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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자아를 분리하기 — 정체성이 직무에 붙어 있을 때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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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가 직함에서 시작할 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대부분의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합니다. 회사 이름과 직함으로 시작하는 소개는 편리하고, 대개 상대가 원하는 정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문장이 소개를 넘어 설명이 될 때입니다. 나에 대한 설명의 대부분이 직무로 이루어져 있으면, 직무에 생기는 사건이 나에 대한 사건이 됩니다. 그리고 직무에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사건이 자주 생깁니다.

정체성이 직무에 붙으면 생기는 일

조직 개편, 팀 해체, 담당 시스템의 폐기, 스택 교체, 리더 교체. 이런 것들은 원래 업무상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정체성이 거기 걸려 있으면, 같은 사건이 존재에 대한 사건으로 도착합니다.

그러면 세 가지가 따라옵니다.

  • 반응의 크기가 사건의 크기와 맞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하나가 취소된 일에 몇 주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크게 흔들리는 동안 판단은 정확해지지 않습니다.
  • 피드백이 인격 평가로 수신됩니다. 리뷰의 지적, 설계에 대한 반대, 평가 면담의 한 줄이 능력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나에 대한 판결로 들립니다. 그러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 떠나기 어려워집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직장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반납하는 일처럼 느껴지면, 조건이 나빠져도 남게 됩니다. 활주로와는 다른 종류의 협상력 손실입니다.

셋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자기 가치의 지분이 한 곳에 몰려 있다는 것.

일을 덜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자주 오해를 삽니다. 일에 정체성을 걸지 말라는 문장이 일을 덜 진지하게 대하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애정의 크기가 아니라 지분 구조의 문제입니다. 일을 아주 좋아해도 되고, 잘하고 싶어도 되고, 오래 붙들어도 됩니다. 다만 자기 가치의 전부가 거기 놓여 있으면 사건 하나가 전체를 흔듭니다. 지분이 나뉜 사람은 같은 사건을 겪어도 딛고 설 바닥이 남아 있습니다.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지분이 나뉜 사람이 일에서 더 침착합니다. 걸린 것이 전부가 아니면 위험한 말을 할 수 있고, 반대 의견을 낼 수 있고,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떼어 놓는 것은 태만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정확하게 하기 위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회사 밖 정체성의 세 가지 조건

취미를 가지라는 말은 조언으로서 약합니다. 조건을 붙여야 실제로 작동합니다.

  • 평가받지 않는 활동일 것. 잘해야 하는 두 번째 무대를 만들면 불안은 줄지 않고 늘어납니다. 못해도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 회사가 없어져도 계속될 것. 사내 동호회나 업무에 붙은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고용에 묶여 있으면 같은 사건에 함께 사라집니다.
  • 나를 그 맥락에서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가장 자주 빠지는 조건입니다. 활동만으로는 정체성이 되지 않습니다. 혼자 하는 시간은 회복에 좋지만, 나를 개발자로 알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면 두 번째 다리는 생기지 않습니다.

시작 크기는 주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크게 잡은 계획은 대개 두 달 안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직업과 인접한 것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또 하나의 성과 무대가 되면 첫 번째 조건을 어긴 셈입니다.

일 안에서도 직함이 아니라 서술로

회사 밖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 안에서도 정체성을 어디에 붙일지는 고를 수 있습니다.

직함은 조직이 소유합니다. 승진과 개편과 직급 체계 개정으로 바뀌고, 회사를 옮기면 같은 이름이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 내가 하는 일의 종류에 대한 서술은 내가 소유합니다. 대용량 데이터의 정합성을 지키는 사람, 남이 만든 시스템을 읽어 내는 사람, 얽힌 요구를 결정 가능한 문장으로 바꾸는 사람.

서술로 잡아 두면 조직 변화가 정체성 사건이 되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팀이 바뀌어도 서술은 따라옵니다. 이 축을 고르는 문제는 무엇으로 알려질 것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직함 없이 세 문장

행동은 하나입니다. 종이에 세 문장으로 내가 하는 일을 씁니다. 조건은 하나. 회사 이름, 팀 이름, 직함, 직급을 쓰지 않습니다.

써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단입니다. 나에 대한 설명이 조직이 붙여 준 라벨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가 그 자리에서 보입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일 밖의 나를 한 문장으로 써 보는 것. 두 번째 문장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만들지 않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드는 데는 몇 년이 아니라 몇 달이 듭니다.

이 조언이 안 맞는 경우

지금 시간이 정말 없는 시기가 있습니다. 갓난아이가 있거나, 간병 중이거나, 마감이 몇 달째 이어지는 시기. 그때 회사 밖 정체성을 만들라는 말은 또 하나의 할 일 목록이 됩니다. 그런 시기에는 이미 있는 관계를 끊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새로 만드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실제로 인생의 중심이고,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중심의 위치가 아니라 중심이 하나뿐일 때의 취약성입니다. 중심을 옮기라는 말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딛고 설 두 번째 지점을 미리 만들어 두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정체성의 문제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소진인 경우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즐겁지 않고 어떤 활동도 시작되지 않는 상태라면, 필요한 것은 새 정체성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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