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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지식과 영혼을 건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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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다 아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사람

한 노학자가 서재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배웠습니다.

신학까지 파고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파우스트 1부의 첫 독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평생을 지식에 바쳤는데, 그 지식이 그를 살아 있게 만들지 못합니다.

이 감정은 낯설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이루고도 여전히 허기를 느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바로 그 허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괴테라는 인물과 그가 육십 년에 걸쳐 쓴 이 작품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파우스트 전설의 뿌리,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내기, 그레트헨의 비극을 살핍니다.

끝없는 노력이라는 인간 조건, 2부의 방대한 알레고리, 그리고 마지막의 구원도 짚습니다.

파우스트적 거래라는 관념이 오늘날 기술과 야망의 세계에서 어떻게 되울리는지도 균형 있게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두 부로 된 이 긴 시극을 오늘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하겠습니다.

1. 괴테와 바이마르 고전주의 — 한 생애가 담긴 작품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32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극작가이자 자연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이자 행정가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영역에 걸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파우스트는 그 긴 생애 전체를 관통한 작업이었습니다.

괴테는 젊은 시절부터 이 소재를 붙잡았습니다.

1770년대의 초기 원고, 이른바 우어파우스트에 이미 그 씨앗이 있었습니다.

1부는 180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32년에야 세상에 나왔습니다.

착상에서 완성까지 약 육십 년이 걸린 셈입니다.

바이마르라는 무대

괴테는 1775년 무렵 바이마르 공국으로 옮겨 갔습니다.

작은 공국이었지만, 그곳은 독일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의 우정과 협업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끈 흐름을 흔히 바이마르 고전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흐름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화, 균형, 절제를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내면과 감정도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파우스트에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격정적인 젊은 감성과 고전적 절제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납니다.

2. 파우스트 전설 — 괴테 이전의 이야기

파우스트는 괴테가 처음 만든 인물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16세기 독일의 실존 인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라는 방랑 학자이자 연금술사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를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 자라났습니다.

악마와 거래해 금지된 지식과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587년에는 이 전설을 엮은 민중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른바 파우스트 서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파우스트는 대체로 경고의 대상입니다.

교만하게 신의 한계를 넘으려다 파멸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말로의 파우스트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도 이 소재를 다루었습니다.

그의 희곡 포스터스 박사는 16세기 말에 쓰였습니다.

말로의 파우스트 역시 마지막에 지옥으로 끌려갑니다.

이 판본에서 거래는 명확한 파멸로 끝납니다.

괴테는 이 오랜 전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파멸이 아니라 구원으로 향합니다.

이 전환이야말로 괴테 작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3.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 — 특이한 내기

이야기는 하늘의 서막에서 시작합니다.

신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인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타락시킬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신은 그 시도를 허락합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라고 신은 말합니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욥기의 인물처럼 하나의 시험대에 오릅니다.

계약의 조건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다가갑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파우스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시중들겠다고 제안합니다.

대신 저세상에서 파우스트가 그를 섬기기로 합니다.

그런데 괴테가 설정한 내기의 조건이 독특합니다.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계약은 대개 정해진 햇수를 담보로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릅니다.

파우스트는 어떤 순간에도 만족해 머무르지 않겠다고 걸었습니다.

만약 그가 어느 한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때 그는 진 것입니다.

그 순간 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됩니다.

즉 이 내기의 핵심은 쾌락이 아니라 정지입니다.

파우스트가 만족하여 노력을 멈추는 순간, 그는 패배합니다.

노력과 만족

이 조건은 작품 전체의 열쇠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만족시키려 합니다.

향락으로, 사랑으로, 권력으로 그를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면, 악마는 이길 수 없습니다.

괴테는 이렇게 만족과 노력을 정면으로 마주 세웁니다.

멈추면 지고, 계속 나아가면 지지 않습니다.

아래는 이 내기의 조건을 간단히 정리한 그림입니다.

        파우스트의 내기

  메피스토펠레스 -------- 파우스트
        |                    |
   이승에서 봉사        저승에서 봉사
        |                    |
        +--------------------+
                 |
        승패를 가르는 순간
                 |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
                 |
     이 말을 하면 → 파우스트 패배
     끝내 안 하면 → 파우스트 구원

4. 그레트헨의 비극 — 1부의 심장

파우스트는 젊음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마르가레테, 애칭으로 그레트헨이라 불리는 순박한 처녀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곧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무너지는 세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삶에 들어옵니다.

그 결과 그녀의 세계가 하나씩 무너집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습니다.

그녀의 오빠 발렌틴도 파우스트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의 아이를 갖습니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절망 속에서 갓난아기를 죽이고 맙니다.

그녀는 붙잡혀 사형을 앞두고 감옥에 갇힙니다.

구원의 목소리

파우스트는 그녀를 구하러 감옥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도망치기를 거부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신의 심판에 자신을 맡깁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녀가 심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그녀가 구원받았다는 목소리가 울립니다.

1부는 이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을 남기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레트헨의 이야기는 지식인의 오만이 평범한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 줍니다.

여기서 희생되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구체적 삶입니다.

5. 끊임없는 노력 — 인간의 조건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핵심은 노력입니다.

그는 결코 한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경험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에 머무르지 못하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갑니다.

이 끝없는 움직임은 괴테가 본 인간의 본질입니다.

축복이자 저주

이 노력은 양면을 지닙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멈추지 않기에 인간은 성장하고 창조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주변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레트헨의 비극이 그 대가였습니다.

괴테는 노력을 단순히 미화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인간은 방황하고, 방황하며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럼에도 괴테는 이 노력 자체를 인간 존엄의 근거로 봅니다.

멈추지 않으려는 의지가 곧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균형 잡힌 시선이 파우스트를 단순한 도덕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6. 2부의 알레고리와 파우스트의 구원

2부는 1부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1부가 개인의 비극이라면, 2부는 세계의 무대로 넓어집니다.

방대한 상징의 세계

2부에서 파우스트는 황제의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절세의 미녀 헬레네를 만납니다.

트로이의 헬레네, 서양 미의 상징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은 고전 고대와 근대 정신의 상징적 결합으로 읽힙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이포리온이라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러나 오이포리온은 너무 높이 날아오르려다 추락합니다.

이 장면은 무한을 향한 인간 열망의 위험을 암시합니다.

2부에는 이처럼 신화와 역사와 상징이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만큼 2부는 읽기 어렵기로도 유명합니다.

마지막 사업과 구원

마지막에 이르러 파우스트는 거대한 계획에 몰두합니다.

그는 바다를 막아 새로운 땅을 만들려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갈 터전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때 파우스트는 눈이 멀었지만, 그 미래의 환영을 봅니다.

그 순간 그는 마침내 만족의 말을 내뱉습니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순간을 향해 멈추라 하겠다고 말합니다.

내기의 조건대로라면 이제 그는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숨을 거둡니다.

노력한 자는 구원받는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영혼을 거두려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갑니다.

작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고.

그레트헨의 영혼도 그를 위해 중재합니다.

파우스트는 마침내 위로 올려집니다.

여기서 괴테는 오랜 전설의 결말을 뒤집습니다.

파우스트는 지옥이 아니라 은총으로 향합니다.

만족의 말조차, 그것이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기에 구원의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노력 그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7. 파우스트적 거래 — 하나의 문화적 관념

파우스트 이야기는 하나의 관용어를 남겼습니다.

바로 파우스트적 거래, 또는 파우스트적 흥정입니다.

이 말은 더 큰 힘이나 지식이나 성공을 위해 소중한 것을 내주는 선택을 뜻합니다.

흔히 그 대가는 양심이나 영혼, 혹은 인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널리 쓰입니다.

야망과 기술의 시대에서

현대에서 이 비유는 특히 야망과 기술을 두고 자주 등장합니다.

한계를 모르는 성장, 멈출 줄 모르는 확장은 파우스트적이라 불리곤 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얻는 대가로 무언가를 잃는 선택 앞에서 이 말이 떠오릅니다.

다만 여기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순히 야망을 단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노력하는 인간을 끝내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파우스트적 거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읽는 것은 절반의 독해입니다.

절제된 시선

기술과 야망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떤 대가로 나아가느냐입니다.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구원받은 것은 그의 노력이 결국 타인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막아 사람들의 터전을 만들려 한 그 방향이 중요했습니다.

반면 그레트헨의 비극은 자기 욕망만을 좇을 때의 대가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이 질문 앞에서 파우스트적 거래는 경고이자 동시에 격려가 됩니다.

8. 세계 문학 속 괴테의 위치

괴테는 독일 문학의 정점으로 꼽힙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근대 유럽 문학의 거장으로 봅니다.

그의 영향은 독일어권을 훌쩍 넘어섭니다.

넓은 영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 전역에 감성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빌헬름 마이스터 연작은 성장 소설의 한 전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그의 사상과 예술이 집약된 정점입니다.

괴테는 세계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널리 퍼뜨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문학이 한 나라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공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후대에 남긴 유산

괴테 이후의 수많은 작가와 사상가가 파우스트에 응답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20세기에 파우스트 박사라는 소설로 이 주제를 다시 썼습니다.

음악에서도 구노, 베를리오즈, 리스트, 말러 등이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파우스트는 문학을 넘어 예술 전반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한 편의 시극이 이토록 넓은 반향을 남긴 예는 드뭅니다.

9. 오늘, 두 부로 된 시극을 읽는 법

파우스트는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닙니다.

특히 2부는 배경 지식 없이 읽으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태도를 지니면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1부부터, 인물에 기대어

처음 읽는다면 1부부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1부는 그레트헨의 이야기라는 뚜렷한 줄기를 지닙니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2부는 그 뒤에 도전해도 늦지 않습니다.

모든 상징을 다 풀려 하지 않기

2부를 읽을 때는 모든 알레고리를 완벽히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큰 흐름과 핵심 장면을 붙잡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헬레네와의 만남, 마지막 간척 사업과 구원, 이 두 축만 잡아도 많은 것이 보입니다.

세부는 다시 읽을 때 조금씩 채워 가면 됩니다.

번역과 해설을 활용하기

파우스트는 운문으로 쓰인 시극입니다.

원문의 운율을 온전히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좋은 번역과 해설이 함께 있는 판본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각주와 해제는 낯선 신화와 역사의 문턱을 낮추어 줍니다.

질문을 안고 읽기

무엇보다 이 작품은 질문을 안고 읽을 때 살아납니다.

나는 무엇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나의 노력은 누구를 향하는가.

이런 물음과 함께라면, 이백 년 전의 시극이 오늘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마치며 — 방황하기에 인간이다

파우스트는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알아도 만족하지 못했고, 가져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 끝없는 갈망은 때로 주변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레트헨의 비극이 그 무거운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괴테는 이 방황하는 인간을 끝내 저버리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한 인간은 방황하지만, 바로 그 노력이 그를 구원의 길로 이끕니다.

괴테가 남긴 이 역설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여전히 나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나아감이 어디를 향하느냐일 것입니다.

파우스트는 그 방향을 스스로 묻게 하는 오래된 거울입니다.

생각할 거리

  1. 당신은 어떤 순간에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그 만족은 축복일까요, 위험일까요?

  2.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구원받은 이유는 그의 노력이 타인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노력의 방향은 그 가치를 얼마나 바꾼다고 생각하나요?

  3. 그레트헨의 비극에서 파우스트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지식인의 오만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4. 파우스트적 거래라는 말은 현대 기술과 야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입니다. 이 비유는 경고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격려에 가까울까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