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Published on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한가 — 정전론의 역사

Authors

들어가며: 칼을 든 자의 양심

기원전 416년, 아테네의 함대가 작은 섬 멜로스 앞바다에 닻을 내렸습니다. 멜로스는 강대국 아테네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중립국이었습니다. 아테네 사절은 멜로스의 지도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정의를 따질 여유가 있는 것은 힘이 대등할 때뿐이며,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할 뿐이라고요.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이 '멜로스의 대화'는 전쟁에 윤리가 끼어들 자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차갑게 제기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멜로스는 항복하지 않았고, 결국 성인 남성은 모두 처형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가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2천 년이 넘도록 이 장면을 불편하게 느낄까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 전쟁에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 글은 바로 그 직감을 체계적인 사상으로 다듬어 온 '정전론(正戰論, just war theory)'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정전론은 두 개의 극단 사이에 자리합니다. 한쪽에는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평화주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전쟁에 도덕은 적용되지 않으며 오직 국익과 힘만이 있다는 현실주의가 있습니다. 정전론은 전쟁이 때로는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 까다로운 중간 지대는 설 자리가 있을까요. 함께 따져 봅시다.

정전론의 두 기둥: 시작과 수행

정전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개의 질문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첫째, 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가. 이것을 라틴어로 '유스 아드 벨룸(jus ad bellum)', 즉 '전쟁에 이르는 정의'라고 부릅니다. 전쟁을 시작할 권리에 관한 기준입니다.

둘째, 이 전쟁을 어떻게 싸우는가. 이것을 '유스 인 벨로(jus in bello)', 즉 '전쟁 중의 정의'라고 부릅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이 두 질문을 나누는 것은 단순한 분류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로 시작한 전쟁이라도 잔혹하게 싸우면 부정의해질 수 있고, 반대로 시작이 의심스러운 전쟁이라도 그 안의 병사 개개인은 규칙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의 정의와 수행의 정의는 별개로 평가됩니다.

전통적으로 유스 아드 벨룸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요구합니다.

[전쟁을 시작할 정의 — jus ad bellum]
1. 정당한 명분(just cause): 방어, 침략 격퇴 등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2. 정당한 권위(legitimate authority): 합법적 통치 주체가 결정했는가
3. 올바른 의도(right intention): 평화 회복이 목적인가, 약탈이나 증오가 아닌가
4. 최후의 수단(last resort): 다른 모든 평화적 방법이 소진되었는가
5. 성공 가능성(probability of success): 무의미한 희생을 막을 수 있는가
6. 비례성(proportionality): 전쟁의 이익이 그 해악을 능가하는가

그리고 유스 인 벨로는 전쟁이 시작된 뒤에 적용되는 규칙입니다.

[전쟁 중의 정의 — jus in bello]
1. 구별(distinction): 전투원과 비전투원(민간인)을 구별하여 공격하는가
2. 비례성(proportionality): 군사적 이익에 비해 과도한 피해를 주지 않는가
3. 필요성(necessity): 목적 달성에 꼭 필요한 수단만 쓰는가

이 목록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전쟁 뉴스를 보며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입니다. "꼭 그래야만 했나." "민간인을 노린 것 아닌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인가." 정전론은 이 직관들을 2천 년에 걸쳐 다듬어 온 사유의 결정체입니다.

역사의 장면들: 사상은 어떻게 자라났나

아우구스티누스: 슬픔으로 드는 칼

정전론의 씨앗이 기독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보다 앞선 고대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는 이미 전쟁에 정당한 절차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시작된 전쟁은 부정의하며, 전쟁은 평화를 되찾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한번 약속한 것은 적에게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로마는 전쟁을 선포할 때 일정한 격식을 갖추었고, 이는 전쟁이 아무 때나 함부로 시작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감각을 제도의 형태로 담고 있었습니다. 즉 '정당한 전쟁'이라는 발상은 종교와 철학, 법과 관습이라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합쳐져 흐른 강이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 두면, 정전론이 어느 한 종교나 문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해집니다. 힘과 정의의 긴장, 그리고 '함부로 칼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은 인류의 여러 전통에서 거듭 나타났습니다. 다만 그 흩어진 직관들을 가장 체계적으로 다듬어 후대에 전한 것이 서구의 정전론 전통이었을 뿐입니다.

정전론의 뿌리를 본격적으로 더듬으려면 4세기 말 북아프리카로 가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까다로운 문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강한 평화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는 가르침은 폭력의 전면적 거부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었고, 제국은 변경에서 끊임없이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웃이 학살당하는데 손 놓고 있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미묘한 답을 내놓습니다. 무고한 이웃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전쟁을 결코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정당한 전쟁이란 기뻐할 일이 아니라 '슬픔으로 수행하는 의무'였습니다. 칼을 들더라도 마음에는 증오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올바른 의도라는 조건이 여기서 싹텄습니다.

이 '슬픔으로 드는 칼'이라는 발상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을 정당화하면서도 동시에 그 정당화에 한계를 긋는 이중의 장치입니다. 만약 전쟁이 기뻐할 일이라면, 더 많은 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내 슬픈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능한 한 빨리 끝내려 애쓰게 됩니다. 마음의 태도를 조건으로 삼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은, 이후 천 년이 넘도록 정전론이 전쟁을 인정하면서도 끝없이 경계하는 묘한 긴장을 품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퀴나스: 세 가지 조건의 정리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체계로 묶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신학대전'에서 그는 정당한 전쟁의 세 조건을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정당한 권위, 정당한 명분, 그리고 올바른 의도입니다.

아퀴나스의 정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전쟁의 정당성을 개인의 분노나 군주의 야심이 아니라 '검토 가능한 기준'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이 세 가지를 따져 물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신의 뜻이나 운명의 영역이 아니라, 이성으로 따질 수 있는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함의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검토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말은, 곧 그 기준으로 권력자를 심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군주가 "이것은 정당한 전쟁이다"라고 선언하더라도, 이제 사람들은 그 선언을 세 가지 잣대에 비추어 따져 볼 수 있습니다. 명분은 정당한가. 의도는 순수한가. 권위는 합법적인가. 아퀴나스는 의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의 정리는 전쟁의 정당성을 권력의 독점에서 끌어내려 공적인 이성의 광장에 올려놓은 셈입니다. 정전론이 오늘날까지 비판과 토론의 언어로 살아 있는 까닭도 바로 이 출발점에 있습니다.

비토리아와 그로티우스: 국제법의 씨앗

16세기 스페인의 신학자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는 신대륙 정복이라는 현실 앞에서 충격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원주민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정복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의 답은 단호했습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토리아는 원주민도 자신의 땅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진 인간이며, 신앙의 차이가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권리라는 발상으로 이어집니다.

비토리아의 용기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자기 나라가 한창 정복의 단물을 빨아들이던 시대에, 바로 그 정복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의심했습니다. 가장 이득을 보는 자리에서 그 이득의 도덕성을 묻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비토리아는 정전론의 기준을 자기 진영에게도 똑같이 들이댔습니다. 이 자기비판의 정신이야말로 정전론을 단순한 자기 정당화의 도구와 구별 짓는 결정적 차이입니다. 정전론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적뿐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서도 똑같이 겨누어져야 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1583~1645)는 종교적 토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30년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종교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도 통용될 수 있는, 이성에 근거한 전쟁의 규칙을 모색했습니다. 그로티우스는 흔히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정전론이 신학에서 법학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놓은 셈입니다.

이 전환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전쟁의 규칙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묶여 있는 한, 그것은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만 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규칙을 인간의 이성에 뿌리내리게 하면, 신앙도 문화도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도 통용될 보편적 언어가 됩니다. 그로티우스는 종교가 갈가리 찢어 놓은 유럽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종교를 넘어선 공통의 토대를 찾으려 했습니다. 가장 신앙으로 인해 잔혹했던 전쟁이, 신앙을 넘어선 전쟁법의 필요를 일깨운 셈입니다. 정전론의 역사가 늘 비극을 자양분 삼아 자라났다는 사실을, 그로티우스의 작업은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한눈에 보는 정전론 사상의 흐름

여기까지의 흐름을 연표로 정리하면, 정전론이 어떻게 신학에서 출발해 법학으로, 다시 국제 규범으로 옮겨 갔는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정전론 사상의 간략한 연표]
고대 그리스   투키디데스의 '멜로스의 대화' — 힘과 정의의 긴장 제기
4~5세기      아우구스티누스 — 사랑에서 비롯된 '슬픈 의무'로서의 전쟁
13세기        아퀴나스 — 정당한 권위·명분·의도의 세 조건 정리
16세기        비토리아 — 신앙의 차이는 전쟁의 명분이 아니다, 보편적 권리
17세기        그로티우스 — 이성에 근거한 전쟁법, 국제법의 출발
20세기        제네바 협약·유엔 헌장 — 직관이 국제 규범으로 제도화
현대          보호책임·자율무기·전쟁 이후의 정의 등 새로운 쟁점

이 연표가 보여 주는 것은 정전론이 어떤 천재 한 사람의 완성품이 아니라, 수많은 시대가 자신의 곤경 속에서 한 겹씩 쌓아 올린 사유의 지층이라는 사실입니다. 각 시대는 자기 앞에 닥친 새로운 형태의 전쟁 앞에서 '그래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다시 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 긋기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상 너머의 장면: 규칙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이론의 역사만 보면 정전론이 차분한 서재에서 자라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기준들은 실제 전장의 참혹함과 끊임없이 부딪치며 단련되었습니다. 한 병사가 항복한 적을 쏠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는 순간, 한 지휘관이 마을을 포격할지 우회할지 결정하는 순간에 정전론은 책이 아니라 양심의 형태로 작동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 속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을 겪은 세대일수록 더 정교한 규칙을 만들려 했다는 것입니다. 30년 전쟁의 폐허가 그로티우스를 낳았고,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가 오늘날의 국제 인도법을 낳았습니다. 인류는 늘 비극을 겪은 뒤에야 규칙을 다듬는 듯합니다. 어쩌면 정전론의 역사는 인간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서도, 그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애써 온 기록인지도 모릅니다.

이 사실에는 씁쓸함과 희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씁쓸한 것은, 우리가 늘 충분히 많은 사람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규칙은 거의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합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그럼에도 인류가 결국 무언가를 배우기는 한다는 점입니다. 한번 그어진 선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해져 또 하나의 선과 만납니다. 정전론의 역사는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두꺼워져 온 양심의 기록입니다.

두 개의 반론: 평화주의와 현실주의

정전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을 협공하는 두 입장을 들어 봐야 합니다. 양쪽 모두 진지하게 새겨들을 만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평화주의: 칼은 결국 칼을 부른다

평화주의자는 묻습니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 아닌가. 전쟁은 본질적으로 대량의 살상이며,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무고한 죽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정전론의 기준은 너무 쉽게 악용된다고 지적합니다. 역사상 거의 모든 침략자가 자기 전쟁을 '방어'이자 '정의'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정전론이 전쟁을 억제하기는커녕, 전쟁에 도덕적 명분을 빌려주는 포장지가 되어 버린다는 비판입니다.

평화주의에도 결이 있습니다.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절대적 평화주의가 있는가 하면, 전쟁의 비용이 거의 언제나 그 이익을 압도한다는 경험적·실용적 평화주의도 있습니다. 후자는 정전론의 언어를 빌리되, '성공 가능성'과 '비례성' 조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면 정당화되는 전쟁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주장합니다.

현실주의: 도덕은 전장에 들어오지 못한다

정반대편에 현실주의가 있습니다. 멜로스의 대화에서 아테네가 보여 준 바로 그 논리입니다. 현실주의자는 국제 사회에 상위의 심판이 없으며, 국가는 생존을 위해 행동할 뿐이라고 봅니다. 도덕을 전쟁에 적용하는 것은 순진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까지 말합니다. 도덕적 망설임이 결정적 순간의 패배를 부르고, 그 패배가 더 큰 비극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주의에도 새겨들을 점이 있습니다. 고결한 명분을 내세운 개입이 현실에서는 더 큰 혼란을 부른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의도와 결과는 다르다는 냉정한 지적입니다. 다만 극단적 현실주의는 '그렇다면 무엇이든 허용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합니다. 포로 학대도, 민간인 학살도 국익에 부합하면 괜찮은가.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서 본능적으로 멈춥니다.

[세 입장의 비교]
                정전론          평화주의         현실주의
전쟁의 도덕성    조건부 정당화    원칙적 거부      도덕 적용 불가
핵심 가치       정의·절제        생명·비폭력      생존·국익
강점           직관 반영·절제   일관성·평화 의지  현실 직시
약점           악용 위험        무방비 우려      무제한 폭력 우려

세 입장을 표로 정리하면 차이가 또렷합니다. 어느 쪽도 완전무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논쟁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세 번째 길은 없을까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상가들이 이 세 입장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화주의자는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불의에 맞서는 적극적 저항을 외쳤고, 그 비폭력의 힘이 때로 군대보다 강한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이 곧 불의를 묵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한편 신중한 현실주의자 가운데는 도덕을 완전히 내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국익을 중시하되, 절제 없는 폭력이 결국 자국의 평판과 안전마저 갉아먹는다는 점을 냉정하게 계산합니다. 이 경우 도덕적 절제는 고결한 이상이 아니라 현명한 전략이 됩니다.

이처럼 세 입장은 실제로는 서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정전론은 평화주의로부터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양심을, 현실주의로부터 '결과를 직시하라'는 냉철함을 빌려 옵니다. 어쩌면 정전론의 매력은 이 두 통찰을 한자리에 붙들어 두려는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평화를 갈망하되 무력함에 빠지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되 냉소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위태로운 줄타기입니다. 그 줄 위에서 균형을 잡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어려움이야말로 이 사유가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험대들

이론은 깔끔하지만, 현실은 그 이론을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정전론이 가장 곤란해지는 지점들을 살펴봅시다.

민간인이라는 경계선

유스 인 벨로의 핵심인 '구별' 원칙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나눕니다. 그런데 현대전에서 이 선은 점점 흐려집니다.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투원인가 민간인인가. 게릴라가 민간인 사이에 숨으면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중 효과의 원리'라는 오래된 개념이 여기서 동원됩니다. 군사 목표를 노린 공격에서 의도하지 않은 민간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그 피해가 목적이 아니고 비례성을 지킨다면 허용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로 어디까지 면책되는지는 여전히 격렬한 논쟁거리입니다.

특히 현대 전쟁은 이 경계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통신망, 발전소, 도로 같은 기반 시설은 군대도 쓰고 민간인도 씁니다. 이런 '이중 용도'의 표적을 공격하는 일은 군사적으로는 정당해 보여도, 그 파괴가 결국 병원의 전기를 끊고 식수 공급을 마비시켜 무수한 민간인의 삶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폭격보다 이런 간접적이고 누적된 피해가 더 깊고 오래갈 수도 있습니다. 구별의 원칙은 단지 '누구를 겨누는가'만이 아니라, '그 공격이 결국 누구의 삶을 무너뜨리는가'까지 묻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현대전에서 민간인이라는 경계선이 그토록 까다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핵무기라는 절벽

핵무기는 정전론에 가장 가혹한 질문을 던집니다. 핵무기는 그 본성상 구별이 불가능하고, 비례성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지우는 무기에 '구별'이나 '비례'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많은 윤리학자는 핵무기의 실제 사용을 정전론의 틀로 정당화하기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한편 냉전기의 '상호확증파괴' 논리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쓸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쟁을 억제했다고 주장합니다. 억지를 위한 보유와 실제 사용은 윤리적으로 다른 문제인지, 위협 자체가 이미 부도덕한 것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립니다.

이 지점에서 정전론은 가장 곤혹스러운 역설과 마주합니다. 만약 핵무기를 실제로 쓰는 것이 거의 언제나 부도덕하다면, 쓰지 않을 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하는 일은 도덕적일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그 위협이 진심이어야만 억지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실행할 각오 자체가 이미 부도덕하다고 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위협 덕분에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의도의 윤리와 결과의 윤리가 이보다 더 날카롭게 충돌하는 자리도 드뭅니다. 핵무기는 결국 정전론에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테러리즘과 비대칭 전쟁

테러리즘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스 인 벨로의 구별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대부분의 윤리 전통은 이를 강하게 비난합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질문이 뒤따릅니다. 테러에 맞서는 국가의 대응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테러범이 민간인 사이에 숨을 때,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서 발생하는 민간 피해는 누구의 책임인가. 비대칭 전쟁은 정전론이 상정한 '국가 대 국가'의 깔끔한 구도를 무너뜨립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까다로운 윤리적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약한 쪽이 정규군과 정면으로 맞설 수 없을 때, 그들은 흔히 민간인 사이에 섞여 들어 싸웁니다. 이른바 '인간 방패'의 문제입니다. 만약 한쪽이 일부러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의 책임은 방아쇠를 당긴 쪽에 있을까요, 아니면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린 쪽에 있을까요. 정전론은 양쪽 모두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 것은 명백한 위반이지만, 그렇다고 공격하는 쪽이 비례성과 신중함의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위반이 나의 무제한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이 원칙은 비대칭 전쟁에서 가장 자주, 가장 비극적으로 시험에 듭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테러리즘은 '명분의 정당함이 수단의 정당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정전론의 핵심을 다시 일깨웁니다. 억압받는 쪽이 아무리 절박한 대의를 지녔다 해도, 의도적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노리는 순간 그 행위는 정당성을 잃습니다. 유스 아드 벨룸과 유스 인 벨로를 분리하는 정전론의 오랜 지혜가 여기서 다시 빛을 발합니다. 시작의 명분이 아무리 절실해도, 수행의 잔혹함은 따로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선제공격과 예방전쟁의 함정

가장 미묘한 회색지대 중 하나는 '먼저 치는 것'의 정당성입니다. 여기서 두 개념을 구별해야 합니다. 적이 칼을 빼 들고 막 달려드는 순간, 그것을 먼저 막는 '선제공격(preemption)'과, 언젠가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에서 미리 치는 '예방전쟁(prevention)'은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전통은 임박하고 명백한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은 정당방위의 연장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반면 예방전쟁은 매우 의심스럽게 여깁니다. '언젠가'라는 말은 거의 모든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위협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정보가 얼마나 확실한지를 가리는 일이 핵심인데, 현실에서 그 판단은 불확실하고 정치적 압력에 취약합니다. 역사는 '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사실은 '예방'에 가까웠던 전쟁들의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이 문제의 뿌리에는 정보의 불확실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위협이 정말로 임박했는지는 사후에야 분명해지지만, 결정은 그 전에 내려야 합니다. 게다가 위협을 판단하는 쪽은 흔히 위협을 과장할 동기를 가집니다. 두려움은 늘 실제보다 위험을 크게 보이게 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는 그 두려움을 부추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제와 예방을 가르는 일은 단지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증거로 그 판단을 내렸는지를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하는 책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전론은 여기서 '먼저 치는 것'을 전면 금지하지도, 함부로 허용하지도 않은 채, 가장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인도적 개입이라는 딜레마

또 하나의 어려운 문제는 '남의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잔혹 행위에 외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가입니다. 한쪽에는 주권 존중의 원칙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인간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참상이 있습니다. 학살이 벌어지는데 국경을 핑계로 손 놓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

여기서 '보호책임'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 등장합니다. 한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학살할 때, 국제 사회가 개입할 책임이 있다는 발상입니다. 그러나 이 원칙은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인도주의'로 포장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늘 맞닿아 있습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주의자의 경고가 여기서 가장 무겁게 울립니다. 개입할 책임과 개입하지 않을 신중함 사이에서, 정전론은 또 한 번 시험에 듭니다.

여기에는 더욱 곤혹스러운 비대칭이 있습니다. 개입하여 발생한 피해는 누구나 똑똑히 보고 비난하지만, 개입하지 않아 방치된 학살은 흔히 책임의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잊힙니다. 행동한 자는 그 결과로 심판받지만, 외면한 자는 침묵 속에 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적 개입의 윤리는 '하면 비난, 안 하면 망각'이라는 잔인한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정전론은 이 어느 쪽에도 손쉬운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입의 동기와 수단과 결과를 모두 따져 묻는 동시에, 외면 또한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현대 국제법: 직관이 제도가 되기까지

흥미롭게도, 2천 년에 걸친 이 철학적 논쟁은 20세기에 들어 구체적인 국제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포로와 민간인 보호를 명문화했습니다. 이는 유스 인 벨로의 직관이 조약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유엔 헌장은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자위권과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라는 예외를 둡니다. 이는 유스 아드 벨룸의 '정당한 명분'과 '정당한 권위'를 국제 규범으로 옮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법과 현실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습니다. 강대국이 규칙을 어겨도 강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현실주의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철학자의 사유에 머물던 기준이 인류가 합의한 규범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합니다. 멜로스의 사절이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말했을 때, 적어도 오늘날 우리는 그 말에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고 응수할 언어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전쟁 이후의 정의(jus post bellum)'라는 세 번째 차원도 논의됩니다. 전쟁을 끝낸 뒤의 처리, 즉 점령, 재건, 전범 처벌, 화해를 어떻게 정의롭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전쟁의 끝맺음이 잘못되면 다음 전쟁의 씨앗이 된다는 역사의 교훈이 이 논의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승리보다 어려운 평화

전쟁의 윤리를 따질 때 우리는 흔히 '시작'과 '수행'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정전론의 가장 새로운 지평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 펼쳐집니다. 총성이 멎은 순간이 곧 정의의 완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윤리적 과제가 바로 그때 시작됩니다.

역사는 잘못 끝난 전쟁이 어떻게 다음 전쟁을 잉태하는지를 거듭 보여 주었습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가혹한 굴욕과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기면, 그 원한은 다음 세대의 복수심으로 자라납니다. 반대로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을 무너진 채로 방치하면, 그 공백은 혼란과 또 다른 폭력으로 채워집니다. 전쟁을 끝내는 일은 전쟁을 시작하는 일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지혜를 요구합니다.

전쟁 이후의 정의는 몇 가지 까다로운 질문을 품습니다. 책임 있는 자를 어떻게 처벌하되 집단 전체에 대한 보복으로 번지지 않게 할 것인가. 무너진 사회의 질서와 생계를 누가,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땅에서 다시 살아가야 할 때, 진실을 밝히는 일과 용서하는 일 사이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점령은 언제까지, 어떤 권한으로 이루어져야 정당한가. 이 물음들에는 깔끔한 공식이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의로운 평화는 단지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워 가야 하는 무엇이라는 점입니다.

이 새로운 차원이 정전론에 더해진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전쟁의 윤리가 단지 폭력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폭력이 남긴 폐허 위에 다시 인간다운 질서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쟁이란, 잘 시작되고 잘 수행될 뿐 아니라 잘 끝맺어지는 전쟁일 것입니다.

포위된 도시 안에서: 한 장면의 윤리

추상적인 원칙들을 잠시 내려놓고, 인류가 수없이 되풀이해 온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것은 '포위'입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굶주리게 하여 항복을 받아 내는 일은 전쟁의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포위라는 장면만큼 정전론의 모든 원칙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무대도 드뭅니다.

상상해 봅시다. 한 군대가 적의 요새 도시를 에워쌌습니다. 성안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인과 여자와 아이가 함께 갇혀 있습니다. 포위군은 보급로를 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식량이 바닥나고, 가장 먼저 쓰러지는 것은 싸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구별의 원칙은 잔인한 역설에 부딪힙니다. 포위는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지만, 그 효과는 가장 약한 비전투원에게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미칩니다. 군사 목표를 겨눈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 굶어 죽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성벽 안쪽의 지휘관에게도 시험이 닥칩니다. 그는 항복하여 비전투원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여 명예와 대의를 지킬 것인가. 그가 버틸수록 성안의 고통은 깊어집니다. 한편 포위하는 쪽의 지휘관은 묻습니다. 굶주림이라는 무기는 정당한가. 민간인을 피난시킬 통로를 열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적의 저항을 돕는 일이 되는가. 항복한 도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멜로스의 비극이 바로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가장 어두운 답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한 장면 안에 정전론의 거의 모든 물음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구별과 비례성, 필요성과 인도주의, 그리고 항복과 자비의 문제까지. 그래서 전쟁법의 역사에서 포위와 봉쇄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는 늘 가장 까다로운 주제였습니다. 굶주림을 전쟁의 무기로 삼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인류는 오랫동안 씨름해 왔고, 현대의 국제 인도법은 비전투원을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행위에 점점 더 엄격한 제한을 두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한 장면의 참혹함이 결국 규칙을 낳은 것입니다.

전쟁법은 어떻게 글로 쓰였나: 리버 법전의 탄생

추상적인 윤리가 구체적인 규칙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격렬한 내전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헌법 아래 살던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상황에서, 전선의 지휘관들은 끊임없이 곤란한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항복한 적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적의 보급로에 있는 민간 마을을 불태워도 되는가. 포로를 인질로 삼아도 되는가. 전통과 관습은 있었지만, 명문화된 기준은 없었습니다.

이때 독일 출신의 법학자 프랜시스 리버가 군의 의뢰를 받아 전쟁 수행에 관한 행동 지침을 한 권의 문서로 정리했습니다. 흔히 '리버 법전'이라 불리는 이 지침은 군대가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조항의 형태로 명시한 최초의 근대적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그 안에는 불필요한 잔혹 행위의 금지, 포로의 인도적 대우, 민간인과 그 재산의 보호 같은 원칙들이 담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법전이 군사적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으면서도, 승리를 위해서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그으려 했습니다. 바로 이 균형 감각이 정전론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리버 법전의 진정한 의의는 그것이 한 나라의 군대를 위한 지침에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문서는 곧 다른 나라들의 군사 규범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국제적인 전쟁법 조약들이 만들어지는 데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책상 위에서 정리된 조항들이 결국 인류 공통의 규범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윤리적 직관이 어떻게 종이 위의 규칙이 되고, 그 규칙이 다시 국경을 넘어 퍼져 나가는지를 이만큼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한 전투의 처참한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어느 사업가가, 부상병들이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들판에 방치되어 죽어 가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돌볼 중립적인 구호 조직과, 그것을 보장할 국제 협약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호소는 곧 부상병 보호를 위한 최초의 국제 협약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도적 구호 활동과 제네바 협약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두 갈래의 흐름, 즉 군대 내부의 행동 지침과 부상자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19세기 후반은 바로 이 직관이 폭발적으로 제도화된 시기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움직임은 전쟁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이 짐승의 일이 되지 않도록 인간의 흔적을 남기려 한 시도였습니다. 정전론이 오랫동안 품어 온 '절제'의 정신이, 마침내 종이와 도장의 형태로 세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트롤리 앞의 지휘관: 이중 효과를 다시 생각하다

앞서 잠깐 등장한 '이중 효과의 원리'는 정전론에서 가장 정교하면서도 가장 논쟁적인 도구입니다. 이를 익숙한 사고실험에 빗대어 보면 그 미묘함이 한결 또렷해집니다.

윤리학 수업에서 흔히 등장하는 '트롤리 문제'를 떠올려 봅시다. 폭주하는 전차가 다섯 사람을 향해 달려가고, 당신이 선로를 바꾸면 한 사람이 대신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로를 바꾸는 쪽을 택합니다. 그런데 변형된 문제에서는, 한 사람을 다리 위에서 밀어 전차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결과는 똑같이 한 명의 죽음으로 다섯을 살리는 것인데도, 이번에는 대부분이 망설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첫 번째 경우 그 한 사람의 죽음은 내 행위의 '예견된 부수적 결과'이지만, 두 번째 경우 그 사람의 죽음은 다섯을 살리기 위한 '수단' 그 자체입니다.

이중 효과의 원리는 바로 이 구별 위에 서 있습니다. 군사 목표를 파괴하려는 폭격에서 민간인이 죽는 것과,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 일부러 민간인을 죽여 공포를 퍼뜨리는 것은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윤리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자에서 민간인의 죽음은 의도되지 않은 부수적 피해이고, 후자에서 그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중 효과의 네 가지 조건]
1. 행위 자체가 선하거나 적어도 중립적일 것
2. 나쁜 결과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닐 것
3. 나쁜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다만 예견할 뿐일 것
4. 좋은 결과가 나쁜 결과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클 것(비례성)

물론 이 원리에는 강한 반론도 따릅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나 쉽게 핑계가 됩니다. 민간 피해가 충분히 예견되었는데도 작전을 강행한 지휘관이 "그것은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변명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비판자들은 의도와 예견 사이의 경계가 실제 전장에서는 흐릿하며, 이 원리가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이중 효과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도덕적 차이, 즉 '죽이려 한 죽음'과 '막지 못한 죽음'의 차이를 언어로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명령과 양심 사이: 병사 개인의 책임

전쟁의 윤리를 따질 때 우리는 흔히 국가나 지휘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병사입니다. 여기서 정전론의 가장 인간적인 질문이 솟아오릅니다. 부당한 명령을 받은 병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병사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전통적인 정전론에는 '병사의 도덕적 평등'이라는 흥미로운 발상이 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이 정의로운 쪽이든 부정의한 쪽이든, 일단 전장에 선 병사들은 같은 규칙 아래 놓인다는 것입니다. 침략군의 병사라 해서 방어군의 병사보다 더 쉽게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며, 양쪽 모두 구별과 비례의 원칙을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이 발상은 전쟁의 시작에 대한 책임(유스 아드 벨룸)과 전쟁의 수행에 대한 책임(유스 인 벨로)을 분리하는 데서 나옵니다. 명분의 옳고 그름은 대개 병사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평등론은 거센 반론에 부딪힙니다. 일부 철학자들은 부정의한 전쟁에 가담한 병사가 정의로운 방어자와 정말로 '도덕적으로 대등'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강도를 돕는 자와 강도에 맞서는 자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요. 이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며, 현대 전쟁 윤리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상관의 명령'이라는 방패입니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은 역사 속 수많은 잔혹 행위의 변명으로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국제법과 군사 윤리의 큰 흐름은 명백히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이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병사에게는 명령을 따를 의무뿐 아니라, 명백한 범죄적 명령을 거부할 의무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장의 공포와 군대의 위계 속에서 한 개인이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면, 이 원칙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팽팽한 긴장을 안고 있습니다.

전투원이라 부를 수 있는가: 소년병이라는 비극

구별의 원칙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르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그 '전투원'이 아직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어린이들이 무기를 손에 쥐고 전선에 내몰리는 일은 정전론의 범주를 근본부터 흔드는 비극입니다.

소년병은 두 가지 모순된 얼굴을 동시에 지닙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손에 총을 든 위협이며, 맞은편 병사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전투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입니다. 적군의 소년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병사가 느낄 갈등은 어떤 윤리 이론으로도 깔끔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그를 위협으로 보아 제압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해자로 보아 보호해야 하는가. 구별의 원칙이 상정한 '책임 있는 성인 전투원'이라는 전제가 여기서 무너집니다.

대부분의 국제 규범은 어린이를 전투에 동원하는 행위 자체를 중대한 범죄로 규정합니다. 책임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몬 어른들, 그리고 그것을 조직한 세력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전장에서 마주친 병사 개인에게는 여전히 풀기 힘든 딜레마가 남습니다. 소년병의 존재는 전쟁이 단지 어른들의 일이 아니며, 그 폭력의 가장 깊은 상처가 가장 약한 이들에게 새겨진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일깨웁니다. 정전론의 깔끔한 범주들이 가장 무력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돈으로 사는 전쟁: 용병과 민간 군사 기업

전쟁은 오랫동안 국가의 일로 여겨졌습니다. 정전론의 '정당한 권위'라는 조건도 그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돈을 받고 싸우는 사적인 집단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용병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직접 군대를 기르는 대신 용병 대장에게 전쟁을 맡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고용된 군대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고향도, 죽어도 좋다는 대의도 없었습니다. 보수가 끊기면 등을 돌렸고, 때로는 고용주를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충성이 신념이 아니라 계약에 묶여 있을 때, 전쟁의 윤리는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까요.

현대에 들어 이 문제는 '민간 군사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돌아왔습니다. 경비, 보급, 훈련, 정보 같은 군사적 기능의 상당 부분이 사기업에 위탁되는 일이 늘었습니다. 이는 어려운 질문들을 낳습니다. 사기업 직원이 전장에서 무력을 행사할 때, 그는 전투원인가 민간인인가. 그가 규칙을 어겼을 때, 책임은 그 개인에게 있는가, 고용한 기업에 있는가, 아니면 기업을 고용한 국가에 있는가. 군복을 입은 병사라면 명확했을 책임의 사슬이, 계약서의 그늘 속에서 흐릿해집니다.

이 문제가 정전론에 던지는 도전은 근본적입니다. 전쟁의 정당성을 따지는 모든 기준은 '누가 그 전쟁의 책임을 지는가'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점점 더 시장의 거래처럼 이루어진다면, 책임의 주체 자체가 흩어져 버립니다. 정당한 권위라는 오래된 조건이 새로운 시대에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멀리서 누르는 방아쇠: 드론과 원격 전쟁

전쟁의 모습은 기술과 함께 끊임없이 바뀌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무인 항공기, 즉 드론의 등장은 전쟁 윤리에 새로운 질문들을 한꺼번에 쏟아 냈습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안전한 통제실에서 화면을 보며 표적을 타격하는 전쟁은, 정전론이 상정한 풍경과 사뭇 다릅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을 보겠습니다. 원격 조종은 자국 병사를 위험에 노출하지 않으며, 정밀 유도 기술은 원칙적으로 더 정확한 타격, 즉 더 나은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됩니다. 무차별 폭격에 비하면 민간 피해를 줄일 잠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전론의 언어로 말하면, 드론은 비례성과 구별의 원칙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우려도 강력합니다. 첫째, 전쟁의 문턱이 낮아진다는 문제입니다. 자국 병사의 희생이 없는 전쟁은 정치적 부담이 적어, 무력 사용을 너무 쉽게 선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최후의 수단'이라는 조건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거리의 문제입니다. 화면 너머의 표적을 누르는 일이 양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는가. 전쟁이 게임처럼 느껴질 때, 그 추상화된 거리가 도덕적 감각을 무디게 하지는 않는가. 셋째, 책임의 문제입니다. 정보 판단의 오류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었을 때, 그 책임은 조종사에게 있는가, 명령권자에게 있는가, 정보를 제공한 쪽에 있는가.

드론은 결국 오래된 원칙들을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묻게 만듭니다. 구별, 비례성, 필요성이라는 기준 자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과 행위 사이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거리야말로, 기술이 전쟁 윤리에 던지는 가장 깊은 물음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쟁점들을 한 표에 모으면

지금까지 살펴본 현대의 까다로운 사례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정전론의 오래된 원칙들이 새로운 현실과 부딪히는 자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를 한눈에 정리하면 각 쟁점이 어떤 원칙을 시험하는지가 또렷해집니다.

[현대의 쟁점과 흔들리는 원칙]
쟁점              주로 시험받는 원칙        핵심 물음
민간인의 경계      구별, 비례성             누가 전투원이고 누가 아닌가
핵무기            구별, 비례성             도시를 지우는 무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테러리즘          구별, 정당한 권위        민간인 표적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소년병            구별                     피해자이자 위협인 존재를 어떻게 대하나
용병과 민간 기업   정당한 권위, 책임        전쟁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드론과 원격전      최후의 수단, 비례성, 책임  거리가 양심을 무디게 하는가
선제와 예방        정당한 명분, 최후의 수단  위협은 얼마나 임박해야 하는가
인도적 개입        정당한 권위, 올바른 의도  주권과 인간 보호 중 무엇이 앞서는가

이 표가 말해 주는 것은, 시대가 아무리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만들어 내도 우리가 던지는 근본 물음은 놀랍도록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기와 전장의 모습은 바뀌어도, '누구를 해치는가'와 '꼭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두 질문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습니다. 정전론의 원칙들이 2천 년을 살아남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현상 자체를 향한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지킨 자의 상처: 전쟁이 남기는 양심의 무게

정전론의 모든 원칙을 완벽히 지킨 병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민간인을 해치지 않았고, 비례성을 어기지 않았으며, 오직 정당한 명령만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무런 짐도 지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규칙을 지킨 병사조차도, 자신이 한 일과 보고 겪은 일의 무게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정전론이 자칫 놓치기 쉬운 진실을 일깨웁니다. 윤리적 기준은 어떤 행위가 '허용되는가'를 가려 주지만, 허용된 행위라고 해서 그것이 마음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해친다는 일은, 설령 그것이 정당한 방어였다 해도, 인간의 양심에 무언가를 새깁니다. 어떤 윤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정당한 행위 뒤에 남는 도덕적 잔여라고 부릅니다. 옳은 일을 했더라도 그 일이 비극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정전론에 한 겹의 깊이를 더합니다. 그것은 전쟁이 '정당하기만 하면 깨끗하다'는 손쉬운 위안을 거부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당한 전쟁조차 '슬픔으로 수행하는 의무'라 불렀던 그 마음이, 1600년이 지나 전쟁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 병사들의 침묵 속에서 다시 메아리치는 셈입니다. 정의로운 전쟁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정전론이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마지막 진실인지도 모릅니다.

잠깐, 생각해 볼까요 — 미니 퀴즈

직접 판단해 보면 정전론의 까다로움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정답이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 문제 1: 침략을 당한 나라가 반격하면서, 적국의 무기 공장을 폭격해 인근 민간인 일부가 죽었습니다. 이 공격은 유스 인 벨로의 어떤 원리로 평가될까요. 그리고 그 평가는 '의도'와 '비례성'에 따라 어떻게 갈릴까요.
  • 문제 2: 한 나라가 "우리는 선제 방어를 한 것"이라며 이웃 나라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정전론의 어떤 조건들이 이 주장의 진위를 검증하는 데 동원될 수 있을까요.
  • 문제 3: 평화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똑같이 "정전론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정반대입니다. 각각 무엇을 우려하는 것일까요.

잠시 스스로 답을 떠올려 보세요. 아래에 실마리를 적어 두었습니다.

실마리 1번: '구별'과 '이중 효과의 원리'가 핵심입니다. 공장은 군사 목표이므로 공격 자체는 정당화될 여지가 있으나, 민간 피해가 군사적 이익에 비해 과도하다면 비례성 위반이 됩니다. 의도가 공장이었는지 민간인이었는지가 평가를 가릅니다.

실마리 2번: '정당한 명분'(실제로 임박한 위협이 있었는가)과 '최후의 수단'(외교가 소진되었는가), '올바른 의도'(방어가 진짜 목적인가)가 검증 잣대가 됩니다. 거의 모든 침략자가 방어를 주장한다는 점이 함정입니다.

실마리 3번: 평화주의자는 정전론이 전쟁에 도덕적 명분을 빌려줘 전쟁을 부추긴다고 우려합니다. 현실주의자는 정전론의 도덕적 제약이 결정적 순간에 발목을 잡아 패배를 부른다고 우려합니다. 같은 결론, 정반대의 이유입니다.

조금 더 어려운 문제들도 풀어 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새로운 쟁점들이 어떻게 정전론의 원칙과 맞물리는지 떠올려 보세요.

  • 문제 4: 한 병사가 적의 소년병과 마주쳤습니다. 그 아이는 분명 무기를 들고 있지만, 동시에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구별'의 원칙은 왜 깔끔하게 작동하지 못할까요.
  • 문제 5: 멀리 떨어진 통제실에서 드론으로 표적을 타격하는 전쟁이, 역설적으로 '최후의 수단' 조건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문제 6: 한 지휘관이 명백히 비인도적인 명령을 받았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이 왜 면책의 근거가 되기 어려운지, 정전론과 국제법의 관점에서 설명해 보세요.

실마리 4번: 구별의 원칙은 '책임 있는 성인 전투원'을 전제합니다. 소년병은 위협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두 얼굴을 지니기에, 위협으로 제압해야 할 대상인지 피해자로 보호해야 할 대상인지가 충돌합니다. 책임은 무엇보다 아이를 전장에 내몬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실마리 5번: 자국 병사의 희생이 없으면 전쟁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듭니다. 그 결과 무력 사용을 더 쉽게 선택하게 되어, 다른 평화적 수단을 충분히 시도하기도 전에 무력에 의존할 위험이 커집니다. 이것이 '최후의 수단' 조건을 약화시킵니다.

실마리 6번: 명백히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이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국제법과 군사 윤리의 큰 흐름입니다. 병사에게는 명령을 따를 의무뿐 아니라 명백한 범죄적 명령을 거부할 의무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부정의한가: 성공 가능성의 역설

유스 아드 벨룸의 조건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것 하나가 '성공 가능성'입니다. 이길 가망이 거의 없는 전쟁은 무의미한 희생만 낳으므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뜻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패배가 뻔한 싸움에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은 잔인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 조건은 곧 불편한 역설을 드러냅니다. 만약 성공 가능성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압도적으로 강한 침략자에 맞선 약소국의 저항은 '이길 수 없으니 부정의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약자는 저항할 권리조차 없고 그저 굴복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멜로스에서 아테네가 했던 말과 위험할 만큼 가까워집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하라는 그 논리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상가는 성공 가능성을 좁은 군사적 승리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어떤 저항은 당장의 승리를 가져오지 못해도, 불의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후대에 정신적 자산을 남깁니다. 또 어떤 저항은 즉각적인 패배 너머에서 국제 사회의 개입이나 여론의 변화 같은 더 넓은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성공이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결국 이 조건은 무모한 희생을 경계하라는 지혜와, 약자의 저항할 권리를 짓밟지 말라는 또 다른 지혜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요구합니다. 정전론의 어떤 조건도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이, 여기서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저울에 올릴 수 없는 것을 저울질하기: 비례성의 난제

정전론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 가운데 하나가 '비례성'입니다. 전쟁의 이익이 그 해악을 능가해야 하고, 군사적 이득에 비해 과도한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 원칙은 직관적으로 무척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적용하려 들면 곧바로 곤란에 부딪힙니다. 도대체 무엇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야 할까요.

한쪽에는 군사적 이익이 있습니다. 다리 하나를 끊으면 적의 보급이 며칠 늦어진다는 식의 계산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그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애초에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의 진격을 사흘 늦추는 일'과 '민간인 열 명의 목숨'을 어떻게 같은 저울에 올린단 말입니까. 게다가 전장에서 지휘관은 완전한 정보도, 충분한 시간도 갖지 못합니다. 그는 불확실한 정보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잴 수 없는 것을 재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그래서 비례성은 정확한 계산이라기보다 신중한 판단에 가깝습니다. 명백히 과도한 것을 걸러 내는 데는 유용하지만, 미묘한 경계에서는 늘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바로 이 모호함이 비례성 원칙의 약점이자 동시에 강점입니다. 약점인 까닭은 그것이 악용될 여지를 주기 때문이고, 강점인 까닭은 그것이 기계적인 공식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 있는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전론은 끝내 계산기가 사람을 대신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잴 수 없는 것을 그래도 재려 애쓰는 양심, 그 무거운 책임을 누군가는 떠안아야 한다는 요구. 어쩌면 그것이 비례성 원칙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르치는 바일 것입니다.

거부할 권리, 거부할 의무: 양심적 병역 거부

명령과 양심 사이의 긴장은 또 하나의 오래된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한 개인이 특정한 전쟁을 부정의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는 그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거부는 정당한가, 아니면 단지 의무의 방기일 뿐인가.

여기에는 두 갈래의 양심적 거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전쟁을,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절대적 평화주의자의 입장입니다. 그는 어떤 전쟁이든 자신의 신념상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회가 이런 신념을 존중하여, 무기를 드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더 까다로운 경우입니다. '선택적' 거부, 즉 전쟁 일반은 받아들이되 '이 전쟁'만은 부정의하다고 판단하여 거부하는 입장입니다.

선택적 거부는 정전론의 논리와 곧장 맞닿습니다. 정전론이 어떤 전쟁은 정당하고 어떤 전쟁은 부정의하다고 가른다면, 한 개인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부정의한 전쟁을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그 논리의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도 분명합니다. 만약 모든 병사가 저마다 전쟁의 정당성을 판단하여 참여 여부를 정한다면, 군대라는 조직과 국가의 방위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개인이 전쟁의 정당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긴장에는 손쉬운 해법이 없습니다. 다만 이 물음이 던지는 깊은 통찰이 있습니다. 정전론이 전쟁의 정당성을 '검토 가능한 기준'으로 만들었다면, 그 검토의 주체는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라 결국 칼을 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적 거부의 가능성은 전쟁의 책임이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향해서도 물어질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가능성이, 부당한 명령에 대한 마지막 제동 장치로 남아 있습니다.

정전론은 정말 전쟁을 줄였을까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라면 자연스레 한 가지 회의가 들 법합니다. 2천 년에 걸쳐 이토록 정교한 사유를 쌓아 올렸는데, 정작 세상에서 전쟁은 줄어들었는가. 이 물음에는 정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정전론이 전쟁을 없애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멈춘 적은 거의 없었고, 가장 정교한 윤리 이론을 가진 시대에도 가장 끔찍한 전쟁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정전론은 무력한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꼭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전론의 효과는 전쟁을 '없애는' 데서가 아니라 전쟁을 '제약하는' 데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로를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고, 항복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고,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일을 부끄러운 범죄로 낙인찍는 일. 이런 제약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것이 지켜진 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구해졌습니다. 막지 못한 비극은 뉴스가 되지만, 미리 막아낸 비극은 기록조차 남지 않는 법입니다.

동시에 비판자들의 경고도 무겁게 새겨야 합니다. 정전론의 언어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포장지로 쓰인 사례가 분명히 있었고, 강대국이 규칙을 어겨도 강제할 힘이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떤 도구든 좋은 손에서는 절제의 장치가 되고 나쁜 손에서는 위장의 도구가 됩니다. 정전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유는 한 번 완성되면 끝나는 정답이 아니라, 매 시대가 다시 벼리고 감시하며 지켜 가야 하는 살아 있는 전통입니다. 그 끊임없는 긴장 속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정전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답이 아니라 질문을 위한 도구

정전론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을 어렵게 만드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여섯 가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하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그 까다로움 자체가 함부로 칼을 들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전론은 완성된 정답이 아닙니다. 평화주의자의 말처럼 그 기준은 악용될 수 있고, 현실주의자의 말처럼 강제할 권력 없이는 무력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정전론의 진짜 가치는 결론을 주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쟁 앞에서 던져야 할 올바른 질문의 목록을 건네줍니다. 꼭 필요한가. 다른 길은 없는가. 누구를 해치게 되는가. 끝맺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들의 목록은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가 저지른 가장 큰 비극들은 대개 이 질문들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너무 쉽게 답해 버렸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손쉬운 답에 만족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정전론은 제 몫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글에서 멜로스의 차가운 대화로 시작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슬픈 칼과 아퀴나스의 세 조건을 지나, 핵무기와 드론과 소년병이라는 현대의 막다른 골목들까지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 긴 여정에서 한 가지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전쟁 앞에서도 끝내 옳고 그름을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기가 활에서 미사일로 바뀌고, 전장이 들판에서 화면 속으로 옮겨 가는 동안에도, '이것이 정말 정당한가'라는 물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멜로스의 비극이 2천 년이 지나도록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인간이 끝내 '힘이 곧 정의'라는 말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정전론이 태어난 자리이며, 어쩌면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인지도 모릅니다. 정전론은 우리에게 깔끔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답하지 못하도록 막아 줍니다. 어쩌면 그 머뭇거림, 그 망설임이야말로 전쟁이라는 가장 어두운 인간사에 남은 한 줌의 빛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의로운 전쟁은 과연 가능할까요, 아니면 그것은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이상일 뿐일까요. 그리고 만약 그것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상이라 해도, 그 이상을 향해 손을 뻗는 일에는 여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더 생각해 볼 거리

  • 만약 모든 나라가 정전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전쟁은 줄어들까요, 아니면 모두가 자기 전쟁을 '정의롭다'고 포장하게 될까요.
  • 인공지능과 자율 무기의 시대에 '구별'과 '비례성'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알고리즘이 표적을 정하는 전쟁에서 윤리는 어떻게 작동해야 할까요.
  • 전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더 정교한 윤리 이론일까요, 아니면 전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제도와 경제적 상호의존일까요.
  • 부정의한 전쟁에 동원된 병사와 정의로운 방어에 나선 병사를 정말로 '도덕적으로 대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시작의 책임과 수행의 책임은 어디까지 분리될 수 있을까요.
  • 전쟁이 점점 더 민간 기업과 원격 기술에 위탁된다면,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물음은 어떻게 답해져야 할까요. 책임의 주체가 흩어진 전쟁을 우리는 여전히 윤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정의로운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일까요, 아니면 적극적으로 세워 가야 하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그 평화를 세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 압도적으로 강한 적에 맞선 약소국의 저항은, 이길 가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의해질까요. '성공'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 일상에 스며든 정전론의 언어

이 모든 논의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전론이 다듬어 온 사고의 틀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갈등을 두고 "그건 너무 과했어"라고 말할 때 비례성을 떠올리고, "그래도 그건 선을 넘었어"라고 할 때 구별의 감각을 발동합니다. "대화로 풀 수 있었는데 왜 곧장 싸웠냐"는 책망에는 최후의 수단의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정전론의 여섯 가지, 세 가지 조건은 사실 거대한 국가 간 전쟁에만 적용되는 추상적 규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이 부딪히는 모든 자리에서 '그래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묻는 보편적 사고의 문법입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꼭 필요한 만큼만 했는가. 무고한 이를 끌어들이지는 않았는가. 끝맺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전쟁터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갈등 앞에서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그래서 정전론을 공부하는 일은 단지 먼 옛날의 전쟁 윤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과 정의가 부딪힐 때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이며, 결국 인간으로서 어떻게 절제할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2천 년 전 멜로스의 바닷가에서 시작된 그 불편한 물음이, 오늘 우리의 가장 사소한 다툼에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묘한 위안을 줍니다. 우리는 여전히, 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