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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드: 재즈는 어떻게 태어났나 — 콩고 스퀘어에서 Kind of Blue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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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소리가 남지 않은 첫 번째 전설

1877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코넷 연주자 버디 볼든(Buddy Bolden)은 재즈의 첫 번째 스타로 불립니다. 1900년 전후 그의 밴드는 도시의 공원과 댄스홀을 장악했고, 그의 소리가 몇 블록 밖에서도 들렸다는 증언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볼든의 녹음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1907년 정신질환으로 잭슨의 주립 병원에 수용되었고, 1931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24년입니다.

재즈사의 출발점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수십 년 뒤에 채록된 기억들 — 번크 존슨이나 젤리 롤 모튼 같은 동시대 연주자들의 회고이고, 그 회고들은 서로 어긋납니다. 모튼은 1938년 의회도서관 녹음에서 자기가 1902년에 재즈를 발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지만, 아무도 그 증언을 버리지도 못합니다. 도널드 마퀴스가 1978년 호적부와 신문을 뒤져 쓴 볼든 평전은 전설의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습니다. 그가 이발사였다는 이야기도, 스캔들 신문을 냈다는 이야기도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누가 최초인가"를 묻지 않으려 합니다. 최초를 확정하는 일은 아마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대신 더 대답 가능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하필 뉴올리언스였고, 왜 하필 1900년 무렵이었나. 그리고 그 뒤 60년 동안 이 음악은 무엇을 향해 움직였나.

뉴올리언스라는 조건 — 콩고 스퀘어, 크레올, 그리고 1894년

재즈가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였습니다. 이 도시는 1718년 프랑스가 세웠고, 1763년 스페인에 넘어갔다가,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이 됩니다. 가톨릭 문화권의 지배가 90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첫째, 일요일이 남았습니다. 프랑스의 흑인법전과 스페인의 관행은 노예에게 일요일을 쉬게 했고, 뉴올리언스의 노예들은 도시 북쪽 광장에 모여 북을 치고 춤을 췄습니다. 이곳이 콩고 스퀘어입니다. 건축가 벤저민 래트로브가 1819년 일지에 남긴 목격담은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수백 명이 원을 그리고, 서로 다른 크기의 북이 겹쳐 울리는 광경이었습니다. 이것이 왜 특별한가 하면, 개신교 영국령 식민지에서는 북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1739년 스토노 반란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가 1740년 법으로 북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북은 신호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미국 본토에서 아프리카의 복합 리듬 전통이 세대를 건너 살아남은 드문 장소가 뉴올리언스였습니다.

둘째, 유럽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유색인 계층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는 자유 유색인, 이른바 크레올입니다. 이들 중에는 오페라하우스의 악단에서 연주하고 악보를 읽고 정통 화성학을 배운 음악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뉴올리언스는 미국에서 오페라가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셋째, 이 두 세계가 강제로 섞였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인종 분리가 조여 오면서 크레올의 중간 지위가 무너집니다. 1890년 열차 분리법, 1892년 크레올 호머 플레시가 일부러 백인 칸에 타서 만든 시험 소송, 그리고 1896년의 플레시 판결. 재즈 문헌이 자주 인용하는 1894년 루이지애나 주의회의 법령은 아프리카계 혈통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을 모두 흑인으로 분류했습니다. 악보를 읽는 다운타운 크레올 연주자와 귀로 연주하는 업타운 흑인 연주자가 같은 밴드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1894년에 법이 하나 통과되어 재즈가 태어났다"는 요약은 너무 깔끔합니다. 분리는 10여 년에 걸쳐 조여 왔고, 크레올과 흑인 음악가의 왕래는 그 전에도 있었으며,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구분도 실제로는 훨씬 흐렸다고 여러 연구자가 지적합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인종주의가 갈라놓으려 한 두 집단을 같은 무대에 묶은 결과, 정통 화성학과 아프리카계 리듬 감각이 한 밴드 안에서 만났습니다. 재즈는 그 화학반응의 이름입니다.

두 뿌리 — 블루스와 래그타임

재즈에는 부모가 둘 있습니다. 성격이 정반대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블루스는 목소리에서 왔습니다. 밭에서 부르던 홀러, 노동요, 영가에서 이어진 이 음악은 12마디라는 단순한 틀, 부르고 답하는 구조, 그리고 서양 음계의 격자에 정확히 얹히지 않는 음 — 블루 노트를 가져왔습니다. 악보로 옮기면 반드시 무언가 빠집니다. W. C. 핸디는 1903년 미시시피의 시골 역에서 칼등으로 기타 줄을 미끄러뜨리며 노래하던 남자를 만난 일을 회고록에 남겼고, 1912년 "멤피스 블루스"를 출판했습니다. 1920년 메이미 스미스의 "Crazy Blues"가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음반업계는 흑인 청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합니다.

래그타임은 반대로 종이에서 왔습니다. 스콧 조플린의 "Maple Leaf Rag"(1899)로 대표되는 이 음악은 정확히 기보된 피아노곡입니다. 왼손이 규칙적인 박을 짚는 동안 오른손이 박을 비껴 치는 당김음 — 그 어긋남이 매력의 전부였습니다. 래그타임은 즉흥이 아니라 작곡이었고, 그래서 악보로 전국에 팔려 나갔습니다.

재즈는 이 둘을 합쳤습니다. 래그타임에서 당김음과 형식감을, 블루스에서 음색과 표현과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의 특수한 사용처가 더해집니다. 장례 행렬, 결혼식, 야유회, 정치 집회, 댄스홀. 브라스 밴드가 관을 묘지까지 배웅할 때는 장송곡을, 돌아올 때는 신나는 행진곡을 연주했습니다. 재즈는 감상용으로 태어난 음악이 아니라, 쓸 데가 아주 많았던 실용 음악이었습니다.

1917년, 최초의 재즈 음반이 지닌 불편한 이름

1917년 2월 26일, 뉴욕에서 다섯 명의 밴드가 빅터사를 위해 두 곡을 녹음합니다. "Livery Stable Blues"와 "Dixie Jass Band One-Step". 3월에 발매된 이 음반은 백만 장 단위로 팔렸다고 전해지며, 세계 최초의 재즈 음반으로 기록됩니다. 밴드 이름은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ss Band). 뉴올리언스 출신이 맞았고, 실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명 전원이 백인이었습니다.

리더 닉 라로카는 훗날 재즈를 백인이 발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은 오늘날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첫 음반이 백인 밴드의 것이라는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음반 산업이 흑인 연주자를 녹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뉴올리언스에서 10년 넘게 연주되던 음악이, 정작 세상에 처음 소개될 때는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빠진 채 나갔습니다.

자주 함께 인용되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크레올 코넷 주자 프레디 케파드가 1916년 빅터사의 녹음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음반이 나오면 남들이 자기 연주를 베낄 것을 우려했다는 설명이 붙곤 합니다. 다만 이 일화의 근거도 후대의 증언 하나이고, 연구자들은 세부가 각색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재즈 초기사의 대부분은 이렇게 확인 불가능한 회고 위에 서 있습니다.

흑인 뉴올리언스 밴드의 소리가 제대로 음반에 담긴 것은 1923년입니다. 킹 올리버의 크리올 재즈 밴드가 시카고 근교 리치먼드의 제넷 스튜디오에서 남긴 녹음들. 두 대의 코넷, 클라리넷, 트롬본이 동시에 각자의 선율을 짜 나가는 집단 즉흥의 정점입니다. 두 번째 코넷 자리에는 스물한 살의 루이 암스트롱이 앉아 있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도 정리할 신화가 하나 있습니다. "1917년 스토리빌 홍등가가 문을 닫자 실업자가 된 연주자들이 미시시피강을 따라 시카고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빌이 그해 11월 해군성의 명령으로 폐쇄된 것은 사실이지만, 북부로의 이동은 이미 대이주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폐쇄는 계기가 아니라 배경 소음에 가깝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 스윙 — 솔로가 주인공이 되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생년월일부터 바로잡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평생 자신이 1900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연구자 태드 존스가 교회의 세례 기록을 찾아냈고, 실제 생일은 1901년 8월 4일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이렇게 자주 사실을 이깁니다.

암스트롱이 한 일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재즈를 합주의 음악에서 독주자의 음악으로 바꿨습니다. 1925년부터 시카고에서 녹음한 핫 파이브와 1927년의 핫 세븐 세션이 그 현장입니다. 그전까지 밴드의 미덕은 여럿이 동시에 얽히는 균형이었는데, 암스트롱은 그 직물에서 한 가닥을 뽑아 앞으로 세웠습니다. 1928년의 "West End Blues" 첫머리, 반주 없이 홀로 터져 나오는 12초짜리 카덴차는 지금 들어도 곡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소리입니다.

그가 바꾼 것은 셋입니다. 한 사람이 곡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박자를 앞뒤로 밀고 당기며 만드는 탄력(스윙이라는 말이 붙게 될 그 감각), 그리고 목소리처럼 노래하는 관악기. 1926년 "Heebie Jeebies"에서 가사 대신 의미 없는 음절로 노래한 스캣도 그의 몫으로 돌려집니다. 녹음 중에 가사지를 떨어뜨려 즉석에서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이 역시 홍보용으로 다듬어진 일화일 가능성이 큽니다.

솔로가 중심이 되자 재즈는 확장 가능한 음악이 됩니다. 1930년대의 빅밴드는 그 결과였습니다. 편곡된 관악 섹션이 배경을 깔고, 그 위에서 지명된 솔로이스트가 몇 코러스를 부는 구조. 1935년 8월 21일 로스앤젤레스 팔로마 무도장에서 베니 굿맨 악단이 일으킨 열광을 흔히 스윙 시대의 시작으로 잡습니다. 여기에도 그늘이 있습니다. 굿맨을 "스윙의 왕"으로 만든 편곡의 상당수는 흑인 밴드리더 플레처 헨더슨의 것이었고, 듀크 엘링턴의 악단은 흑인만 무대에 서고 백인만 객석에 앉는 코튼 클럽에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은 재즈였지만, 그 성공의 몫은 인종에 따라 다르게 배분되었습니다.

비밥에서 모달로 — 춤을 멈추게 한 두 번의 반란

1940년대 초 할렘의 민턴스 플레이하우스 같은 클럽의 새벽 잼 세션에서 다음 음악이 만들어집니다. 알토색소폰의 찰리 파커(1920~1955),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1917~1993), 피아노의 텔로니어스 몽크, 드럼의 케니 클라크. 이들이 만든 비밥은 이전 재즈와 거의 모든 지표에서 달랐습니다. 템포가 훨씬 빨랐고, 코드가 촘촘하게 대체되었으며, 선율은 노래하기보다 튕겼습니다.

형식도 영리했습니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곡의 코드 진행만 가져와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선율을 얹었습니다. 1945년 파커의 "Ko-Ko"는 스탠더드 "Cherokee"의 진행 위에 서 있고, "Ornithology"는 "How High the Moon"의 진행을 씁니다. 저작권을 피하면서 연주자에게는 익숙한 지형을 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비밥이 노린 것은 분명했습니다. 무도장의 반주에서 벗어나는 것. 밴드는 4~5인으로 줄었고, 무대는 앉아서 듣는 작은 클럽으로 옮겨 갔으며, 곡은 춤추기에 너무 빠르거나 너무 불규칙해졌습니다. 흔히 "비밥이 재즈의 대중성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이 인과는 과장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징집과 이동 제한, 빅밴드 유지비, 1942년부터 이어진 음악가 노조의 녹음 금지, 무도장에 매겨진 접대세, 그리고 리듬 앤드 블루스의 부상이 함께 작동했습니다. 비밥은 재즈를 대중음악의 자리에서 밀어낸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밀려나는 중이던 음악이 택한 방향이었습니다.

두 번째 반란은 그 반대 방향에서 왔습니다. 비밥 이후 재즈는 코드를 계속 늘려 갔고, 1959년 존 콜트레인의 "Giant Steps"는 그 밀도의 끝을 보여 줍니다. 두 박마다 조성이 바뀌는 곡 위에서 즉흥을 한다는 것은 곡예에 가까웠습니다. 같은 해, 마일스 데이비스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Kind of Blue는 1959년 3월 2일과 4월 22일, 뉴욕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어 그해 8월에 나왔습니다. 마일스, 콜트레인, 캐넌볼 애덜리, 빌 에번스, 폴 체임버스, 지미 코브. 첫 곡 "So What"은 32마디 동안 사실상 두 개의 스케일만 씁니다. 앞 16마디는 하나의 선법, 다음 8마디는 반음 올린 같은 선법, 다시 8마디. 코드를 덜어내자 연주자는 다음 코드를 쫓아가는 대신 한 자리에 머물며 선율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으로 꼽힙니다.

여기에도 정리할 신화가 있습니다. 빌 에번스가 쓴 앨범 해설은 연주자들이 스튜디오에서 처음 스케치를 봤고 거의 모두 첫 테이크로 끝냈다고 적었습니다. 실제로는 다른 테이크가 남아 있고, 마일스는 이미 1958년 "Milestones"에서 같은 발상을 시험한 뒤였습니다. 게다가 초판 음반의 A면 세 곡은 녹음기가 느리게 돌아간 탓에 원래보다 반음 가까이 높게 들렸고, 1992년 재발매 때야 교정되었습니다. 30년 넘게 전 세계가 살짝 높은 조성으로 이 명반을 들었던 셈입니다.

시기대표 녹음편성즉흥이 딛는 바닥듣는 자리
뉴올리언스 (1900년대~1920년대)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 (1923)6~7인, 관악 3인이 동시에단순한 코드와 선율, 다 함께퍼레이드, 장례, 댄스홀
스윙 (1930년대)베니 굿맨,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12~17인 빅밴드, 편곡 중심편곡 사이에 배치된 짧은 솔로무도장, 라디오
비밥 (1940년대)찰리 파커 "Ko-Ko" (1945)4~5인 콤보빠르고 촘촘한 코드 진행소규모 클럽, 앉아서
모달 (1959년~)마일스 데이비스 "So What"5~6인코드 대신 선법(스케일)감상용 음반

처음 듣는 사람을 위한 듣기 순서 — 무엇에 귀를 둘 것인가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귀를 둘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사가 없고, 후렴이 반복되지 않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5분이 흘러갑니다. 다행히 이 음악에는 아주 안정적인 뼈대가 있습니다. 그것만 잡으면 대부분의 곡이 지도를 갖습니다.

  1. 형식을 셉니다. 재즈 연주의 기본형은 테마(헤드) → 솔로 → 테마입니다. 곡이 시작하면 처음 30초에서 1분 사이에 나오는 선율이 헤드입니다. 그 선율이 사라지고 악기 하나가 앞으로 나오면 솔로가 시작된 것이고, 마지막에 처음 그 선율이 다시 돌아오면 곡이 끝납니다. 곡을 처음 들을 때 할 일은 딱 하나, 헤드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잡아내는 것입니다. 이것만 되면 5분이 세 덩어리로 나뉩니다.
  2. 베이스를 따라갑니다. 솔로가 화려해서 정신이 없다면, 아예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 콘트라베이스만 듣습니다. 한 마디에 네 번, 뚜벅뚜벅 걸어가는 워킹 베이스는 곡의 지도이자 시계입니다. 베이스를 따라가면 솔로가 몇 바퀴째 돌고 있는지가 느껴지고, 그 순간 즉흥이 무작정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이의 코스를 반복해서 도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3. 같은 곡의 다른 연주를 붙여 듣습니다. 재즈에서 곡은 완성품이 아니라 재료입니다. 그래서 진짜 재미는 비교에서 나옵니다. 스탠더드 하나를 정해 두 연주를 이어 들어 보십시오. 예컨대 콜먼 호킨스가 1939년에 남긴 "Body and Soul"은 테마를 거의 연주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같은 곡의 다른 버전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곡이고 무엇이 연주자인지가 선명하게 갈립니다.
  4. 순서는 이렇게 잡습니다. 연대순으로 듣지 마십시오. 초기 녹음은 음질이 거칠어 입문에는 불리합니다. Kind of Blue처럼 느리고 여백이 넓은 앨범에서 시작해 귀를 적신 뒤, 암스트롱의 1928년 "West End Blues"로 거슬러 올라가 솔로가 태어나는 장면을 확인하고, 엘링턴으로 편곡의 색을 듣고, 마지막에 파커의 속도를 만나는 편이 훨씬 수월합니다.

한 곡을 세 번 반복해 듣는 것이 세 곡을 한 번씩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림 앞에서 3분을 버티는 감상법이 미술관에서 통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소리 덩어리로 들리던 것이 두 번째에는 악기로 나뉘고, 세 번째에는 연주자가 어디서 망설이고 어디서 밀어붙이는지가 들립니다.

마치며 — 즉흥은 자유가 아니라 대화입니다

재즈의 탄생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대목은, 이 음악이 갈라놓으려는 힘 때문에 섞였다는 사실입니다. 인종 분리 법령은 크레올 음악가에게서 지위를 빼앗으려 했고, 그 결과 악보를 읽는 손과 귀로 연주하는 손이 같은 밴드에 모였습니다. 만들려던 것과 만들어진 것이 정반대였습니다.

즉흥은 흔히 자유의 은유로 쓰이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유보다 대화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마디 수, 합의된 코드, 서로의 소리를 듣고 비켜 주는 규칙 안에서 각자가 다르게 말합니다. 오늘 밤 한 곡만 골라 헤드가 돌아오는 순간을 잡아 보십시오. 그 순간, 아무렇게나 부는 것처럼 들리던 5분이 사실은 아주 촘촘한 약속이었다는 것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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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코넷 연주자 버디 볼든(Buddy Bolden)은 재즈의 첫 번째 스타로 불립니다. 1900년 전후 그의 밴드는 도시의 공원과 댄스홀을 장악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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