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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드: 목적이 불확실할 때 — 명확함은 출발의 조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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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이 글은 에세이입니다

먼저 이 글의 성격을 밝혀 둡니다. 시리즈의 다른 글들과 달리 이 글은 연구를 정리한 글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목적이나 삶의 의미 같은 주제에도 실증 연구들이 있지만, 이 글의 주장은 그 연구들을 근거로 세운 것이 아니라 구조적 논증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인용도 거의 없습니다. 설득되지 않는 부분은 한 사람의 관점으로 읽으면 됩니다.

다루려는 상태는 이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이걸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다 방향이 있어 보이는데 나만 없는 것 같다. 목적이 정해지면 그때 제대로 하겠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이 고르는 기본 전략은 기다림입니다. 명확해질 때까지 탐색을 미루는 것. 이 글은 그 전략이 왜 구조적으로 불리한지, 그리고 명확함 없이 움직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적습니다.

기다림이 기본 전략이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가 미리 주어지는 환경에서 20년 가까이 훈련받습니다. 학교에는 늘 다음 시험이 있고, 입시에는 명확한 채점 기준이 있습니다. 문제를 받으면 푸는 능력은 그렇게 길러지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정하는 능력은 커리큘럼에 없습니다. 그러니 졸업과 함께 출제자가 사라졌을 때 다음 문제지를 기다리며 서 있게 되는 것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입니다. 다만 결함이 아니라는 것과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1. 목적은 상류가 아니라 하류에 있다

기다리는 전략의 바탕에는 순서에 대한 가정이 있습니다. 목적이 먼저 정해지고, 그다음 그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 계획의 언어로는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목적이 만들어지는 순서는 대체로 반대입니다.

무언가를 오래 해서 잘하게 되면, 잘하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쓸모가 생기고, 그 쓸모가 관계와 요청을 만들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그 전체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됩니다. 그 이름이 목적입니다. 즉 목적은 계획의 입력값이 아니라 축적의 출력값에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이 소명이라고 확신하고 출발한 교사보다,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잘하게 됐고 잘하니 의미가 깊어졌다는 교사가 훨씬 흔합니다.

기다리는 전략이 그럴듯해 보이는 데는 완성된 이야기들의 착시도 한몫합니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회고는 거의 언제나 목적에서 출발하는 서사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것을 꿈꿨고, 그래서 이 길을 걸었다는 식으로. 그런데 회고는 결말을 아는 사람이 쓰는 글입니다. 수많은 우연과 방황과 그만둔 일들은 편집에서 잘려 나가고, 남은 장면들이 한 줄의 목적으로 소급해서 꿰어집니다. 완성된 전기를 뒤에서 앞으로 읽으면 목적이 먼저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삶을 앞에서 뒤로 살았던 당사자에게 목적은 대개 한참 뒤에 도착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순서를 받아들이면 목적이 없다는 상태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아직 축적이 이름을 얻을 만큼 쌓이지 않았다는 상태 표시일 뿐입니다. 그리고 처방도 달라집니다. 더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 붙일 재료를 쌓는 것입니다.

2. 좌표가 아니라 나침반

그래도 아무렇게나 쌓을 수는 없으니 무언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유용한 구분이 목표와 방향의 구분입니다.

목표는 좌표입니다. 3년 안에 무엇이 된다, 어느 회사에 간다. 좌표는 도달 여부로 채점되고, 목적이 불확실한 시기의 좌표는 대개 남의 좌표를 빌린 것이라 도달해도 공허하기 쉽습니다. 빌린 좌표의 문제는 도달 순간에 드러납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입사에 성공한 다음 날 아침, 이제 무엇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가 다시 백지가 되는 경험. 좌표는 소모품이라 도달할 때마다 새로 구해야 하는데,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은 그때마다 다시 남의 좌표를 찾게 됩니다.

방향은 다릅니다. 방향은 오늘의 선택지 중 무엇을 고를지 걸러 주는 기준입니다. 만드는 쪽으로, 사람을 직접 돕는 쪽으로, 몸을 쓰는 쪽으로, 설명하는 쪽으로. 이 정도의 해상도면 충분합니다.

방향의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패 개념이 없습니다. 좌표는 미달이 가능하지만 방향은 걷는 만큼 전진입니다. 둘째, 수정 비용이 낮습니다. 좌표를 바꾸는 것은 계획의 폐기처럼 느껴지지만, 방향을 트는 것은 항해의 일부입니다. 목적이 불확실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정확한 좌표가 아니라 틀려도 손해가 작은 기준이고, 그것이 방향입니다.

방향이 실제로 하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필터링입니다. 구성한 예시로, 만드는 쪽으로 가겠다는 한 줄을 가진 사람 앞에 세 개의 제안이 놓였다고 해 봅시다. 보수가 좋은 관리 업무, 배울 것이 많은 제작 업무, 편한 유지보수 업무. 방향이 없으면 세 제안은 연봉과 평판 같은 남의 기준으로 비교되고, 어느 쪽을 골라도 찜찜함이 남습니다. 방향이 있으면 적어도 하나는 기준에서 밀려나고, 남은 것들 사이의 고민은 훨씬 작아집니다. 방향은 정답을 알려 주는 장치가 아니라 고민의 크기를 줄여 주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몇 번의 필터링을 거치고 나면, 내가 무엇을 계속 걸러 왔는지 자체가 나에 대한 데이터가 됩니다.

3. 작은 내기 — 확신 없이 움직이는 기술

방향을 하나 고르는 것조차 어렵다면, 고르지 말고 시험하면 됩니다. 단, 시험의 크기를 통제해야 합니다.

결정에 관한 글에서 되돌릴 수 있는 문과 없는 문을 구분했습니다. 목적 탐색에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탐색을 일방통행 문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부를 걸어 새 길을 시험하는 방식은 낭만적이지만, 한 번의 시험에 전 재산을 거는 도박과 구조가 같습니다. 반대편에 작은 내기가 있습니다. 주말 하루로 해 보는 것, 석 달짜리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 보는 것,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세 명과 이야기해 보는 것.

작은 내기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정보입니다. 해 보기 전의 상상 속 직업과 해 본 뒤의 실제 감각은 거의 항상 다릅니다. 상상은 그 일의 하이라이트만 보여 주고, 실제는 그 일의 화요일 오후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내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정확한 자기 데이터를 갖게 됩니다. 무엇이 즐거웠는지보다 무엇이 견딜 만했는지가 더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어떤 일이든 지루한 구간이 대부분이고, 그 구간을 견딜 수 있는 일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기의 크기를 정하는 규칙은 하나면 충분합니다. 실패의 비용에 상한을 미리 정하는 것. 기간으로는 몇 주에서 석 달, 돈으로는 잃어도 생활이 흔들리지 않는 액수, 관계로는 돌아올 다리를 태우지 않는 범위. 이 상한 안에서라면 내기는 몇 번 실패해도 계속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탐색에서는 승률보다 중요합니다. 반대로 생각을 오래 한다고 정보가 늘지는 않습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이미 가진 정보를 재배열할 뿐, 새 정보는 실제 세계와의 접촉면에서만 들어옵니다. 석 달을 고민하는 것보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세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쪽이,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4. 열정을 기다리는 함정

작은 내기를 막는 가장 큰 심리적 장애물은, 어딘가에 나를 위한 완성된 열정이 숨어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것만 찾으면 매일 아침이 설렐 것이고, 아직 못 찾았으니 지금 하는 일에 정을 붙이는 것은 타협이라는 생각.

이 믿음의 문제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실제 경험의 구조에 있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열정을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대개 첫눈에 반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하게 되면서 재미가 생기고 재미가 다시 투자를 부르는 순환이 오래 돌아간 결과입니다. 즉 열정은 발견의 대상이라기보다 축적의 결과물이고, 1절의 목적과 같은 하류에 삽니다.

발견의 언어가 위험한 이유는 초기 구간의 해석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서툴고, 서툰 동안은 재미가 없습니다. 열정을 찾는 사람은 이 자연스러운 무미건조함을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고 떠납니다. 그렇게 모든 길의 초입만 밟다 보면, 어느 길에서도 재미가 생길 만큼의 축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함정이 스스로를 강화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재미없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재미없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구분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하나는 서툴러서 생기는 재미없음입니다. 이것은 실력이 붙을수록 가벼워집니다. 지난달에는 괴롭기만 했던 것이 이번 달에는 가끔 재미있다면, 그 일은 아직 판정할 때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잘하게 되어도 그대로인 재미없음입니다. 실력이 늘어 칭찬을 받는데도 그 일을 하는 시간 자체가 계속 소모로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초입의 문제가 아니라 결이 맞지 않는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이 구분은 한 번의 느낌으로는 할 수 없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봐야 합니다. 기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5. 절차 — 석 달의 실험 단위

이 글의 관점을 절차로 내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방향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정답일 필요 없습니다. 지금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면 됩니다.
  2. 그 방향의 작은 내기를 하나 설계합니다. 석 달 이내, 그만둬도 흉터가 남지 않는 크기로. 시작할 때 종료일을 함께 정합니다.
  3. 주 단위로 한 줄씩 기록합니다. 무엇이 예상과 달랐는지, 지루한 구간이 견딜 만했는지.
  4. 종료일에 채점하고 정리합니다. 계속할지, 방향을 틀지, 접을지. 접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정보가 회수된 실험입니다. 잘 끝내는 방법은 끝내기에 관한 글에 적었습니다.
  5. 세 번의 실험이 끝나면 데이터를 봅니다. 세 개의 기록에서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이름을 붙일 첫 재료입니다.

기록의 형식은 자유지만 질문은 고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번 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것이 있었는가. 남이 시키지 않았는데 한 것은 무엇인가. 지겨웠지만 견딜 만했던 것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러 실험에 걸쳐 쌓이면, 어느 순간 답들 사이로 패턴이 보입니다. 답이 없음으로 남는 주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없음도 기록되면 데이터입니다. 패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이 조언이 안 맞는 경우

  • 이미 목적이 선명한 사람 — 드물지만 실제로 있습니다. 그 경우 이 글은 필요 없고, 남은 것은 실행의 문제입니다.
  • 생존이 급한 시기 — 탐색은 여유 자원을 소비합니다. 당장의 생계가 흔들리는 시기의 우선순위는 실험이 아니라 안정이고,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태가 길어질 때 — 목적의 불확실함과 지속되는 무기력은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는 이 에세이의 범위 밖이며, 구조 논증으로 다룰 일이 아닙니다.

마치며 — 안개 속에서 걷는 법

목적이 불확실한 상태는 불편하지만, 그 자체로 잘못된 상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대부분을 그 상태로 삽니다. 문제는 안개가 아니라, 안개가 걷힐 때까지 걷지 않겠다는 결정입니다. 안개는 서 있는 사람 앞에서는 걷히지 않고, 걷는 사람 뒤에서 걷혀 있습니다. 길은 돌아보았을 때에야 길이었음을 알게 되는 방식으로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오늘 필요한 것은 인생의 답이 아닙니다. 한 문장의 방향, 석 달짜리 내기 하나, 주 단위의 기록. 명확함은 그 뒤에, 대개는 한참 뒤에, 축적된 것들에 붙는 이름으로 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끝내 오지 않더라도, 이 절차가 낭비가 되지는 않습니다. 방향을 따라 걸은 시간은 실력과 관계와 자기 데이터로 남고, 그것들은 목적이라는 이름표 없이도 삶을 지탱합니다. 목적은 있으면 좋은 지붕이지, 없으면 무너지는 기둥이 아닙니다.

자기계발 기초 시리즈 — 이전 글: 잘한다는 것의 구조 · 다음 글: 작은 습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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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의 성격을 밝혀 둡니다. 시리즈의 다른 글들과 달리 이 글은 연구를 정리한 글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목적이나 삶의 의미 같은 주제에도 실증 연구들이 있지만, 이 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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