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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ju Kim
- @fjvbn20031
들어가며 — 같은 문단을 네 번 읽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책 앞에서 가장 흔한 경험은 이렇습니다. 한 문단을 읽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습니다.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게 핵심입니다. 어려운 책이 어려운 이유는 대개 어휘가 아닙니다. 단어는 다 아는데 문단이 안 잡히고, 문단은 알겠는데 이 장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움은 어휘가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그리고 구조의 문제를 어휘의 방법으로 풀려고 하니 네 번을 읽어도 제자리인 것입니다.
이 글은 그 구조를 다루는 방법을 정리합니다. 근거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모티머 애들러와 찰스 밴 도런의 「How to Read a Book」(1940년 초판, 1972년 개정판, 출판사 소개; 국내에는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읽기와 학습에 관한 심리학 연구입니다. 그리고 대중적 독서 조언이 근거보다 앞서 나간 지점은 그때그때 표시하겠습니다. 그런 대목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무엇을 읽을지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것들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은 그 다음, 그러니까 골랐는데 안 읽힐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려움은 대개 단어가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막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으면 처방이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자기가 어디서 막혔는지 모른 채 "어렵다"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고, 그래서 늘 같은 처방(더 천천히, 더 여러 번)을 씁니다.
| 막히는 지점 | 실제 원인 | 처방 |
|---|---|---|
| 모르는 단어가 자꾸 나온다 | 어휘 | 사전. 가장 쉬운 문제입니다 |
| 문장은 아는데 문단이 안 잡힌다 | 논증의 구조 | 문단마다 한 줄로 요약해 보기 |
| 이 장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 전체 설계 | 목차로 돌아가 지도 다시 보기 |
| 저자가 누구를 반박하는지 모르겠다 | 맥락의 부재 | 배경 30분. 해설서는 아직 아님 |
| 다 이해했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 | 동기 | 지금 이 책일 이유가 없음. 중단 |
아래 두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네 번째 줄. 학술서나 사상서가 안 읽히는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저자는 논쟁 중이고 독자는 그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이때 필요한 건 책 해설이 아니라 그 분야의 30분짜리 배경입니다. 저자가 누구에게 반대하고 있는지 한 문장만 알아도 책 전체가 갑자기 방향을 갖습니다.
다섯 번째 줄. 이건 어려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은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느리게 한 번보다 빠르게 두 번
가장 실질적인 조언은 이것 하나입니다. 어려운 책은 느리게 한 번 읽는 것보다 빠르게 두 번 읽는 편이 낫습니다.
애들러가 말한 네 가지 독서 수준 중 두 번째가 점검 독서(inspectional reading)이고, 그 핵심 규칙은 단순합니다. 어려운 책을 처음 대할 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붙들고 멈추지 말고 끝까지 통과하라는 것. 애들러와 밴 도런은 이 규칙을 "read it through without ever stopping"이라고 표현하며, 모든 규칙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왜 이게 통하는지는 구조의 문제라는 진단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3장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7장에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3장에서 멈춰 네 번 읽는 것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정보를 기다리며 서 있는 것입니다. 반면 한 번 통과하고 나면 두 번째 읽기는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시작합니다. 전체 지도를 이미 갖고 있으니까요.
실제 방식은 이렇습니다.
1차 통과. 목표는 이해가 아니라 지도입니다. 모르는 부분에 연필로 표시만 하고 지나갑니다. 사전을 찾지 않고, 앞으로 돌아가지 않고, 각주를 읽지 않습니다. 속도는 평소의 두세 배로 냅니다. 400쪽짜리라면 사나흘 안에 끝냅니다.
1차와 2차 사이. 하루 이틀 둡니다. 이때 책 전체가 무엇을 하려는 책이었는지 세 문장으로 적어 봅니다. 못 적겠으면 못 적겠다는 사실 자체가 정보입니다.
2차 통과. 이제 표시해 둔 곳으로 갑니다. 놀랍게도 상당수는 이미 풀려 있습니다. 남은 것만 붙들고 천천히 읽습니다. 이게 애들러가 말한 세 번째 수준, 분석 독서입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정리하겠습니다. 1차 통과는 속독이 아닙니다. 속독법이 주장하는 것, 그러니까 훈련을 통해 이해도를 유지한 채 속도를 몇 배로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합니다. 키스 레이너 등이 2016년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에 실은 대규모 검토(논문)는 속독 주장이 과장돼 있으며 속도와 정확도 사이에 실질적인 교환 관계가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같은 검토에 따르면 읽기 속도의 실제 향상은 안구 운동 기술이 아니라 어휘력과 누적된 독서량에서 옵니다.
그러니까 1차 통과가 빠른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이해를 포기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직한 거래입니다. 속독법은 공짜를 약속하지만, 점검 독서는 대가를 명시합니다.
해설서는 언제 도움이고 언제 목발인가
애들러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해설서, 요약, 강의 같은 책 바깥의 자료는 자기 힘으로 읽어 본 다음에 쓰라는 것. 순서를 뒤집으면 남의 독해를 자기 독해로 착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 원칙을 대체로 지지하되 한 가지 예외를 둡니다. 앞의 표에서 말한 맥락의 부재는 미리 해결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자가 누구와 싸우는지 모르는 상태로 400쪽을 통과하는 건 낭비입니다. 다만 이때 필요한 것은 그 책의 해설이 아니라 그 시대와 분야의 배경입니다. 둘은 다릅니다.
구별하는 기준을 이렇게 씁니다.
도움인 경우. 읽기 전에 30분 이내로 배경만 훑는다. 읽는 중에 특정 개념 하나가 막혀서 그것만 찾는다. 다 읽은 뒤에 자기 해석과 남의 해석을 비교한다. 이 셋은 모두 자기 독해가 먼저 있거나, 자기 독해를 방해하지 않는 사용입니다.
목발인 경우. 각 장을 읽기 직전에 그 장의 요약을 먼저 본다. 막힐 때마다 즉시 검색한다. 해설을 읽고 나서 "아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원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셋의 공통점은 막히는 경험 자체를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막히는 경험을 없애면 왜 손해일까요. 학습 연구에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당장의 수행을 나쁘게 만들지만 장기 파지에는 유리한 부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정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주로 기억과 학습 과제에서 확인된 것이고, 문학이나 사상서를 읽는 경험에 그대로 옮겨 붙일 수 있다는 증거는 그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막혀야 성장한다"는 말을 신념처럼 밀어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 경험상 유용한 규칙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충분합니다.
실용적인 타협안을 하나 제안하면, 한 장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찾지 않기입니다. 장이 끝나면 그때 몰아서 찾습니다. 그러면 막히는 경험은 유지되고, 막힌 채로 400쪽을 헤매는 낭비는 피할 수 있습니다.
책이 끝난 뒤에도 남는 메모
읽는 동안 열심히 밑줄을 긋고, 다 읽고 나서 그 밑줄을 다시 보지 않는 것. 대부분의 독서 노트가 여기서 끝납니다.
여기서 자주 인용되는 연구가 있습니다. 존 던로스키 등이 2013년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에 실은 열 가지 학습 기법 검토(논문)인데, 밑줄 긋기와 다시 읽기는 효용 낮음으로, 자기 시험(인출 연습)과 분산 학습은 효용 높음으로 분류됐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두 가지가 가장 효과가 낮았다는 결론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독서 조언으로 옮길 때 두 가지 과장이 자주 붙습니다.
첫째, "다시 읽기는 소용없다"는 결론. 이 검토가 다룬 다시 읽기는 시험 대비로 교재를 연달아 다시 훑는 행위입니다. 소설을 몇 년 뒤에 다시 읽거나, 앞 절에서 말한 것처럼 어려운 책을 지도를 갖고 두 번째로 통과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이 연구는 재독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훑는 것이 기억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할 뿐입니다.
둘째, 메모 시스템에 대한 기대. 최근 몇 년 사이 제텔카스텐이나 세컨드 브레인 같은 정교한 메모 체계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체계가 문학이나 인문서의 이해를 실제로 얼마나 향상시키는지에 관한 통제된 근거는 사실상 없습니다. 근거가 있는 것은 훨씬 소박한 쪽, 그러니까 보지 않고 기억에서 꺼내 보는 행위입니다. 도구가 아니라 인출이 작동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스템 대신 세 가지만 씁니다.
하나, 덮고 나서 쓰기. 한 장이 끝나면 책을 덮고 그 장의 요지를 두세 문장으로 씁니다. 책을 보면서 쓰면 옮겨 적기가 되고, 덮고 쓰면 인출이 됩니다. 이 차이가 전부입니다. 잘 못 쓴 요약은 나쁜 메모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입니다.
둘, 반론과 질문만 적기. 동의하는 대목은 적지 않습니다. 어차피 기억에 남습니다. 적을 가치가 있는 것은 "여기는 동의 못 하겠다", "이 주장은 저 장과 충돌하는 것 아닌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메모는 몇 년 뒤에 봐도 살아 있습니다.
셋, 한 문장짜리 색인. 다 읽은 뒤 책 첫 장 여백에 그 책이 무엇을 주장하는 책인지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 아래에 나중에 다시 찾아볼 만한 쪽수를 서너 개만 적습니다. 3년 뒤에 이 책을 다시 펼칠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게 전부입니다.
번역서를 정직하게 읽는 법
한국어로 읽는 이상 상당수의 어려운 책은 번역서입니다. 이 사실을 흐리지 않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잘 읽힙니다.
어색한 문장을 만나면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놓습니다. 저자가 원래 그렇게 어렵게 썼거나, 번역이 원문의 구조를 그대로 옮기다 한국어에서 무너졌거나. 초보 독자는 늘 전자로 가정하고 자책하고, 냉소적인 독자는 늘 후자로 가정하고 책을 탓합니다. 둘 다 게으른 진단입니다. 유용한 신호가 하나 있는데, 어색함이 책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으면 번역 쪽일 가능성이 높고, 특정 장에만 몰려 있으면 그 장의 내용이 실제로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 한 문장 위에 해석을 쌓지 않습니다. 번역서를 읽으며 "이 작가는 여기서 이 단어를 썼다"는 사실 위에 정교한 해석을 세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단어는 번역자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문장 단위의 근거가 필요한 논의라면 원문을 확인하거나,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주장을 유보하는 것이 정직합니다.
중요한 책은 두 번째 번역을 확인합니다. 특히 짧은 책일수록 비용이 적습니다. 두 판본의 같은 대목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떤 것이 번역자의 해석이고 어떤 것이 원문의 뼈대인지 대략 보입니다. 어느 판본을 고를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소설 편의 번역 절에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읽었다고 말할 때 번역으로 읽었다고 말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태도를 바꿉니다. 자기가 접근한 것이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독자는 자기 해석을 조금 덜 확신하고, 대체로 그 편이 맞습니다.
잘 포기하는 법
이 글에서 가장 필요한 절은 아마 여기일 것입니다.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다"와 "나는 게으르다"를 구별하는 법.
둘을 혼동하면 두 방향으로 손해를 봅니다. 안 맞는 책을 붙들고 몇 달을 독서 자체에서 멀어지거나, 조금만 더 가면 열렸을 책을 게으름의 증거로 삼아 매번 덮거나. 다행히 구별할 수 있는 신호가 있습니다.
신호 1. 다른 책은 읽히는가. 이 책만 안 나가고 다른 책은 잘 읽힌다면, 게으름이 아닙니다. 게으름은 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요즘 아무 책도 안 읽힌다면 그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상태이고, 책을 바꿔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신호 2. 저항이 어느 층에서 오는가. 30분 앉아서 관찰해 보십시오. 문장 단위에서 계속 미끄러지는지, 아니면 문장은 다 넘어가는데 마음이 딴 데 가 있는지. 앞의 것은 기술의 문제라 방법으로 해결됩니다. 뒤의 것은 관심의 문제라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호 3. 왜 이 책을 읽으려 하는가. 여기에 정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궁금해서인가,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서인가, 읽지 않은 나를 견딜 수 없어서인가. 뒤의 두 가지가 동기라면 그 책은 끝까지 읽어도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완독은 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독서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신호 4. 몇 번, 어떤 간격으로 시도했는가. 서로 다른 시기에 세 번 시도했는데 매번 비슷한 지점에서 멈췄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불일치입니다. 반면 한 번 시도했고 그것도 피곤한 밤이었다면 아직 판단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신호 5. 30쪽을 더 갔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앞 절의 방법을 한 번은 써 보고 판단하는 게 공정합니다. 1차 통과를 시도해 봤는지, 목차로 돌아가 지도를 다시 봤는지, 배경 30분을 확보했는지. 이걸 다 해 보고도 안 되면 그때는 근거 있는 포기입니다.
그리고 포기할 때는 기록을 남기십시오. 책 이름, 날짜, 어디까지 갔는지, 왜 멈췄는지 한 줄. 이 기록이 있으면 두 가지가 생깁니다. 첫째, 같은 책을 몇 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처음부터 다시 헤매지 않습니다. 둘째, 목록이 쌓이면 자기가 어떤 종류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멈추는지 보입니다. 저는 이 기록을 보고 나서야 제가 관념적인 서두를 유난히 못 견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그런 책을 만나면 서문을 건너뛰고 1장부터 시작합니다. 그것만으로 완독률이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읽다 만 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120쪽까지 읽은 책은 안 읽은 책과 다릅니다. 그 120쪽은 다음에 그 저자를, 그 분야를, 그 시대를 만날 때 조용히 작동합니다. 완독만 독서로 세는 계산법이 사실은 부정확합니다.
마치며 — 끝까지 읽는 것보다 어디서 멈출지 아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려운 책을 대하는 능력은 인내심이 아니라 판단력에 가깝습니다.
지금 막힌 것이 어휘인지 구조인지 맥락인지 동기인지 가려내는 판단. 지금 필요한 것이 한 번 더 통과하는 것인지 배경 30분인지 아예 다른 책인지 가려내는 판단. 그리고 이 책이 지금의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책 없이 인정하는 판단. 방법은 그 판단을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완독률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 포기한 책 열 권을 가진 사람이, 억지로 완독한 책 열 권을 가진 사람보다 대체로 더 멀리 갑니다. 전자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가는 중이고, 후자는 목록을 지우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읽을지 다시 고르고 싶어지면 소설,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것들로, 잠시 활자에서 쉬고 싶으시면 영화 명작, 어디서 시작할까로 가시면 됩니다. 둘 다 같은 원칙 위에 서 있습니다. 언제 그만둬도 되는지를 함께 알려 주는 안내가 더 믿을 만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