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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드: 외로움은 배고픔과 같습니다 — 결핍 신호를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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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연락처는 천 개인데 전화할 사람이 없을 때

휴대폰 연락처에는 천 명 가까운 이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단톡방은 서른 개가 넘고, 하루에 오가는 메시지도 수백 개입니다. 그런데 아프거나 크게 나쁜 소식을 들은 날, 스크롤을 위아래로 몇 번 굴리다가 그냥 화면을 끕니다. 이 목록에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감각을 두고 우리는 흔히 자신을 탓합니다. 관계 관리를 안 했다고, 성격이 무뚝뚝해서라고, 나이가 들어 그렇다고요. 하지만 외로움을 연구해 온 사람들의 결론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신호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신호입니다.

이 글은 그 신호를 정확히 읽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호를 오작동으로 취급하며 무시하면 문제가 커지고, 신호를 나에 대한 판결로 읽으면 더 커집니다. 배고픔을 인격의 문제로 해석하지 않는 것처럼, 외로움도 그렇게 다룰 수 있습니다.

외로움의 정확한 정의 —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펄먼(Daniel Perlman)과 러티샤 앤 페플로(Letitia Anne Peplau)는 1981년에 지금까지 표준으로 쓰이는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외로움은 원하는 관계와 실제 관계 사이의 격차에서 생기는 불쾌한 경험이라는 정의입니다. 핵심은 격차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절대적인 관계의 수가 아니라 차이가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 정의가 설명해 주는 현상이 많습니다. 왜 회식 자리 한가운데서 외로울 수 있는지, 왜 결혼한 사람도 외로울 수 있는지, 왜 어떤 사람은 한 달에 두 명만 만나고도 충분한지. 필요한 관계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고, 고통은 그 사람의 기준선과 현실의 거리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외로움과 고독은 구분해야 합니다. 둘 다 혼자 있는 그림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구분외로움고독
정의원하는 관계와 실제 관계의 격차혼자 있기를 선택한 상태
선택 여부대체로 선택하지 않음대체로 선택함
사람 수와의 관계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김사람이 없는 상태 자체
몸의 상태경계와 각성이 올라감각성이 내려가고 이완됨
필요한 처방연결의 질을 회복하기방해받지 않는 시간 확보하기

이 구분을 흐리면 처방이 엇나갑니다. 고독이 필요한 사람에게 모임을 권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권하는 일이 그렇게 생깁니다. 경계 세우기 편에서 다뤘듯,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필요한 것은 만남의 횟수가 아니라 솔직해질 수 있는 자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카치오포의 가설 — 외로움은 배고픔과 같은 신호입니다

시카고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John Cacioppo)는 평생을 외로움 연구에 쓴 사람입니다. 그가 2008년에 정리한 관점은 단순하면서 강력합니다. 외로움은 배고픔, 갈증, 통증과 같은 계열의 신호라는 것입니다.

배고픔은 열량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고, 갈증은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며, 통증은 조직이 손상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들의 공통점은 불쾌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쾌함은 설계상의 결함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편안하기만 한 신호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개체로서 약한 동물입니다. 빠르지도, 강하지도, 두껍지도 않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인간은 대부분의 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카치오포의 관점에서 외로움은 사회적 몸에 생긴 통증 경보입니다. 아프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사람 쪽으로 밀어냅니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연결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뜻이 아니라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의 실용적 함의는 해석의 전환에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자신이 의지가 약하다고 결론 내리지 않고 밥을 먹습니다. 외로움도 같은 문법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나에게 결함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지금 사회적 영양이 부족하다는 계기판 눈금으로 읽는 것입니다.

건강과의 연관도 여러 차례 보고되었습니다. 홀트룬스타드(Julianne Holt-Lunstad) 연구팀의 2015년 메타분석은 70여 편의 연구, 300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종합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망 위험 증가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이런 연구는 관찰 연구이므로, 외로움이 건강을 해친 것인지 이미 건강이 나쁜 사람이 고립되기 쉬운 것인지를 완전히 분리하지는 못합니다. 방향은 아마 양쪽 모두일 것입니다.

신호가 오작동할 때 — 외로움이 만드는 악순환

여기까지라면 이야기가 단순합니다. 외로우면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문제는 외로움이 오래 지속될 때 신호 자체가 우리의 지각을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카치오포와 루이즈 호클리(Louise Hawkley)의 연구들이 반복해서 보여 준 것은, 외로운 상태의 사람들이 사회적 위협을 실제보다 빠르고 크게 탐지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무표정을 더 냉담하게 읽고, 답장이 늦는 것을 거절로 읽고, 모임에서 오간 말 중 부정적인 조각을 더 잘 기억합니다. 진화적으로 보면 이해되는 반응입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개체에게는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이 과경계가 현대의 관계에서 정확히 반대 효과를 낸다는 점입니다. 위협을 예상하는 사람은 방어적으로 행동합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고, 초대를 사양하고, 대화에서 자신을 덜 드러냅니다. 그러면 상대는 이 사람이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고 해석하고 물러섭니다. 그리고 그 물러섬은 원래의 예상을 확인해 주는 증거로 기록됩니다. 카치오포는 이 구조를 자기 충족적 순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순환에서 빠져나오는 지점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답장이 하루 늦었을 때 떠오르는 첫 문장이 나를 피하는 것 같다는 문장이라면, 그것을 결론이 아니라 가설로 취급하는 연습입니다. 외로울수록 부정적 해석이 먼저 도착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으면, 그 문장에 자동으로 따르지 않을 여지가 생깁니다.

또 하나 유용한 원칙은 신호가 강한 날에 큰 결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최고조인 밤에 관계를 정리하거나, 오래된 서운함을 문자로 보내거나, 연락을 끊는 결정은 대체로 과경계 상태에서 내려집니다.

80년의 추적이 남긴 문장, 그리고 그 문장의 한계

관계와 삶의 질에 관한 자료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입니다. 1938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80년이 훌쩍 넘은 종단 연구입니다. 하버드 재학생 집단과 보스턴 저소득 지역 소년 집단을 함께 추적했고, 2년마다 설문을, 5년마다 건강 검진 자료를 모았습니다. 현재 책임자는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거(Robert Waldinger)입니다.

이 연구가 반복해서 내놓은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좋은 관계 속에 있던 사람들이 더 건강했고 더 오래 살았으며 더 만족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주 인용되는 발견은 50세 무렵의 관계 만족도가 그 시점의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80세의 건강을 더 잘 예측했다는 대목입니다. 관계의 개수보다 관계의 질이, 그중에서도 힘들 때 기댈 수 있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다만 이 연구를 인용할 때 함께 말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초기 표본이 전원 남성이었고 인종 구성도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나중에 합류했지만 원자료의 성격은 남습니다. 둘째, 종단 연구이지만 근본적으로 상관 연구입니다. 관계가 건강을 만들었는지,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관계를 잘 유지한 것인지를 실험으로 가를 수는 없습니다. 셋째, 20세기 초에 태어난 세대의 관계 양식이 지금과 같다고 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남긴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상관 연구 하나라면 흘려들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나라와 시대의 여러 종단 자료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여유가 생기면 챙기는 취미가 아니라, 건강 지표에 가깝게 다뤄야 할 항목이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의 삼 분이 하는 일

관계라고 하면 우리는 곧장 깊은 관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일상의 기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스쳐 가는 관계입니다.

행동과학자 니컬러스 에플리(Nicholas Epley)와 줄리아나 슈뢰더(Juliana Schroeder)는 2014년에 시카고 통근 열차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출근길 승객들을 무작위로 세 집단에 배정했습니다. 옆자리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볼 것, 혼자 조용히 갈 것, 평소대로 할 것. 통근이 끝난 뒤 기분을 물었더니 가장 좋았던 집단은 말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눈 통근길이 혼자 간 통근길보다 즐거웠고, 그렇다고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보고도 없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같은 노선의 다른 승객들에게 어떤 조건이 가장 즐거울 것 같은지 예측하게 했더니, 사람들은 정확히 반대로 예측했습니다. 말을 거는 쪽이 가장 불편할 것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거절당할 확률도 크게 부풀려 추정했습니다. 실제로는 말을 건 참가자 중 대화를 거부당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짧은 연결이 주는 이득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그 대가는 과대평가합니다.

비슷한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나왔습니다. 질리언 샌드스트롬(Gillian Sandstrom)과 엘리자베스 던(Elizabeth Dunn)의 연구에서는 카페에서 바리스타와 짧게 눈을 맞추고 대화한 손님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주문만 한 손님들보다 더 긍정적인 기분과 소속감을 보고했습니다. 하루에 약한 연결을 더 많이 경험한 날일수록 그날의 행복도가 높았다는 일기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약한 연결의 힘 편에서 다뤘듯 느슨한 관계는 정보와 기회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약한 연결은 오늘 하루의 기분을 바꾸는 장치입니다. 깊은 관계를 만들 에너지가 없는 시기에도 이쪽 문은 열려 있습니다.

관계는 의도가 아니라 빈도와 근접성에서 자랍니다

우리는 관계가 마음의 문제라고 믿습니다. 진심이 있으면 이어지고, 소원해지면 마음이 식은 것이라고요. 하지만 관계를 연구한 자료들은 훨씬 시시하고 구조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연구팀이 1950년에 발표한 기숙사 연구는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기혼 학생용 아파트 단지에서 누가 누구와 친해졌는지를 조사했더니,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성격도 전공도 아니고 물리적 거리였습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과 친구가 될 확률이 몇 집 건너 사는 사람보다 훨씬 높았고, 계단이나 우편함 옆에 사는 사람은 마주치는 횟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친구 지명을 훨씬 많이 받았습니다. 친밀함은 의지보다 동선에서 자랍니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집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제프리 홀(Jeffrey Hall)의 2019년 연구는 지인에서 가벼운 친구가 되는 데 약 50시간, 친구가 되는 데 약 90시간, 가까운 친구가 되는 데 200시간 이상의 함께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추정했습니다. 자기보고에 기반한 추정치이므로 정확한 상수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규모의 감각은 줍니다. 우정은 몇 번의 좋은 대화가 아니라 누적된 시간의 함수라는 감각 말입니다.

이제 어른의 우정이 왜 어려운지가 분명해집니다. 학교와 기숙사는 근접성과 반복되는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긴장을 풀어도 되는 분위기를 공짜로 제공하던 장치였습니다. 사회학자 레베카 애덤스(Rebecca Adams)가 정리한 우정의 세 조건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근접성, 계획하지 않은 반복적 상호작용,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환경. 성인이 되면 이 셋이 동시에 갖춰진 자리가 사라집니다. 만남은 전부 사전 조율이 필요한 이벤트가 되고, 일정이 맞지 않으면 몇 달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처방도 마음이 아니라 구조여야 합니다. 이번 주에 해 볼 수 있는 세 가지입니다.

  • 연락 목록에서 한 명만 고르세요. 모두에게 안부를 묻는 계획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최근 6개월 안에 떠올린 적 있지만 연락하지 않은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잘 지내냐는 말 대신 구체적인 문장이 좋습니다. 오래전에 추천해 준 것을 이제야 봤다는 식의, 상대가 답하기 쉬운 문장이요.
  • 반복되는 자리를 하나 만드세요. 한 번의 근사한 약속보다 매달 같은 날 반복되는 시시한 약속이 관계를 훨씬 잘 유지합니다. 격주 목요일 저녁 산책, 매월 첫째 주 점심처럼 협상이 필요 없는 형식이면 됩니다. 관계 유지의 비용을 매번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약한 연결에 3분을 쓰세요. 늘 가는 가게, 같은 층 동료, 운동 수업에서 마주치는 사람. 이름을 묻고 한마디를 더 붙이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통근 열차 실험이 말해 주듯, 예상보다 훨씬 덜 어색하고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치며 — 신호를 판결로 읽지 않기

외로움이 찾아온 밤에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일은 그 감각을 자신에 대한 정보로 읽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매력이 없구나, 관계를 못 만드는 사람이구나 하는 문장들 말입니다.

하지만 배고픔이 요리 실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듯, 외로움도 인간으로서의 자격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지금 부족한 것이 있다는 계기판이고, 계기판은 판결문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계기판은 배고픔과 달리, 한 번 크게 먹는다고 꺼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자주 채워야 하는 종류입니다.

오늘 저녁 연락처를 열어 한 사람의 이름 위에서 멈춰 보시길 권합니다. 완벽한 문장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계는 명문장이 아니라 빈도로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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