 와일더 · 1944 · 약 107분
보험 설계사와 한 여자가 범죄를 공모합니다. 필름 누아르의 요소가 거의 다 들어 있는 표본 같은 작품입니다. 결말을 앞에서 알려 주고 시작하는데도 긴장이 유지되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하드보일드 특유의 냉소적 내레이션을 느끼하다고 느끼는 분. 취향이 갈리는 문체입니다.
「현기증」 앨프리드 히치콕 · 1958 · 약 128분
고소공포증이 있는 전직 형사가 한 여자를 미행합니다. 서스펜스라는 감정을 기술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이고, 앞서 말한 2022년 투표에서 2위였습니다. 전반부의 느린 미행 장면을 견디면 후반부의 보상이 큽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면 못 견디는 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상당히 불쾌한 인물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 구로사와 아키라 · 1954 · 약 207분
농민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무라이를 고용합니다. "팀을 모아 임무를 수행한다"는 구조의 원형이고, 이후 서부극·강도물·슈퍼히어로물이 계속 빌려 쓰고 있습니다. 207분이지만 체감은 훨씬 짧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3시간 반을 한 번에 앉아 있기 힘든 분. 이 영화는 원래 중간 휴식이 있는 상영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니, 나눠 보셔도 됩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세르조 레오네 · 1968 · 약 165분
철도가 들어오는 서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서부극의 관습을 알고 있는 관객을 상대로 그 관습을 늘이고 비틉니다. 오프닝의 기차역 장면 하나만으로도 "긴장은 시간으로 만든다"는 명제를 이해하게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서부극을 한 편도 본 적이 없는 분. 이 영화는 사실상 서부극 팬을 위한 후식이라, 앞에 존 포드나 다른 서부극이 한 편쯤 있어야 제맛입니다.
「대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1972 · 약 175분
이탈리아계 범죄 조직 가문의 이야기입니다. 워낙 많이 인용돼서 이미 다 아는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사무적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가족 사업의 회계처럼 다뤄지는 톤이 이 영화의 발명품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인물 이름과 관계도를 따라가는 게 힘든 분. 초반 결혼식 장면에 등장인물이 몰려 나옵니다. 한 번 놓쳐도 다시 따라잡을 수 있으니 멈추지 말고 밀고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 1979 · 약 117분(극장판)
우주 화물선의 승무원들이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마주칩니다. SF와 호러를 결합한 방식이 이후 40여 년의 표준이 됐습니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특수효과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보여 주지 않는 선택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공포 자체를 못 견디는 분. 다만 이 영화의 공포는 놀래키기보다 압박에 가깝습니다. 호러의 심리 편에서 다룬 원리가 거의 교과서적으로 적용됩니다.
문제 4 — 형식 자체가 내용인 영화
여기부터는 "무슨 이야기인가"보다 "왜 이렇게 찍었는가"가 재미의 중심입니다. 이 계열은 줄거리 요약이 유난히 무의미해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먼저 읽으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시민 케인」 오슨 웰스 · 1941 · 약 119분
한 언론 재벌의 생애를 여러 사람의 회고로 재구성합니다. 딥 포커스 촬영, 비선형 구성, 시간을 압축하는 편집 등 지금은 당연해진 기법들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문제는 너무 당연해져서 처음 보면 평범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저 같은 사람. 흑백 대여섯 편을 거친 뒤에 오시면 확실히 다릅니다. 첫 영화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 지가 베르토프 · 1929 · 약 68분
도시의 하루를 찍은 무성 기록영화인데, 등장인물도 자막도 이야기도 없습니다. 대신 편집이 주인공입니다. 68분이라 부담이 적고, "영화는 카메라가 아니라 편집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제를 몸으로 알게 해 줍니다. 배경음악 판본이 여러 가지라 취향에 맞는 걸 고르시면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이야기가 없으면 집중이 안 되는 분. 이건 영화라기보다 시각적 음악에 가깝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 장뤽 고다르 · 1960 · 약 90분
좀도둑과 미국인 유학생이 파리를 돌아다닙니다. 갑자기 프레임이 튀는 점프컷이 유명한데, 당시로서는 문법 파괴였고 지금은 뮤직비디오와 광고의 기본기가 됐습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입구로 가장 짧고 가볍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편집이 매끄럽지 않으면 불편한 분. 그리고 두 주인공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견디셔야 합니다.
「페르소나」 잉마르 베리만 · 1966 · 약 83분
말을 하지 않게 된 배우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두 사람이 섬에서 지냅니다. 83분 동안 두 얼굴이 서서히 겹쳐지는데, 영화가 자기 자신이 필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갑니다. 짧아서 오히려 실험작 중 가장 접근하기 좋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해석이 열려 있는 결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분. 그리고 초반 몇 분에 강한 이미지가 나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 1968 · 약 149분
인류의 기원부터 목성 탐사까지를 건너뜁니다. 대사가 극히 적고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앞서 말한 2022년 투표에서 감독들이 뽑은 순위에서는 이 작품이 1위였습니다. SF 영상의 기준을 세운 작품이라 이후 거의 모든 우주 영화가 여기에 빚지고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설명이 없으면 불안한 분. 그리고 큰 화면이 아니면 매력이 절반은 사라집니다. 휴대폰으로 볼 바에는 미루시는 게 낫습니다.
문제 5 — 세계 영화 지도의 빈칸
"고전 영화"라는 말이 사실상 "할리우드와 유럽 몇 나라"를 뜻하게 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런데 앞의 24편 중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한 영화들이 지도 곳곳에 있습니다. 여기 네 편은 그 빈칸을 가장 효율적으로 메웁니다.
「하녀」 김기영 · 1960 · 약 111분
중산층 가정에 하녀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2023년 영화인 240명에게 물어 뽑은 「한국영화 100선」에서 1위에 오른 작품입니다(2위 「살인의 추억」, 3위 「기생충」, 4위 「오발탄」). 1960년 한국 영화가 이 정도로 뒤틀린 심리극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2008년 복원본 덕에 화질도 볼 만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등장인물 전원이 불쾌한 영화를 못 견디는 분. 도덕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잊혀진 사람들」 루이스 부뉴엘 · 1950 · 약 88분
멕시코시티 빈민가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사회 고발극의 외형인데 중간중간 초현실적인 꿈 장면이 끼어들어,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가 한 화면에서 만납니다. 라틴아메리카 영화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아이들이 겪는 폭력을 보기 힘든 분. 감상적 위로가 전혀 없습니다.
「저개발의 기억」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 · 1968 · 약 97분
혁명 직후 쿠바에 남기로 한 부르주아 남자의 내면을 따라갑니다. 극영화 사이에 실제 기록 화면을 섞어 넣어서, 개인의 나른한 회의와 역사의 굉음을 같은 화면에 놓습니다. 정치 영화가 선전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 같은 작품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주인공이 게으르고 냉소적인 게 참기 힘든 분. 그 불편함이 사실 이 영화의 설계입니다.
「투키 부키」 지브릴 디옵 맘베티 · 1973 · 약 90분
세네갈의 두 젊은이가 파리로 떠날 돈을 마련하려 합니다. 자료마다 러닝타임이 85분에서 91분까지 다르게 적혀 있을 만큼 판본이 여러 가지인데, 어떤 판본으로 보아도 편집의 대담함은 그대로입니다. 아프리카 영화가 유럽 예술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쓰지 않고 자기 리듬을 만들어 낸 초기 사례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 인과가 또렷한 이야기를 원하는 분. 장면이 논리보다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동물 도축 장면이 실제 화면으로 나옵니다.
능동적으로 보되 영화를 망치지 않는 법
"영화를 분석하며 보라"는 조언은 반쯤 맞습니다. 분석하면서 보면 확실히 더 많이 보이는데, 동시에 몰입이 죽습니다. 몰입 없이 본 영화는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방식은 분석을 보는 도중이 아니라 앞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보기 전 3분. 감독 이름, 만들어진 연도, 그 나라가 그 시기에 어떤 상태였는지만 확인합니다. 줄거리 요약이나 리뷰는 읽지 않습니다. 「저개발의 기억」이 1968년 쿠바 영화라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첫 장면부터 다르게 보입니다.
보는 동안. 딱 하나만 하십시오. 마음이 움직이거나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에 시간만 메모합니다. 왜 그런지는 적지 않습니다. 이유를 적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영화가 아니라 자기 노트를 보게 됩니다.
보고 난 뒤 10분. 메모해 둔 시각으로 돌아가 그 장면을 다시 봅니다. 이때가 분석의 시간입니다. 카메라가 어디 있었는지, 컷이 언제 바뀌었는지, 소리가 무엇을 했는지. 대개 서너 개 시각만 확인해도 그 영화의 방식이 잡힙니다.
두 번째 관람은 세 번째 영화 뒤에. 같은 영화를 바로 다시 보면 얻는 것이 적습니다. 다른 영화를 두세 편 보고 오면 눈이 달라져 있어서 훨씬 많이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민 케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일시정지를 참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극장이 아닌 이상 멈춰도 되고 되감아도 됩니다. "한 번에 몰입해서 봐야 한다"는 규칙은 상영관의 제약이었지 감상의 원리가 아니었습니다.
마치며 — 견디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영화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항목을 25번 반복해서 적은 이유에 있습니다.
명작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자꾸 혼동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것과, 나와 맞지 않는 것. 앞의 것은 순서를 바꾸면 해결되고, 뒤의 것은 몇 년이 지나야 바뀌거나 끝내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당신의 결함이 아닙니다. 「잔느 딜망」을 20분 만에 끈 사람과 끝까지 본 사람 사이에 우열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 목록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지도로 쓰시면 좋겠습니다. 25편 중 다섯 편만 제대로 보셔도 충분합니다. 나머지 스무 편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같은 고민을 책으로 옮기면 소설,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것들로 이어지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버거운 책을 붙들고 있다면 어려운 책을 읽어내는 법이 다음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