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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ju Kim
- @fjvbn20031
하나
세이라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은 '잔잔'이었다.
이름 그대로 그곳은 늘 잔잔했다. 바람이 불어도 나뭇잎은 소리 없이 흔들렸고, 개울물은 돌 사이를 미끄러지면서도 졸졸거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을의 자랑으로 여겼다. 잔잔에서는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웃을 때도 입꼬리만 올렸고, 울 때도 어깨만 떨었다. 아침 인사는 가벼운 고갯짓이었고, 작별은 손바닥을 펴 보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세이라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어머니는 세이라가 울려고 하면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막았다. 입을 막는 손은 따뜻했지만 떨림이 없었다. 그 손은 세이라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리는 위험한 것이라고. 소리를 내면 누군가 듣는다고. 누군가 들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마을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었다. 규칙은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잿빛 돌에 새겨져 있었다. 글자는 비바람에 닳아 절반쯤 흐려졌지만, 사람들은 그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소리는 평화를 깨뜨린다. 침묵은 우리를 지킨다. 목소리를 가진 자는 마을을 떠난다."
세이라는 그 돌 앞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을 늦췄다. 글자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고 싶었지만,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 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잔잔에서는 늘 누군가 보고 있었다.
마을의 하루는 고요 속에서 흘러갔다. 사람들은 밭을 갈고, 베를 짜고, 물을 길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콧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다. 아이들조차 술래잡기를 할 때 소리 없이 뛰어다녔다. 누군가를 부를 때는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잔잔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소리마저 죽이며 걷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세이라는 종종 궁금했다. 다른 마을도 이럴까. 산 너머에도 사람들이 산다고 들었는데, 그들도 이렇게 조용할까. 하지만 그 궁금증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질문조차도 소리였으니까.
둘
세이라가 처음으로 '진짜 소리'를 들은 것은 열두 살 가을이었다.
그날 세이라는 마을 북쪽의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어른들은 숲의 가장자리까지만 가라고 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고. 하지만 세이라는 가장 통통한 버섯들이 늘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무들이 빽빽해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그러다 세이라는 멈춰 섰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을에서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소리였다. 높고, 맑고,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위로 올라갔다가 부드럽게 내려왔다. 처음에 세이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 무섭다기보다는, 무언가가 안에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가지 끝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회색과 갈색이 섞인, 볼품없는 새였다. 그런데 그 작은 몸에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는 노래하고 있었다.
세이라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노래는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는 누가 듣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 놓을 뿐이었다.
세이라는 조심스레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마을에서라면 화들짝 놀랐을 그 소리에, 새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세이라 쪽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한번 목청껏 노래했다. 마치 함께 노래하자고 권하는 것 같았다.
세이라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나 곧 다시 닫았다. 오랜 습관이, 두려움이, 입술을 무겁게 눌렀다. 세이라는 새의 노래를 가슴에 담은 채,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이라는 처음으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새는 소리를 내도 떠나지 않는데, 왜 사람은 떠나야 할까. 그 작은 의문이 가슴속에서 자꾸만 메아리쳤다.
셋
그 의문은 작은 씨앗처럼 세이라의 마음 깊은 곳에 떨어졌다.
세이라는 누구에게도 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입 밖에 내는 순간, 어머니의 손이 다시 입을 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세이라는 혼자 있을 때마다 그 노래를 떠올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밤이 되면 세이라는 이불 속에서 입을 아주 살짝 벌렸다. 그리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다만 소리를 내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다. 새처럼, 높고 맑게, 끊어졌다가 이어지게.
어느 밤, 세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그것은 콧노래에 가까운, 거의 숨소리 같은 음이었다. 세이라는 깜짝 놀라 입을 닫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한참 동안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이라는 다시 한번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세이라는 무언가가 자신 안에서 천천히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오래도록 꽉 묶여 있던 매듭이 한 가닥씩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넷
시간이 흘러 세이라는 열일곱이 되었다.
그동안 세이라는 자신만의 비밀을 키워 왔다. 그것은 노래였다. 누구에게도 들려준 적 없는, 오직 숲속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새들만이 듣는 노래였다. 세이라는 일주일에 한 번씩 버섯을 핑계로 숲에 들어갔고, 거기서 마음껏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갈라지고 떨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멀리까지 퍼졌다.
세이라는 깨달았다. 목소리는 쓰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하게 막혀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막힌 것을 풀어 주면, 목소리는 언제든 돌아온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세이라는 숲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세이라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세이라는 그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들켰다. 이제 마을에 알려질 것이다. 자신은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눈가에 깊은 주름을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노래를 듣는구나."
그것은 세이라가 마을 밖에서 처음으로 들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낮고, 거칠고, 오래 쓰지 않아 녹슨 듯한 목소리. 그러나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다섯
노인의 이름은 도안이라고 했다.
도안은 오래전 잔잔에서 쫓겨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광장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단 한 번.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 한 번의 노래로 그는 마을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지." 도안은 천천히 말했다.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잠시 쉬어야 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목소리는 금방 지쳤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 노래가 누구를 해쳤나.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 다만... 사람들이 두려워했을 뿐이지."
세이라는 도안 곁에 앉았다. "무엇을 두려워한 거예요?"
"소리가 가진 힘을." 도안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단다. 한 사람이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도 소리를 내고 싶어져. 그렇게 소리가 모이면, 그 누구도 함부로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지. 마을을 다스리는 자들은 그것을 두려워한 거야. 그래서 가장 처음부터, 가장 작은 소리부터 막은 거란다."
세이라는 오래도록 침묵의 의미를 곱씹었다. 침묵은 평화가 아니었다. 침묵은 두려움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두려워하며, 서로의 입을 막으며 살아온 것이었다.
도안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뜻이었을지도 몰라. 오래전, 이 마을에 큰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서로 고함치고 싸우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지.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을 거야. 차라리 모두 입을 다물자고. 그러면 다툴 일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침묵이 시작된 거란다."
"하지만 그건..." 세이라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 다툼을 멈추려다, 마음을 나누는 일까지 멈춰 버린 거지. 두려움을 막으려다, 사랑을 나누는 목소리까지 막아 버린 거야. 약이 너무 독하면 병보다 무서운 법이란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으셨어요? 이 숲에서 계속 사셨잖아요. 더 멀리, 소리를 내도 되는 곳으로 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도안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마을 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는 기다려야 하니까. 언젠가 너 같은 아이가 올 거라고 믿었거든. 노래를 멈추지 않는 아이가. 그 아이가 마을로 돌아가, 잠긴 문을 안에서 열어 줄 거라고 말이다. 밖에서 두드려서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단다. 안에 있는 사람만이 열 수 있는 문이."
세이라는 그 말의 무게를 가만히 느꼈다. 어쩌면 도안은, 오랜 세월 이 숲에서 자신을 기다려 온 것인지도 몰랐다.
여섯
그해 겨울, 잔잔에 큰 병이 돌았다.
병은 노인들과 아이들을 먼저 덮쳤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앓았다. 신음조차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의원은 약을 나눠 주었지만, 약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병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 곁에서도, 가족들은 그저 손만 잡고 어깨만 떨었다.
세이라는 도안을 떠올렸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숲을 찾았을 때 도안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세이라는 그가 걱정되었지만, 마을의 병이 깊어지며 숲에 갈 틈이 없었다.
세이라의 어린 동생도 병에 걸렸다. 동생은 밤마다 열에 들떠 식은땀을 흘렸다. 세이라는 동생의 손을 잡고 밤을 지새웠다. 동생의 작은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세이라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침묵의 규칙은 병상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세이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어머니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자식이 앓는데도 자장가 한 소절 불러 줄 수 없는 그 침묵이, 세이라에게는 견딜 수 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동생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 세이라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숲에서 들었던 새의 노래가, 도안과 함께 부른 노래가 떠올랐다.
세이라는 망설였다. 노래를 부르면 마을에 알려질 것이다. 자신은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지금 고통 속에 있었다.
세이라는 결심했다.
세이라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동생의 귀에만 닿을 만큼 작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장가였다. 숲에서 세이라가 스스로 지어낸, 세상에 하나뿐인 노래였다.
놀랍게도 동생의 가쁜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식은땀에 젖은 이마가 차츰 편안해졌다. 동생은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깊고 평온한 잠이었다.
일곱
다음 날 아침, 동생의 열이 내렸다.
세이라는 동생을 살린 것이 노래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약이 그제야 들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단지 운이 좋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동생은 혼자가 아니었다. 세이라도 혼자가 아니었다. 두려움 속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가닿았다.
세이라는 어머니에게 그 밤의 일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손이 다시 입을 막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세이라는 이제 그 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머니." 세이라는 처음으로 어머니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저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어머니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눈이 커지고, 입술이 떨렸다. 한참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세이라의 뺨을 감쌌다. 입을 막던 그 손이, 이번에는 뺨을 감싸고 있었다.
"네 할머니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소리를 내고 있었다. "네 할머니도 노래를 했단다. 내가 너만 했을 때. 그래서 떠나셨지. 나는...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세이라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침묵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잘못된 방식의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는 것을.
여덟
소문은 조용히 퍼졌다.
세이라가 노래로 동생을 달랬다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아니 손짓에서 손짓으로 전해졌다. 처음에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규칙을 어긴 아이. 마을을 위험에 빠뜨릴 아이. 어떤 이들은 세이라를 멀리했다.
그러나 병은 여전히 마을을 떠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지쳐 갔다. 침묵 속에서 앓고, 침묵 속에서 떠나보내는 일에 모두가 지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또 다른 집에서 아이가 심하게 앓았다. 그 집의 어머니가 세이라를 찾아왔다. 그녀는 말없이 세이라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다.
세이라는 그 아이의 곁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그 집의 어머니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막혀 있던 것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날 밤 이후,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집에서, 그다음 날에는 또 다른 집에서 세이라를 불렀다. 세이라는 앓는 이들의 곁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모든 병을 낫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래가 흐르는 방에서는, 사람들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죽어 가는 이의 곁에서도, 가족은 이제 손만 잡는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세이라는 알았다. 자신이 막힌 문을 안에서 열고 있다는 것을. 도안이 말했던 바로 그 문을.
아홉
봄이 왔을 때, 잔잔은 더 이상 예전의 잔잔이 아니었다.
병은 봄과 함께 차츰 물러갔다. 마을은 많은 이를 떠나보냈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조심스러웠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울면, 부모는 입을 막는 대신 등을 토닥였다. 누군가 슬프면, 곁에서 나직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광장에서는 가끔, 아주 가끔 콧노래가 들렸다.
어느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이윽고 여럿이. 서툴고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였다. 그러나 그 노래에는 오랫동안 잠겨 있던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어떤 이는 웃었고, 어떤 이는 울었다. 잔잔에서 그렇게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울려 퍼진 것은 처음이었다.
세이라는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세이라에게 떠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광장 한가운데의 잿빛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글자를 외우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돌 위에 들꽃 한 다발을 올려놓기도 했다.
어느 날 세이라는 숲으로 도안을 찾아갔다. 마을이 달라졌다고, 문이 열렸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안이 앉아 있던 쓰러진 나무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무 곁에는 작은 흙무덤이 하나 솟아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정갈한 무덤이었다. 세이라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도안은 끝내 마을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것일까. 아니면, 멀리서나마 그 노랫소리를 들었을까.
그 무덤가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회색과 갈색이 섞인, 볼품없는, 그러나 더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였다.
세이라는 그 새를 향해 가만히 노래를 불렀다. 새도 화답하듯 노래했다. 숲은 두 개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열
그해 여름, 세이라는 마을 아이들을 숲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 부모가 망설였다. 그러나 세이라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새들의 노래를 흉내 내는 법, 슬플 때 마음을 달래는 자장가, 기쁠 때 부르는 가벼운 가락. 아이들의 목소리는 처음엔 작고 떨렸지만, 이내 숲을 가득 채웠다.
세이라는 아이들에게 도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전 단 한 번의 노래로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사람. 그러나 끝내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숲에서 누군가를 기다린 사람.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너희는 떠나지 않아도 돼." 세이라가 말했다. "노래해도 괜찮아. 마음껏, 두려움 없이."
한 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로요? 정말 떠나지 않아도 돼요?"
세이라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하나둘 따라 불렀다. 숲은 어느새 수많은 목소리로 가득 찼다. 도안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였다.
세이라는 알았다. 침묵은 결코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평화는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목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 줄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마을의 이름은 여전히 잔잔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잔잔하면서도, 살아 있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침묵'이라는 한 단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침묵은 때로 평화처럼 보입니다. 다툼이 없고, 소란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모두가 두려워서 입을 다무는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억압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를 배려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침묵은 더없이 따뜻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고요함이라도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세이라의 이야기에서 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새의 노래에 마음이 움직인 한 아이, 동생을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낸 한 사람이었습니다. 변화는 늘 그렇게, 가장 작고 사적인 자리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여기 있다고, 그리고 당신도 거기 있음을 안다고 서로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속 어딘가에 묶여 있던 작은 매듭 하나를 느슨하게 풀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