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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 낭만이라는 환상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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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환상이 청구서가 될 때

한 여자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그리고 그 소설들이 약속한 삶을 실제로 살려고 했다.

그것이 마담 보바리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인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줄거리 아래에는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 전체를 바꾼 책이 놓여 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1856년부터 1857년에 걸쳐 이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프랑스의 독자들은 큰 사건이 없는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영웅도, 극적인 반전도, 도덕적 교훈도 이 책에는 거의 없다.

대신 한 평범한 여자가 자신의 평범한 삶을 견디지 못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을 통해 플로베르는 인간의 보편적인 무언가를 건드렸다.

이 글에서는 먼저 플로베르와 19세기 프랑스 리얼리즘을 살핀다.

이어서 책을 유명하게 만든 1857년 외설 재판, 주인공 엠마 보바리의 초상, 환상과 현실의 충돌을 뜻하는 보바리슴을 다룬다.

그다음 플로베르의 문체와 기법, 불륜과 빚과 파국의 구조, 부르주아 지방 생활에 대한 비판, 근대 소설의 출발점으로서의 위상을 차례로 짚는다.

마지막으로 엠마를 심판하기보다 공감하며 읽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은 재미있는 오락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지를 이보다 정직하게 그린 소설은 드물다.


1. 플로베르와 19세기 프랑스 리얼리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1821년 프랑스 루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플로베르는 병원 관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부와 죽음이 일상이던 그 환경은 그의 냉정한 관찰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신경 질환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글쓰기에 전념했다.

낭만주의의 아이였던 리얼리스트

플로베르 자신은 낭만주의의 자장 안에서 자랐다.

그는 젊은 시절 빅토르 위고를 숭배했고, 이국적이고 격정적인 이야기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안의 그 낭만적 충동을 냉철하게 의심하는 작가가 되었다.

마담 보바리는 어떤 의미에서 낭만주의를 향한 그 자신의 애증을 해부한 작품이다.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태도

19세기 중반 프랑스 문학에는 리얼리즘이라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리얼리즘은 이상화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삶을 그리려 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미 방대한 인간 희극 연작에서 당대 사회를 촘촘히 기록했다.

플로베르는 그 흐름을 이어받되, 작가의 감정을 철저히 지운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에게 소설은 사회의 거울일 뿐 아니라, 언어 그 자체로 완성되는 예술이었다.


2. 책을 유명하게 만든 1857년 외설 재판

마담 보바리는 처음에 잡지에 연재되었다.

1856년 문예지 르뷔 드 파리에 나뉘어 실린 것이다.

그런데 이 연재가 프랑스 당국의 주목을 끌었다.

공중도덕과 종교에 대한 모독 혐의

1857년 초, 플로베르는 재판정에 섰다.

혐의는 공중도덕과 종교, 그리고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소설이 불륜을 매력적으로 그려 독자를 타락시킨다고 주장했다.

특히 엠마가 죄의식 없이 쾌락을 좇는 장면들이 문제가 되었다.

무죄,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홍보 효과

플로베르의 변호인은 작품 전체가 오히려 악덕의 비참한 결말을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법정은 결국 플로베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재판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재판으로 유명해진 소설이 1857년 책으로 출간되자 날개 돋친 듯 팔린 것이다.

스캔들은 검열관의 의도와 정반대로 이 작품을 문학사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같은 해 시인 샤를 보들레르도 시집 악의 꽃으로 비슷한 재판을 받았다.

두 사건은 당시 프랑스 사회가 예술과 도덕의 경계를 놓고 얼마나 예민했는지를 보여준다.


3. 엠마 보바리 — 시골 의사의 아내

엠마 루오는 노르망디의 부유한 농가에서 자란 딸이다.

그녀는 수녀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몰래 들여온 연애 소설들을 탐독했다.

소설이 심어 놓은 기대

그 소설들은 그녀에게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달빛, 기사, 탄식, 격정, 영원한 헌신.

엠마는 그런 감정이 실제 삶에도 있으리라 믿었다.

이 믿음이 그녀의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된다.

샤를 보바리라는 현실

엠마는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한다.

샤를은 성실하고 다정하지만, 상상력이라고는 없는 남자다.

그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시로 옮길 줄 모른다.

엠마가 원한 것은 안정된 남편이 아니라 소설 속 연인이었다.

결혼식 다음 날부터 그녀의 실망은 시작된다.

지방 소도시 토스트, 그리고 뒤이은 용빌의 단조로운 일상이 그녀를 서서히 질식시킨다.


4. 보바리슴 — 환상과 현실의 충돌

이 소설은 하나의 단어를 세상에 남겼다.

바로 보바리슴이다.

자신을 실제와 다르게 보는 습관

프랑스 철학자 쥘 드 고티에는 훗날 이 소설에서 하나의 개념을 끌어냈다.

보바리슴이란 자기 자신을 실제와 다른 존재로 상상하는 성향을 뜻한다.

엠마는 자신이 지루한 시골 아내가 아니라 낭만 소설의 여주인공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과 실제 처지 사이의 간극이 그녀를 괴롭힌다.

채워지지 않는 갈망

문제는 엠마가 나쁜 사람이라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녀의 갈망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종류라는 데 있다.

그녀가 좇는 것은 특정한 남자나 사물이 아니다.

그녀가 좇는 것은 소설이 약속한 강렬한 감정 그 자체다.

연인이 생기면 잠시 황홀하지만, 곧 그 관계도 지루해진다.

현실의 어떤 것도 상상 속 이미지만큼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얼핏 본다.

광고와 영화와 소셜 미디어가 심어 놓은 기대와 실제 삶의 간극.

그 간극에서 오는 불만은 21세기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5. 플로베르의 문체 — 정확한 낱말을 찾아서

마담 보바리가 위대한 이유는 줄거리만이 아니다.

그 이유의 절반은 문장 그 자체에 있다.

르 모 쥐스트, 정확한 낱말

플로베르는 정확한 낱말, 즉 르 모 쥐스트를 찾는 데 집착했다.

그는 하루 종일 한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곤 했다.

동의어들 사이에서 오직 하나의 옳은 단어를 골라내려 한 것이다.

그는 완성한 문장을 큰 소리로 읽으며 리듬을 점검했다고 전해진다.

이 소설을 쓰는 데 그는 약 5년을 들였다.

자유간접화법

플로베르가 정교하게 다듬은 기법 중 하나가 자유간접화법이다.

이것은 인물의 생각을 삼인칭 서술 안에 녹여 넣는 방식이다.

따옴표도, 그가 생각했다는 표지도 없이, 서술과 인물의 내면이 뒤섞인다.

그 결과 독자는 엠마의 감정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밖에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그녀에게 공감하는 동시에 그녀의 자기기만을 알아챈다.

작가의 냉정한 부재

플로베르는 서술자가 판단을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작가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신처럼 어디에나 있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화자는 엠마를 비난하지도, 변호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 냉정한 거리감이야말로 이 책의 도덕적 힘의 원천이다.


6. 불륜, 불어나는 빚, 닫히는 덫

엠마의 이야기는 두 개의 축을 따라 무너져 간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다.

두 번의 연애

엠마는 먼저 부유한 지주 로돌프에게 마음을 준다.

로돌프는 노련한 바람둥이로, 그녀의 열정을 이용할 뿐 책임질 생각은 없다.

그가 함께 도망치기로 한 약속을 저버렸을 때, 엠마는 병이 날 만큼 무너진다.

이후 그녀는 젊은 서기 레옹과 다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이 연애 역시 그녀가 소설에서 배운 영원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빚이라는 조용한 사냥꾼

한편 엠마는 상인 뢰뢰에게서 사치품을 외상으로 사들인다.

옷과 장식품, 밀회를 위한 비용이 쌓여 간다.

뢰뢰는 인내심 있는 사냥꾼처럼 그녀의 빚이 불어나기를 기다린다.

엠마는 남편 몰래 어음에 서명하고, 빚을 돌려막기 시작한다.

닫히는 덫

마침내 채권자들이 압류를 예고한다.

엠마는 도움을 청하러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가지만 모두 그녀를 외면한다.

로돌프도, 레옹도,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낭만의 환상이 실제 계산서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궁지에 몰린 엠마는 결국 비소를 삼킨다.

그녀의 죽음은 소설 속 낭만적 죽음과 달리 길고 고통스럽고 추하다.

플로베르는 그 마지막 장면조차 미화하지 않는다.


7. 부르주아 지방 생활에 대한 비판

이 소설은 엠마 한 사람만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를 둘러싼 사회 전체를 조용히 겨눈다.

약제사 오메라는 인물

용빌에는 오메라는 약제사가 산다.

그는 진보와 과학과 이성을 끝없이 떠들어 대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공허한 상투어의 나열일 뿐이다.

그는 겉으로는 계몽을, 속으로는 오직 자신의 평판과 훈장을 좇는다.

플로베르는 오메를 통해 부르주아의 자기만족과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상투어라는 병

플로베르가 가장 미워한 것은 상투어였다.

생각 없이 되풀이되는 말, 남의 의견을 자기 것인 양 읊는 태도.

엠마의 낭만적 환상도, 오메의 진보적 수사도 뿌리는 같다.

둘 다 빌려 온 언어로 자기 삶을 채운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빌려 온 삶 전체에 대한 비판이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세계

소설의 마지막에서 정직하고 성실했던 샤를마저 무너진다.

반대로 속물적인 오메는 그토록 바라던 훈장을 받는다.

플로베르는 여기서 어떤 도덕적 위안도 주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 보상받고 나쁜 사람이 벌받는 세계는 또 하나의 낭만적 환상이라는 듯이.


8. 근대 소설의 출발점

마담 보바리는 흔히 최초의 진정한 근대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문체가 곧 내용이 되다

이 작품 이후 소설에서 문체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게 되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만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해졌다.

플로베르는 완벽한 산문 그 자체가 예술의 목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후대에 남긴 유산

이후 세대의 작가들은 플로베르에게 깊이 빚졌다.

기 드 모파상은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도 플로베르의 관찰 정신을 이어받았다.

먼 훗날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작가들의 정교한 내면 서술도 이 뿌리에서 자란다.

아래는 이 소설의 핵심 긴장을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엠마가 기대한 삶              엠마가 살아낸 삶
  ┌───────────────────┐      ┌───────────────────┐
  │  격정적인 사랑        │      │  다정하나 무딘 남편   │
  │  파리의 무도회        │      │  용빌의 진창길        │
  │  영원한 헌신          │  ≠   │  식어 버린 연애        │
  │  낭만적 죽음          │      │  비소와 빚과 고통      │
  └───────────────────┘      └───────────────────┘
         소설이 준 이미지            현실의 청구서
                  \                    /
                   \                  /
                    ▼                ▼
                  이 간극이 곧 보바리슴이다

이 도식이 보여 주듯, 비극은 엠마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나온다.


9. 엠마를 심판이 아니라 공감으로 읽기

엠마 보바리는 오랫동안 오해받아 온 인물이다.

어떤 독자는 그녀를 어리석고 이기적인 여자로만 본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으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녀에게 주어진 좁은 세계

19세기 프랑스에서 엠마 같은 여성에게 열린 길은 지극히 좁았다.

그녀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도 없었다.

결혼이 사실상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모험이었다.

그 결혼이 지루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그녀에게는 도망칠 출구가 거의 없었다.

그녀의 갈망을 무조건 비난하기 전에, 그 갈망이 갇혀 있던 좁은 방을 먼저 보아야 한다.

우리 안의 엠마

엠마의 진짜 힘은 우리가 그녀에게서 우리 자신을 본다는 데 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진짜 삶이 시작되리라는 느낌.

다음 직장, 다음 도시, 다음 관계에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

그 미묘한 불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품고 있다.

플로베르가 유명한 말로 이 작품에 대해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장이 있다.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라는 말이다.

이 출처가 확실치 않은 유명한 문장은 한 가지 진실을 담고 있다.

플로베르는 엠마를 밖에서 조롱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그 환상을 해부한 것이다.

공감과 비판 사이의 균형

이 소설을 잘 읽는 법은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 것이다.

엠마를 미화할 필요도, 매도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환상이 어리석었다는 것과, 그 환상을 낳은 세계가 답답했다는 것.

이 두 진실은 동시에 참이다.

플로베르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두 겹의 시선이다.


마치며 — 거울로서의 소설

마담 보바리는 편안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하나의 거울을 내밀 뿐이다.

그 거울 속에는 현실보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끝없이 갈망하는 인간이 있다.

엠마의 비극은 그녀가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특별히 인간적이어서 일어난다.

그녀는 소설이 약속한 삶과 실제로 주어진 삶 사이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그 간극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화면 속 완벽한 삶을 보며 우리 자신의 평범함을 견디지 못한다.

플로베르는 그 오래된 병에 이름을 붙였고, 그것을 완벽한 문장으로 새겨 넣었다.

이 소설이 백 년이 훨씬 넘도록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프랑스 시골의 오래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각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거리

  1. 엠마의 불만은 어디까지가 그녀 개인의 성격 탓이고, 어디부터가 그녀에게 주어진 사회의 탓일까?

  2. 소설, 영화, 소셜 미디어가 심어 놓은 기대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가?

  3. 플로베르가 서술자의 판단을 지워 버린 선택은 이 이야기를 더 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차갑게 만드는가?

  4. 만약 엠마에게 직업과 자립의 길이 열려 있었다면, 그녀의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