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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드: 지도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메르카토르에서 검색 알고리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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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그린란드는 왜 아프리카만 해 보이는가

교실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떠올려 봅니다. 위쪽 끝에 새하얀 그린란드가 있고, 가운데 아래에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둘은 얼추 비슷한 크기로 보입니다. 실제 면적은 그린란드가 약 217만 제곱킬로미터, 아프리카가 약 3037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 아프리카가 그린란드보다 열네 배 큽니다.

이것을 지도의 실수라고 부르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납니다. 정확한 진술은 이렇습니다. 그 지도는 애초에 면적을 보여 주려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16세기 항해사가 나침반 침로를 직선으로 긋기 위해 설계한 도구였고, 그 목적을 위해 면적을 의도적으로 희생했습니다. 문제는 그 도구가 교실 벽으로 옮겨 오면서 시작됩니다.

지도를 의심하는 일은 지도 제작자를 의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가운데 놓을지, 어느 쪽을 위로 할지, 어떤 이름을 적을지, 어떤 선을 실선으로 그을지는 모두 선택입니다. 그리고 선택에는 언제나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면은 평면이 될 수 없다 — 가우스의 증명

먼저 수학입니다. 오렌지 껍질을 벗겨 책상 위에 눌러 펴 보면 반드시 어딘가가 찢어지거나 겹칩니다. 이것은 손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1827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곡면에 관한 논문에서, 어떤 곡면의 휘어진 정도는 그 면 위에서 측정할 수 있는 고유한 성질이며 늘이거나 줄이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본인이 대단히 흡족했던 나머지 이 정리에 빼어난 정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과는 잔인할 만큼 단순합니다. 구면과 평면은 고유 곡률이 다릅니다. 따라서 모든 평면 지도는 예외 없이 무언가를 왜곡합니다. 선택지는 왜곡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왜곡할 것이냐입니다.

지도학은 이 선택을 유형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각도와 국지적 모양을 지키는 등각 도법, 면적 비율을 지키는 등적 도법, 특정 지점에서의 거리를 지키는 등거리 도법, 그리고 어느 것도 완전히 지키지 않는 대신 전체 오차를 고르게 나누는 절충 도법입니다. 여기에 냉정한 정리가 하나 더 붙습니다. 등각이면서 동시에 등적인 지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곡의 크기를 눈으로 보여 주는 도구도 있습니다. 1859년 프랑스의 니콜라 오귀스트 티소가 고안한 티소 지시원입니다. 지구 표면 곳곳에 같은 크기의 작은 원을 놓고 투영한 뒤, 그 원이 얼마나 커지고 찌그러지는지를 보는 방식입니다. 메르카토르 도법 위에 티소 지시원을 얹으면, 적도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광경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메르카토르의 변론과 페터스의 반격

1569년, 플랑드르의 지도 제작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는 18장의 낱장으로 이루어진 대형 세계지도를 냈습니다. 라틴어 제목이 길지만 핵심은 뒷부분에 있습니다. 항해자들이 쓸 수 있도록 수정하여 맞춘 세계 서술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도는 세계의 초상화가 아니라 항해 계산기였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나침반 방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항해하면 지구 위에서는 극으로 감기는 나선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이 항정선을 종이 위에서 직선으로 만들려면, 경선을 평행하게 벌려 놓은 만큼 위선 간격도 같은 비율로 늘려야 합니다. 그 비율이 위도의 시컨트 값입니다. 위도 60도에서는 길이가 두 배, 면적은 네 배가 되고, 80도에서는 길이만 다섯 배를 넘깁니다. 메르카토르는 이 확대를 기하학적 작도로 근사했고, 정확한 수학적 표를 제시한 사람은 1599년 영국의 에드워드 라이트였습니다. 항해자에게 이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자를 대고 그은 선을 따라 나침반 하나만 보고 대양을 건널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문제는 이 항해 도구가 20세기 내내 교실과 신문과 뉴스 배경에 걸렸다는 데 있습니다. 알래스카는 브라질보다 다섯 배 작지만 비슷해 보이고, 유럽은 남아메리카보다 훨씬 작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학자 마크 몬모니어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런 시각적 습관이 세계의 무게 배분에 대한 감각을 조용히 왜곡한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2017년 보스턴 공립학교가 세계지도를 등적 도법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해 국제 뉴스가 된 것도 이 논쟁의 연장선입니다.

반격의 상징은 1973년 본에서 열린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아르노 페터스는 자신의 세계지도를 공개하며, 기존 지도가 북반구 선진국을 부풀려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적 메시지는 강력했고 국제 구호단체와 유엔 기구가 이 지도를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지도학계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그 도법은 1855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갈이 이미 발표한 것과 사실상 같아 오늘날 갈-페터스 도법으로 불립니다. 둘째, 면적을 지킨 대가로 모양이 심하게 늘어져 적도 부근 대륙이 세로로 길게 뭉개집니다. 1989년 북아메리카의 주요 지리학 단체들은 메르카토르와 갈-페터스를 한꺼번에 겨냥해, 직사각형 세계지도를 일반용으로 쓰지 말자는 공동 결의를 냈습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어느 도법이 옳으냐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옳아 보이는 지도 역시 왜곡을 피하지 못하며, 도법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도법발표지키는 것포기하는 것원래 목적
메르카토르1569년각도와 국지적 모양면적항정선을 직선으로 긋는 항해
갈-페터스1855년, 1973년 재등장면적모양학술 제시, 뒤에는 정치적 항의
로빈슨1963년무엇도 엄밀히는 아님조금씩 전부보기 좋은 절충
빙켈 트리펠1921년세 종류 오차의 평균완전한 등각과 등적벽걸이 세계지도
이퀄 어스2018년면적모양을 일부등적이면서 볼 만한 지도
웹 메르카토르2005년국지적 모양의 근사면적과 측지 정확도화면 타일 렌더링

무엇을 가운데 놓는가 — 중심과 위쪽의 정치

투영법이 정해져도 결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도를 어디에서 자를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가운데 놓고 태평양을 좌우 끝으로 밀어내면 아메리카와 아시아는 서로 가장 먼 곳에 놓입니다. 반대로 태평양을 가운데 놓으면 대서양이 갈라지고,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마주 봅니다. 한국과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의 교과서 지도가 대체로 후자인 것은 자국이 변두리로 밀리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같은 지구를 그렸는데 세계의 이웃 관계가 달라집니다.

기준선 자체도 회의에서 정해졌습니다. 1884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25개국 대표가 본초 자오선을 그리니치로 하는 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찬성 22, 반대 1, 기권 2였고 반대는 산도밍고, 기권은 프랑스와 브라질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이후로도 한동안 파리 자오선을 고집하다 1911년에야 사실상 그리니치 시각을 받아들입니다. 지구의 경도 0도는 자연이 정해 준 것이 아니라 해양 강국의 해도가 이미 그리니치를 쓰고 있었다는 현실이 정한 것입니다.

위쪽이 북쪽이라는 규칙도 보편 상수가 아닙니다. 12세기 시칠리아의 로제르 2세를 위해 알이드리시가 제작한 타불라 로게리아나는 남쪽이 위입니다. 중세 유럽의 마파문디는 동쪽이 위였고, 방향을 뜻하는 영어 단어 orientation이 해 뜨는 쪽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도 그 흔적입니다. 1979년 호주의 스튜어트 매카서가 발표한 남쪽이 위인 세계지도는 이 임의성을 정확히 겨냥한 농담이자 주장이었습니다. 호주는 아래가 아니라 위에 있어도 아무 물리 법칙도 위반하지 않습니다.

지도의 중심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그 지도를 만든 사람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배치를 자연스럽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그 배치를 오래 봐 왔다는 뜻이지 그것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름과 선 — 지도가 무기가 될 때

지명 하나가 외교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국제수로기구가 발간해 온 해양의 경계 문서는 오랫동안 각국 해도의 표기 근거로 쓰였고, 그 안의 명칭을 두고 한국과 일본이 벌여 온 논쟁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0년 국제수로기구가 명칭 대신 숫자 식별자를 쓰는 새 체계로 옮겨 가기로 한 것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권력 행위인지를 보여 줍니다. 페르시아만이라 부르느냐 아라비아만이라 부르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도 성격이 같습니다.

디지털 지도는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숨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요 온라인 지도는 사용자의 접속 국가에 따라 국경선을 다르게 그립니다. 인도에서 접속하면 카슈미르 일대가 인도 영토로 실선 처리되고, 다른 나라에서 접속하면 점선과 분쟁 표기가 나타납니다. 크림반도의 표시도 접속 지역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의 지구에 여러 개의 지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이며, 각자는 자기 화면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선이 실제 물리력을 부르기도 합니다. 2010년 11월 니카라과 군인들이 코스타리카가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칼레로 섬 일대에 진입한 사건에서, 현장 지휘관은 온라인 지도의 국경 표시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해당 지도의 경계 데이터에 오류가 있었고 곧 수정되었지만, 병력은 이미 움직인 뒤였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5년 코스타리카의 손을 들어 줍니다.

역사적 국경선에도 손봐야 할 통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경이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자로 그어졌다는 설명은 널리 퍼져 있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베를린 회의가 정한 것은 주로 규칙이었습니다. 실효적 점령을 주장의 요건으로 삼고, 콩고 분지의 자유 무역을 선언하고, 레오폴 2세의 콩고 지배를 승인했습니다. 실제 경계선 대부분은 그 이후 15년 남짓 동안 열강끼리 맺은 개별 조약에서 그어졌습니다. 회의장에서 벌어진 일은 분할의 실행이 아니라 분할의 면허 발급이었습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역사의 책임 소재는 훨씬 넓게 퍼집니다. 1947년 인도 분할선을 그은 시릴 래드클리프가 인도에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법률가로서 5주 만에 작업을 마쳤고, 그 결과가 독립 이틀 뒤에야 공표된 일도 같은 계열의 사례입니다.

정확할 필요가 없었던 지도 — 중세의 마파문디

중세 유럽의 세계지도를 처음 보면 대개 웃음이 나옵니다. 원 안에 T자 모양으로 물길이 그려져 있고, 위쪽 절반이 아시아, 아래 왼쪽이 유럽, 아래 오른쪽이 아프리카입니다. 가운데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위쪽 끝에는 에덴동산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지도는 길을 찾으려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세비야의 이시도루스가 7세기 초 어원지에 실은 T-O 도식은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이었고, 1300년경 제작되어 지금도 남아 있는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가로 1.3미터가 넘는 양피지 위에 성서의 사건과 전설의 종족과 실재하는 도시를 한 화면에 배치한 신학 백과사전에 가깝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한 장에 겹쳐져 있습니다. 이 지도들이 답하려던 질문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의 한가운데 있느냐였습니다.

같은 시대 유럽인들이 실제로 항해에 쓴 지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13세기 말부터 나타나는 포르톨라노 해도입니다. 나침반 방위선이 방사형으로 그어져 있고, 지중해 연안선의 정확도는 근대 측량과 견줘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같은 사회가 목적이 다른 두 종류의 지도를 아무 모순 없이 나란히 썼습니다. 세계관을 담는 지도와 배를 몰기 위한 지도는 애초에 다른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통설 하나를 정리합니다. 중세 사람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고, 8세기의 비드도 13세기 대학 교재였던 사크로보스코의 천구론도 이를 전제로 씁니다. 평평한 지구를 믿는 중세라는 이미지는 19세기의 창작에 가깝습니다. 1828년 워싱턴 어빙의 콜럼버스 전기가 극적인 장면을 지어냈고, 종교와 과학이 늘 싸워 왔다는 서사를 밀던 19세기 저자들이 그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T-O 지도가 둥근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시도루스의 도식은 인쇄술이 확산되던 1472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인쇄되어, 유럽에서 인쇄된 최초의 지도라는 자리도 함께 차지합니다.

오늘의 지도 제작자 — 웹 메르카토르와 검색 순위

2005년 온라인 지도 서비스가 타일 방식을 채택하면서, 세계는 다시 한번 메르카토르의 세계가 됩니다. 웹 메르카토르라 불리는 이 투영법은 지구를 완전한 구로 놓고 계산하면서 좌표는 타원체 기준을 그대로 씁니다. 그래서 엄밀히는 등각도 아니고 측지 계산에 쓸 수도 없습니다. 국제 좌표계 등록 기관이 한동안 코드 부여를 거부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채택된 이유는 실용적입니다. 정사각형 타일로 재귀적으로 쪼개기 쉽고, 화면을 확대하거나 회전해도 동네 단위의 모양이 유지되며, 북쪽이 항상 위를 향합니다.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성질입니다. 대신 지구 전체를 한 화면에 놓는 순간 16세기의 왜곡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수십억 명의 기본 세계 이미지가 다시 항해용 도법으로 통일된 것입니다. 주요 서비스들이 축소 상태에서 구체로 전환하는 기능을 넣기 시작한 것은 2018년 무렵부터였습니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투영법이 아니라 목록에 있습니다. 종이 지도에서는 무엇을 실을지 제작자가 정했고, 그 결정은 범례와 축척으로 어느 정도 공개되었습니다. 디지털 지도에서는 무엇이 보일지가 검색 순위와 광고 입찰과 개인화 신호로 결정되고, 그 규칙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검색어를 넣어도 두 사람에게 다른 가게가 뜹니다. 지도는 이제 그림이 아니라 질의 결과입니다.

이 상황에서 지도학의 오래된 질문은 새 옷을 입고 돌아옵니다. 누가 무엇을 빠뜨렸는가. 어떤 길이 굵게 그려졌는가. 어떤 이름이 먼저 뜨는가. 오픈스트리트맵처럼 지도 데이터를 공개된 방식으로 만드는 시도가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편집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일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 지도는 세계의 사진이 아니라 주장이다

정리해 봅니다. 구면을 평면에 펴는 순간 왜곡은 피할 수 없고,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이냐입니다. 이 선택에는 항상 목적이 있고, 목적에는 항상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메르카토르는 항해사를 위해 면적을 버렸고, 페터스는 정치적 메시지를 위해 모양을 버렸고, 오늘의 지도 서비스는 렌더링 속도와 광고 수익 구조를 위해 다른 것들을 버립니다. 어느 쪽도 중립이 아니며, 중립을 자처하는 지도가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지도를 볼 때 한 가지만 덧붙여 보면 좋겠습니다. 이 지도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화면 속 파란 점이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경로도, 뉴스 화면 뒤에 걸린 세계지도도, 부동산 앱이 보여 주는 동네의 경계선도 모두 누군가의 목적을 통과해 나온 그림입니다. 지도는 세계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주장이며, 주장에는 언제나 반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주장에 조금 덜 지배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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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떠올려 봅니다. 위쪽 끝에 새하얀 그린란드가 있고, 가운데 아래에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둘은 얼추 비슷한 크기로 보입니다. 실제 면적은 그린란드가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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