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Published on

38명은 처음부터 없었다 — 방관자 효과의 신화와 진짜 실험

공유하기
Authors

들어가며 — 38이라는 숫자

1964년 3월 13일 새벽, 뉴욕 퀸스의 큐가든스에서 캐서린 제노비스(Catherine Genovese)가 살해당했습니다. 2주 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서른여덟 명의 이웃이 30분 넘게 창문에서 지켜보는 동안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고.

이 기사는 심리학 교과서에 들어갔고, 대도시의 냉담함을 상징하는 일화가 됐으며, 방관자 효과라는 개념의 출생 설화가 됐습니다. 지금도 강연과 칼럼에서 그 숫자가 인용됩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논문으로 읽는 심리학 이번 편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하는 사례입니다. 유명한 일화는 검증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그 일화가 촉발한 실험은 살아남았으며, 그 실험에서 대중이 끌어낸 비관적 결론은 다시 실제 데이터에 의해 뒤집혔습니다. 세 층을 순서대로 벗겨 보겠습니다.

2007년, 그 기사를 검증하다

레이철 매닝(Rachel Manning)과 마크 레빈(Mark Levine), 앨런 콜린스(Alan Collins)는 2007년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에 사건 기록을 다시 검토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부제가 저자들의 입장을 요약합니다. "38명의 목격자라는 우화".

그들이 재판 기록과 당시 자료를 대조해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사의 숫자는 취재의 산물이라기보다 편집국장과 경찰 간부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37명이라고 적었고 본문은 38명이라고 적었습니다.

사건은 창밖으로 30분간 이어진 하나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공격이었고, 치명상을 입힌 두 번째 공격은 건물 안쪽 복도에서 일어나 아파트 창문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각은 새벽 3시 20분 무렵이었고 3월의 뉴욕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들었다는 이웃들 대부분은 잠결에 짧은 비명 한 번을 들었고, 침대에서 거리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격 이후 신고했다는 증언이 재판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소피아 파라(Sophia Farrar)라는 이웃은 복도로 내려가 구급차가 올 때까지 제노비스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화가 말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매닝 등이 겨눈 과녁은 신문사만이 아닙니다. 한 분과 학문이 자기 대표 개념의 출생 설화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신문 기사를 채택했고, 이야기가 개념을 잘 설명해 준다는 이유로 40년간 교과서에 실어 반복했다는 점입니다. 좋은 일화는 좋은 증거가 아니며, 오히려 검증을 늦추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균형을 위해 덧붙이면, 그날 밤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38명이 지켜보았다"는 문장입니다.

그럼에도 실험은 진짜였다

기사를 읽은 두 젊은 연구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é)는 냉담함이라는 설명 대신 다른 가설을 세웠습니다. 사람 수 자체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험으로 만들었습니다.

1968년 논문의 설계는 지금 봐도 영리합니다. 뉴욕대 학생들이 각각 별도의 부스에 혼자 앉습니다.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인터폰으로만 대화하고,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할 수 있습니다. 주제는 대학 생활의 개인적 어려움입니다. 대화 중 한 참가자가 자신이 발작 지병이 있다고 언급하고, 잠시 뒤 실제로 발작을 일으킵니다. 숨이 막힌다며 도움을 청하다가 소리가 끊깁니다. 이 참가자는 사실 녹음입니다.

조작된 변수는 단 하나, 참가자가 인터폰에 몇 명이 더 있다고 믿는지입니다.

인터폰 참여자 수 (피해자 포함)인원발작 중 신고한 비율평균 반응 시간
2명1385퍼센트52초
3명2662퍼센트93초
6명1331퍼센트166초

자기 말고 아무도 없다고 믿을 때는 85퍼센트가 움직였습니다. 네 명이 더 있다고 믿을 때는 31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참가자의 성향도, 물리적 여건도 모두 동일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머릿속의 인원수뿐입니다.

논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표가 아니라 관찰 기록입니다. 신고하지 않은 참가자들은 태연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떨고 땀을 흘리며 눈에 띄게 동요했고, 나중에 실험자에게 그 사람이 괜찮은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갇혀 있었습니다. 이 구분이 이 연구 전체에서 가장 자주 잊히는 부분입니다.

표본은 세 조건을 합쳐 52명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작은 연구이고, 부스에 격리되어 서로를 볼 수 없다는 특수한 구조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는 살아남았습니다. 피셔 등이 2011년 사이콜로지컬 불러틴에 발표한 메타분석은 105편의 연구, 7,700명 이상의 참가자를 종합해 집단 크기 효과가 실재한다고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중요한 조건도 찾아냈습니다. 상황이 명백히 위험하고 주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함께 있으며 도울 능력이 있을 때, 효과는 줄어들고 때로는 방향이 뒤집힙니다.

세 가지 메커니즘

방관자 효과는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세 가지 다른 고장의 묶음입니다. 라타네와 달리는 개입까지의 경로를 다섯 단계로 정리했습니다. 알아차리기, 응급으로 해석하기,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방법 알기, 실행하기. 세 메커니즘은 서로 다른 단계에서 걸립니다.

책임 분산은 세 번째 단계의 고장입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여섯이면 안 도운 죄책감도 여섯으로 나뉩니다. 누구든 하겠지, 라는 문장이 여섯 개의 머릿속에서 동시에 돌아갑니다. 1968년 실험의 6명 조건이 정확히 이것을 측정했습니다.

다원적 무지는 두 번째 단계의 고장입니다. 라타네와 달리가 같은 해 발표한 연기 실험이 이것만 따로 떼어 냅니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방으로 환기구를 통해 연기가 흘러 들어옵니다. 혼자 있던 참가자의 75퍼센트가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하지 않도록 지시받은 두 명의 연기자와 함께 앉아 있던 참가자는 10퍼센트만 신고했습니다. 여기서는 책임 분산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연기는 자기 안전의 문제니까요. 무너진 것은 해석입니다. 남들이 태연하니 별일이 아닌 모양이라고 읽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 남들도 똑같이 읽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평가 우려는 마지막 단계의 고장입니다. 잘못 판단한 것이면 어쩌지, 서투르게 나섰다가 우스워지면 어쩌지. 관객이 많을수록 이 비용은 커집니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합니다. 이 구분이 마지막 절에서 쓰입니다.

코드로 이해하기 — 개인의 확률과 집단의 확률은 다르다

대중적 요약은 실험 결과를 이렇게 옮깁니다. "군중 속에서는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런데 1968년 실험이 측정한 것은 한 개인이 도울 확률입니다. 피해자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값입니다. 적어도 한 명이 도울 확률이지요. 두 값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 Each bystander's own willingness decays as the crowd grows
# (diffusion of responsibility), here as p1 * n ** -DECAY.
P1 = 0.60      # a lone bystander helps 60% of the time
DECAY = 0.5    # how fast individual responsibility dilutes

print(" n   p(this person helps)   p(at least one helps)")
for n in (1, 2, 3, 5, 10, 20):
    p_individual = P1 * n**-DECAY
    p_group = 1 - (1 - p_individual) ** n
    print(f"{n:2d}          {p_individual:.3f}                 {p_group:.3f}")

# output:
#  n   p(this person helps)   p(at least one helps)
#  1          0.600                 0.600
#  2          0.424                 0.669
#  3          0.346                 0.721
#  5          0.268                 0.790
# 10          0.190                 0.878
# 20          0.134                 0.944

왼쪽 열은 방관자 효과 그대로입니다. 개인의 개입 확률이 0.60에서 0.13으로 무너집니다. 오른쪽 열은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도울 확률이 0.60에서 0.94로 올라갑니다. 두 열 모두 같은 모형에서 나온 값이고, 둘 다 사실입니다.

물론 이건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감쇠 지수를 1.0으로 올려 개인의 확률이 인원수에 반비례해 떨어지게 하면 오른쪽 열도 0.60에서 0.46 부근으로 함께 내려갑니다. 즉 "군중이 많으면 결국 누가 돕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이론이 아니라 감쇠 속도가 정합니다. 그리고 감쇠 속도는 계산으로 알 수 없습니다. 측정해야 합니다.

2020년, 219건의 CCTV가 답한 것

리처드 필폿(Richard Philpot)과 동료들이 한 일이 정확히 그 측정입니다. 그들은 암스테르담, 랭커스터, 케이프타운 도심의 감시 카메라에 기록된 실제 공공 충돌 219건을 확보해 프레임 단위로 코딩했습니다. 실험실 각본이 아니라 진짜 싸움들입니다. 세 도시는 폭력 범죄율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선택됐습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219건 가운데 90.9퍼센트에서 최소한 한 명의 방관자가 개입했습니다. 개입한 사람의 평균 인원은 3.76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집단 크기 효과는 방향이 반대였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누군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세 도시 사이의 개입률 차이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가 무엇을 뒤집고 무엇을 뒤집지 않는지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1968년 실험을 반박한 것이 아닙니다. 실험실은 개인의 확률을 쟀고 카메라는 피해자의 결과를 쟀습니다. 앞 절의 표에서 왼쪽 열과 오른쪽 열이 동시에 참인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무너진 것은 실험이 아니라 대중이 실험에서 끌어낸 결론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아무도 안 도와준다는 그 문장 말입니다.

한계도 공정하게 적어 둡니다. 카메라는 개입이 있었는지는 보여 주지만 그 개입이 도움이 됐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표본은 카메라가 설치된 공공장소의 가시적 충돌이므로, 가정 폭력이나 밀폐된 공간의 상황에는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버릴 것과 가져갈 것

버릴 것 1. 38이라는 숫자.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강연이나 글에서 이 일화를 인용하는 관행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다행히 이 사건에는 훨씬 나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새벽 3시에 복도로 내려간 이웃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버릴 것 2. "군중 속에서는 아무도 돕지 않는다". 실제 공공 충돌의 90퍼센트 이상에서 누군가는 개입합니다.

버릴 것 3. 이 연구를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로 쓰는 것. 1968년 실험에서 신고하지 않은 참가자들은 손을 떨고 있었습니다. 방관자 효과는 악의의 증거가 아니라 상황 설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설계로 고칠 수 있습니다.

가져갈 것 1. 지목이 작동하는 이유. "거기 파란 옷 입으신 분, 119에 신고하고 저한테 결과 알려 주세요." 응급처치 교육이 이 문장 형식을 반복해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세 가지 고장을 동시에 고칩니다. 대상을 특정해 책임의 분모를 1로 만들고, 큰 소리로 응급 상황임을 선언해 다원적 무지를 깨고, 무엇을 할지 지정해 평가 우려를 없앱니다. 세 메커니즘을 따로 배워 두면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가 보입니다.

가져갈 것 2. 부탁 한 문장의 크기. 모리아티는 1975년 해변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옆자리 사람에게 잠깐 라디오를 봐 달라고 부탁한 뒤 자리를 비우면, 연출된 도둑이 물건을 가져갈 때 95퍼센트가 저지했습니다. 부탁 없이 시간만 물어본 조건에서는 20퍼센트였습니다. 책임을 명시적으로 넘겨받은 사람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가져갈 것 3. 자신이 군중일 때의 규칙.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하나,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고 가정하고 움직이기. 둘, 남들의 평온함을 정보로 읽지 않기. 그들도 지금 당신의 평온함을 정보로 읽고 있습니다.

가져갈 것 4. 응급실 밖의 같은 구조. 여러 명이 참조된 메일, 수백 명이 있는 장애 알림 채널, 모두가 볼 수 있는 코드 리뷰 요청. 전부 같은 고장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처방도 같습니다. 담당자를 이름으로 지정하는 것. 온콜 로테이션과 코드 오너 파일이 하는 일이 결국 책임의 분모를 1로 만드는 것입니다.

원문 읽기 가이드

  • 기사 검증: Manning, R., Levine, M., & Collins, A. (2007). The Kitty Genovese murder and the social psychology of helping: The parable of the 38 witnesses. American Psychologist, 62(6), 555-562.
  • 원 실험: Darley, J. M., & Latane, B. (1968).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Diffusion of responsi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 377-383.
  • 다원적 무지: Latane, B., & Darley, J. M. (1968). Group inhibition of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3), 215-221.
  • 책임 위임의 효과: Moriarty, T. (1975). Crime, commitment, and the responsive bystander: Two field experimen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1(2), 370-376.
  • 메타분석: Fischer, P., Krueger, J. I., Greitemeyer, T., Vogrincic, C., Kastenmuller, A., Frey, D., Heene, M., Wicher, M., & Kainbacher, M. (2011). The bystander-effect: A meta-analytic review on bystander intervention in dangerous and non-dangerous emergencies. Psychological Bulletin, 137(4), 517-537.
  • 실제 현장 데이터: Philpot, R., Liebst, L. S., Levine, M., Bernasco, W., & Lindegaard, M. R. (2020). Would I be helped? Cross-national CCTV footage shows that intervention is the norm in public conflicts. American Psychologist, 75(1), 66-75.

읽기 팁: 1968년 논문은 표 하나가 논문 전체입니다. 집단 크기별 신고 비율과 평균 반응 시간이 나란히 놓인 세 줄짜리 표를 먼저 보고, 그다음 논의 절에서 비개입 참가자들의 상태를 서술한 문단을 찾아 읽으세요. 그 문단이 이 연구의 인간적 핵심입니다. 필폿 등의 2020년 논문에서는 방관자 수에 따른 개입 확률 그래프를 보면 됩니다. 1968년 표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는 그 선이, 두 연구가 서로 다른 것을 재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 편은 같은 시기에 같은 질문을 반대편에서 던진 밀그램 복종 실험의 재검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