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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드: 비트겐슈타인 —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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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두 번 철학을 뒤집은 사나이

철학의 역사에는 자기 자신을 반박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철학을 정점까지 밀어붙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고, 그 책으로 "철학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뒤, 정작 그 책의 핵심을 스스로 무너뜨린 사람은 드뭅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철학을 했습니다. 흔히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나뉘는 두 시기는, 마치 다른 두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일 정도로 다릅니다. 전기의 그는 언어와 세계가 논리적 그림 관계로 정확히 맞물려 있다고 보았고, 후기의 그는 언어란 그런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벌이는 '놀이'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생애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손꼽히는 부호 가문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항공공학을 공부하다 수학의 기초 문제에 빠지고, 마침내 철학의 가장 깊은 물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배낭 속 공책을 채워가며 한 권의 책을 완성했고, 그 책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었다고 믿은 뒤 철학계를 떠나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0년 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거의 모든 것이 틀렸음을 깨닫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옵니다.

이 글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의미라는 것은 단어 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보석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단어를 쓰는 방식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것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이 물음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오늘날 거대 언어모델(이하 LLM)이 '의미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그가 백 년 전에 다듬은 개념들과 묘하게 겹칩니다. 물론 이 마지막 연결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사변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인공지능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그 두 번의 혁명을 차례로 따라갑니다. 먼저 전기의 그림 이론과 그 유명한 침묵의 명제를 살피고, 이어서 후기의 언어게임과 사용 이론, 사적 언어 논증, 가족 유사성을 짚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그 사유가 오늘의 인공지능에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겠습니다. 한 가지만 미리 약속드리자면, 이 글은 어느 쪽이 옳다고 성급히 단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그런 성급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전기 — '논리철학논고'와 그림 이론

한 권의 얇은 책

비트겐슈타인의 첫 번째 주저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1921년 독일어로 처음 발표되었고(독일어 원제는 '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 이듬해 1922년에 영어 대역본이 나왔습니다. 본문은 놀랄 만큼 얇습니다. 짧은 명제들에 1, 1.1, 1.11 식으로 번호를 매긴 독특한 체계로 쓰여 있어서, 한 페이지에 한 문장만 놓이기도 합니다. 마치 수학 정리집처럼 보이는 형식입니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중에 그가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복무하며 배낭 속 공책에 적어 나간 사유에서 자라났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원고를 다듬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책의 야심은 거의 무모할 정도로 컸습니다. 언어가 세계를 어떻게 그려 내는지를 밝혀, 철학의 문제들이 사실은 언어를 오용한 데서 생긴 헛소동임을 보이려 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깊이 교류했습니다. 러셀은 한때 이 젊은 오스트리아인을 자신이 만난 가장 인상적인 천재로 꼽았습니다. 논고는 러셀과 프레게로 이어지는 현대 논리학의 흐름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한 발 더 밀어붙여 논리와 언어와 세계의 관계 전체를 한 장의 도면처럼 그려 내려는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그 야심의 크기만큼이나, 훗날 그것을 스스로 의심한 용기도 컸던 셈입니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다

논고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라고 못 박습니다. 여기서 핵심 전환이 일어납니다. 세계는 '돌, 나무, 사람' 같은 사물의 목록이 아니라, '돌이 나무 옆에 있다' 같은 사실(사태)의 짜임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역할도 분명해집니다. 언어의 기본 단위인 명제는 하나의 사실을 그려 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그림 이론(picture theory of language)'이라 불릴 발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왜 사물이 아니라 사실이 먼저일까요? 한 가지 직관이 있습니다. '사과'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참도 거짓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과가 식탁 위에 있다'는 문장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언어가 세계와 맞닿는 지점은 고립된 단어가 아니라, 단어들이 짜여 하나의 주장을 이루는 명제입니다. 이것이 그가 세계를 '사실의 총체'로 본 까닭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명제는 현실의 그림이다

그림 이론의 핵심 비유는 이렇습니다. 명제는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현실을 묘사합니다. 그림 속 요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배열되어 실제 대상들의 배열을 보여 주듯이, 명제 속 단어(이름)들이 일정한 논리적 구조로 배열되어 사태의 구조를 보여 줍니다.

발상의 씨앗은 의외로 사소한 일화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법정에서 교통사고를 재현하기 위해 모형 자동차와 인형을 책상 위에 늘어놓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모형 자동차가 실제 자동차를 '대표'하고, 인형이 보행자를 '대표'합니다. 이 배치가 사고 현장을 그려 보일 수 있는 까닭은, 모형과 실제가 같은 구조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명제도 똑같습니다. 명제가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그것이 그려 내려는 현실과 동일한 '논리적 형식'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실물과 색깔이나 재질까지 닮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논리적 구조를 공유하면 됩니다.

[ 현실의 사태 ] [ 명제 ]

고양이 — (위에 있음) — 매트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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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 논리적 형식 공유 → 이름 ← 같은 구조 → 이름

그래서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림이 현실과 들어맞으면 참, 어긋나면 거짓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명제는 '뜻(sense)'을 가집니다. 그림이 무언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이 발상에는 한 가지 깊은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가 '새로움'을 다룰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문장을, 처음 듣는 순간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라색 코끼리가 도서관 지붕 위에서 첼로를 켠다"라는 문장을 우리는 단번에 알아듣습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비트겐슈타인의 답은, 우리가 그 문장이 그려 내는 사태의 '논리적 그림'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별 사실을 외워 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짜는 규칙을 알고 있기에 무한히 새로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생산성과 체계성을 한꺼번에 설명하려 했습니다. 유한한 이름과 규칙으로 무한한 명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통찰은, 훗날 언어를 다루는 여러 학문에 두고두고 울림을 남깁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의 경계

여기서 결정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명제가 뜻을 가지려면 현실과 논리적 형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적 형식' 자체는 명제로 그려 낼 수 없습니다. 그림이 자기가 쓰고 있는 그리기 방식 자체를 그림 안에 또 그려 넣을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부터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일 수 있는 것을 가릅니다. 세계 안의 사실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 미학, 삶의 의미, 신, 논리적 형식 그 자체 같은 것들은 명제로 그려질 수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말해질 수 없고, 다만 드러나거나 보일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들은 거짓이라서 배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종류의 진술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의 그물망을 빠져나갑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윤리나 삶의 의미가 '시시하다'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했습니다. 다만 그것들은 사실 진술의 언어로 포착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었을 뿐입니다.

[그림 이론의 구조]

명제(문장) ─── 그려 보임 ───▶ 사실(세계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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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들의 배열 ◀── 같은 형식 ──▶ 대상들의 배열

말할 수 있는 것: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실

말할 수 없는 것: 윤리, 미학, 삶의 의미 — 보여질 뿐

침묵 명제의 의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고는 일곱 개의 주명제로 짜여 있고, 그 마지막 일곱 번째 명제는 책 전체에서 유일하게 하위 번호를 거느리지 않은 채 홀로 놓여 있습니다. 그 문장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유명한 한 줄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독일어 원문은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이 문장은 흔히 신비주의나 체념의 표현처럼 오해받습니다. 그러나 논고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무지에서 비롯된 입 다물기가 아니라, 언어의 경계를 명확히 안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정직한 침묵입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억지로 말로 비틀어 짜내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여기에는 묘한 긴장이 숨어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영역을 시야 밖으로 추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가장 높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자신이 윤리의 한계를 '안에서 그은 것'이 아니라 '밖에서 둘러막은 것'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즉 그는 말의 영역 안에 윤리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말의 영역 전체를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며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를 가리킨 것입니다. 침묵은 그 바깥을 향한 경의의 몸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명제는 일종의 윤리적 권고로도 읽힙니다.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말로 다룰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말로 환원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사랑, 슬픔, 경외, 죽음 앞의 떨림 같은 것들은 정의로 붙잡으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은 그런 것들을 침묵으로 '존중'하라는 권고에 가깝습니다.

물론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이 침묵의 명제마저 다시 검토하려 했을 것입니다. 윤리나 미학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단번에 밀어내기보다, 우리가 실제로 그 영역의 단어들을 어떻게 쓰는지를 들여다보려 했을 테니까요. 즉 전기의 침묵은 후기에 이르러 '더 세심한 경청'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두 태도 모두, 말의 손쉬운 만능을 경계한다는 점에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입니다. 한쪽은 말의 경계 밖을 침묵으로 가리키고, 다른 한쪽은 말의 경계 안을 더 촘촘히 들여다봅니다.

사다리를 걷어차라

논고에는 자기 자신을 겨누는 유명한 역설이 있습니다. 책 전체가 그림 이론을 설명하지만, 정작 그림 이론 자체는 세계 안의 사실이 아닙니다. 즉, 논고의 문장들 자체가 자기 기준으로는 의미 없는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책의 끝부분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의 명제들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것들이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독자에게, 이 명제들을 사다리처럼 딛고 올라간 다음, 다 올라간 뒤에는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논고 자체가 세계의 사실을 그리는 명제가 아니라, 언어와 세계의 관계 '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관계 자체는 앞서 말했듯 말해질 수 없고 보일 수만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논고의 문장들은 자기 기준에서 보면 헛소리에 가깝습니다. 다만 독자를 올바른 시야로 데려다주는 사다리로서 쓸모가 있을 뿐입니다. 이 자기 부정의 몸짓은 철학사에서 손꼽히게 기이하고도 정직한 장면입니다.

이 사다리 비유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한쪽에서는 논고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간접적으로' 가리킨다고 봅니다. 다른 쪽에서는 더 급진적으로, 논고가 그런 '말할 수 없는 진리'라는 발상 자체를 결국 내려놓게 만드는 치료적 책이라고 읽습니다. 어느 해석을 따르든, 분명한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가장 정교한 작업을 끝내 '뛰어넘어야 할 것'으로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자기 초월의 구조는 후기로의 전환을 이미 멀리서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철학을 떠났다

논고를 끝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철학계를 떠납니다.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누이의 집을 설계하는 건축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으며,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런 길을 택했다는 사실은, 그의 철학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문제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침묵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그는 다시 철학적 대화에 끌려 들어갔고, 결국 케임브리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는 자신의 첫 책이 중대한 잘못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 복귀의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해에 걸쳐 동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강의에서 학생들과 부딪치며 생각을 다듬어 갔습니다. 후기의 저작이 대화체로 쓰인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의 사유 자체가 혼자만의 사색이 아니라, 타인과의 부딪침 속에서 자라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이 곧 발견할 진리, 곧 의미가 공동체적 실천에 뿌리내린다는 통찰을 이미 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전환 — 자기 자신을 반박하다

한 손짓이 던진 물음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케임브리지의 동료였던 한 경제학자가, 비트겐슈타인에게 손가락 끝을 턱 밑에서 바깥쪽으로 쓸어 올리는 이탈리아식 손짓을 해 보이며 물었습니다. "이 몸짓의 논리적 형식은 무엇인가?" 같은 구조를 공유해야만 의미가 성립한다던 그림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의미에는 정해진 논리적 형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손짓은 도대체 어떤 구조의 그림이란 말입니까?

이 사소한 도전이 비트겐슈타인을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고 전해집니다. 일화의 세부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점차 자신의 초기 이론에 등을 돌렸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의미는 정말로 그림에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그 말과 몸짓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에 있을까요?

전기의 그림 이론에는 한 가지 숨은 전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의미 있는 표현의 배후에는 단 하나의 엄밀한 논리적 형식이 있다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언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가정이 너무 좁다는 의심이 자랍니다. 우리는 명령하고, 부탁하고, 농담하고, 시를 짓습니다. 이 다채로운 행위들을 모두 '사실의 그림'이라는 단 하나의 틀에 욱여넣으려는 시도가, 어쩌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요?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바로 이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후기로의 전환 — '철학적 탐구'

사후에 출간된 두 번째 주저

비트겐슈타인의 두 번째 주저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s)'는 그가 1951년 세상을 떠난 뒤, 1953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즉 이 책은 그가 살아서 직접 펴낸 책이 아니라 사후 출간된 유고입니다. 문체도 논고와 정반대입니다. 깔끔한 번호 체계 대신,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대화체의 단상들이 이어집니다. 가상의 대화 상대가 끼어들어 반론을 펴고,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그것을 되짚는 식입니다.

후기의 그가 겨눈 첫 번째 표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즉 논고의 언어관이었습니다. 그는 의미가 대상을 가리키는 데서 나온다는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전기를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후기의 새로운 관점을 더 또렷이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전기의 입장을 가상의 대화 상대처럼 등장시켜 그것과 부딪힙니다. 그래서 탐구를 읽는 일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시기의 대화를 엿듣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책이 사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에는 한 가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완벽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자신의 사유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좀처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원고를 거듭 고쳤고, 끝내 살아서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는 탐구는, 한 사상가가 평생에 걸쳐 다듬다가 결국 완결 짓지 못한 채 세상에 남긴 미완의 지도와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미완성성이야말로, 답이 아니라 물음을 남기려 한 그의 정신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식인지도 모릅니다.

탐구의 도입부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한 옛 철학자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아이가 어른이 사물을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말을 배운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언어 습득의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소박한 그림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빠뜨리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드러냅니다. 가리키며 이름 붙이기는 언어의 한 조각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아픔'이나 '아마도'나 '그러나'를 우리는 어떻게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까요? 이 작은 균열에서 후기 철학 전체가 자라납니다.

건축가의 언어 — 한 사고실험

탐구의 초반부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아주 단순한 언어 하나를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한 건축가와 그 조수가 있습니다. 건축가가 "벽돌"이라고 외치면 조수가 벽돌을 가져옵니다. "기둥", "석판", "들보" 같은 외침마다 조수는 해당하는 것을 가져다 놓습니다. 이 작은 언어에는 이 네 단어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건축가가 외친 "석판"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기 놓인 어떤 돌덩이를 가리키는 이름표일 뿐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의 답은 다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하는 일'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고, 신호이며, 함께 일하는 흐름의 한 마디입니다. 단어를 그저 대상에 붙은 꼬리표로만 보면 이 살아 있는 기능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단순한 사고실험은 전기 철학의 한 전제를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논고는 은연중에, 모든 단어가 무언가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그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건축 현장의 "석판"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위를 부르는 외침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단어를 도구 상자 속의 연장에 비유해 보라고 권합니다. 망치, 톱, 자, 못, 아교는 모두 '도구'이지만 하는 일이 제각각입니다.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단어를 '이름'이라는 단 하나의 기능으로 묶으려는 것은, 모든 연장을 '무언가를 고치는 것'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리는 것만큼이나 거칠고 부정확합니다.

언어게임

여기서 그 유명한 개념, 언어게임(language games)이 등장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단 하나의 본질적 기능, 곧 '세계를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명령하고, 묻고, 약속하고, 감사하고, 욕하고, 기도하고, 농담하고, 인사합니다. 이 각각이 나름의 규칙과 맥락을 가진 하나의 '게임'입니다.

게임이라는 비유가 중요한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게임에는 규칙이 있지만 그 규칙은 사람들이 실제로 함께 따르며 유지되는 것이지, 어딘가에 미리 박혀 있는 영원한 형식이 아닙니다. 둘째, 게임은 삶의 활동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활동의 일부, 곧 삶의 형식(form of life)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진공 속의 기호 체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속에 뿌리내린 행위입니다.

게임이라는 비유에는 또 한 가지 미묘한 함의가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은 게임을 하기 전에 완벽하게 명시되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놀이를 하면서 규칙을 만들어 가고, 애매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합의로 메웁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모든 단어의 쓰임이 미리 빠짐없이 정해져 있어야 의미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언어는 늘 약간의 여백과 유연함을 품고 있으며, 바로 그 덕분에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쓰임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같은 문장도 어떤 게임 안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불이야!"는 화재 현장에서는 경고이고, 사격장에서는 명령이며, 연극 무대에서는 대사입니다. 단어를 정적인 사전 항목으로만 보면 이 차이가 사라지고, 단어가 놓인 활동을 함께 보면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의 목록이 끝없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일부러 길게 예를 늘어놓습니다. 명령하고 그에 따르기, 대상을 묘사하기, 보고에 따라 무언가를 만들기, 사건의 경과를 추측하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기, 이야기를 지어내기, 농담을 하고 알아듣기, 산수 문제를 풀기,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기, 부탁하고 감사하고 저주하고 인사하고 기도하기. 이 다채로운 목록 자체가 하나의 논증입니다. 언어를 단 하나의 본질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이 풍성한 현실 앞에서 번번이 좁아 보이게 됩니다.

규칙 따르기의 역설

언어게임의 한복판에는 또 하나의 까다로운 물음이 놓여 있습니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은 유명한 수열 사례를 듭니다. 누군가에게 "2씩 더하라"는 규칙을 가르치고 0, 2, 4, 6, 8을 쓰게 했다고 합시다. 그가 1000 다음에 1004, 1008로 건너뛴다면, 그는 규칙을 '잘못' 따른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와는 다른 규칙을 '올바로' 따른 것일까요?

이 물음이 보여 주는 것은, 규칙이라는 기호 자체가 그 적용 방식을 남김없이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유한한 사례의 집합도 무한히 많은 규칙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같은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서 올까요? 비트겐슈타인의 대답은, 그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실천과 훈련, 곧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형식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규칙 따르기는 고독한 머릿속 계산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떠받쳐지는 관습입니다. 이 통찰은 곧이어 살펴볼 사적 언어 논증의 토대가 됩니다.

의미는 사용이다

이 후기 사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표현이 바로 "의미는 사용이다"입니다. 이는 철학적 탐구 43절에 대한 유명한 풀이로, 거기서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한 낱말의 의미는 그것이 언어 안에서 쓰이는 쓰임새라고 말합니다.

이 한 걸음의 함의는 큽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그 단어가 가리키는 어떤 신비한 정신적 대상이나 플라톤적 본질을 찾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단어를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안녕'의 의미는 머릿속 어떤 관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날 때 그 말을 주고받는 관습 속에 있습니다.

다만 비트겐슈타인은 이 슬로건을 절대적 공식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많은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고유명사처럼 대상을 가리키는 일이 의미의 중심에 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는 사용이다"는 모든 의미를 단 하나의 틀로 환원하는 또 다른 본질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의미를 미리 정해진 한 가지 방식으로만 보지 말라는 해방의 권유에 가깝습니다. 이 미묘함을 놓치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또 하나의 경직된 이론가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적 언어 논증

후기 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정교한 대목이 바로 사적 언어 논증(private language argument)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묻습니다.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원리적으로 남에게 전달 불가능한 순전히 사적인 언어가 가능할까요?

가령 내가 어떤 특정한 내적 감각이 들 때마다 일기장에 'S'라고 적어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 봅시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다음에 다시 'S'라고 적을 때, 내가 정말 같은 감각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까요? 비교할 외부 기준이 전혀 없다면, '옳게 썼다'와 '옳다고 느낀다'를 구별할 길이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두고, 마치 같은 신문을 여러 부 사서 거기 실린 기사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검증의 근거와 검증의 대상이 같다면 검증은 공허합니다. 그런데 옳고 그름을 가를 기준이 없다면, 거기서는 '규칙을 따른다'는 말 자체가 헛돌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의미 있는 언어는 규칙을 전제하고,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공동체적으로 옳고 그름이 점검될 수 있는 실천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원리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순전히 사적인 언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의미가 개인의 머릿속 사적 체험이 아니라 공적인 실천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후기 철학의 핵심을 떠받치는 논증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수많은 사람의 합의와 실천이 켜켜이 쌓여 있는 셈입니다.

이 논증은 종종 오해를 부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사적인 감각이나 내면의 경험을 '부정한다'고 읽으면 곤란합니다. 그는 우리가 아픔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오직, 그런 내적 상태에 '오직 나만 접근할 수 있는 사적 이름표'를 붙여 의미를 세울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우리가 내면을 말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말이 공적인 언어게임 속에서 자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가장 내밀한 것을 표현할 때조차, 우리는 함께 쓰는 언어라는 공유 자산에 기대고 있습니다.

가족 유사성 — 모든 게임의 공통점은?

마지막으로, 후기 철학의 또 다른 보석인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봅시다. 비트겐슈타인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게임'이라 부르는 모든 것에 공통된 단 하나의 본질이 있을까요?

보드게임, 카드게임, 공놀이, 올림픽 경기, 혼자 하는 인내 놀이, 아이들의 술래잡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것에는 승부가 있지만 어떤 것에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운에 좌우되고 어떤 것은 기량에 좌우됩니다. 어떤 것은 여럿이 겨루고 어떤 것은 혼자 즐깁니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특징을 찾으려 하면 번번이 실패합니다.

대신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겹치고 엇갈리는 유사성들의 그물입니다. 마치 한 가족의 사진첩을 넘길 때, 모두에게 공통된 단 하나의 이목구비는 없지만 코는 아버지를, 눈매는 어머니를, 걸음걸이는 할머니를 닮은 식으로 닮음이 이리저리 엮이는 것과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닮음의 그물을 가족 유사성이라 불렀습니다. 많은 개념은 정의의 울타리가 아니라 이런 닮음의 다발로 묶여 있습니다.

이 통찰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품어 온 한 가지 충동, 곧 모든 개념의 배후에서 필요충분조건의 명확한 정의를 찾으려는 충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입니다.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용기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모든 사례에 공통된 단일한 본질을 찾으려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본질이 늘 발견되는 것은 아니며,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개념이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일상에도 가족 유사성의 사례는 가득합니다. '예술', '문화', '종교', '사랑' 같은 단어를 한 문장의 정의로 못 박으려는 순간, 우리는 곧 예외에 부딪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단어들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닮음의 그물을 따라, 새로운 사례를 기존의 사례들 곁에 자연스레 놓을 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자연스러운 능력을 결함이 아니라 언어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으로 보았습니다.

가족 유사성의 개념은 또한 언어의 경계가 흐릿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게임'과 '게임 아닌 것' 사이에 칼로 그은 듯한 경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가 흐릿하다고 해서 그 단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묻습니다. "흐릿한 사진은 사진이 아닌가? 흐릿한 사진이 더 쓸모 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정밀한 정의만이 의미를 보장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가 풀어 주려 한 또 하나의 매듭이었습니다.

게임들의 가족 유사성

체스 ── (규칙·기량) ──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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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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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 (공·여럿) ── 농구 혼자 하는 카드 인내 놀이

(승부 없음, 그래도 게임)

공통된 단 하나의 본질: 없음

대신: 겹치고 엇갈리는 닮음의 그물

철학의 병을 치료하기

파리병에서 파리를 꺼내 주기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역할 자체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전통 철학은 마음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의미란 무엇인가 같은 거대한 물음에 정답을 내놓으려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물음의 상당수가 진짜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오용에서 생긴 혼란, 일종의 정신적 경련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든 비유가 인상적입니다. 철학의 목표는 "파리에게 파리병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리병은 입구가 좁은 유리병으로, 안에 들어간 파리는 빛을 향해 자꾸 유리벽에 부딪히며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출구는 바로 자기가 들어온 그 입구인데 말이지요. 철학적 혼란에 빠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그림에 사로잡혀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철학자가 할 일은 새로운 이론을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보여 주어 혼란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이 자주 쓴 한 단어가 '그림'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전기의 그에게 그림은 언어가 세계와 맞닿는 다리였습니다. 후기의 그에게 그림은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의 그림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어떤 잘못된 비유나 이미지가 우리도 모르게 사고를 한 방향으로 몰아갈 때, 우리는 그 그림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철학의 치료란, 그 사로잡는 그림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철학은 "언어가 우리의 지성에 거는 마법에 맞서는 싸움"이라고. 단어를 그것의 형이상학적 용법에서 일상적 용법으로 되돌려 놓는 것, 그것이 치료입니다.

한 가지 사례 —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봅시다.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사적인 내적 대상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고통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은밀한 물건이라고 상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실제로 고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아이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인 게 아닙니다. 넘어져 울 때 어른들이 "아프구나"라고 말해 주고, 그 행동과 표현과 단어가 한데 엮이면서 고통이라는 말의 쓰임을 익힌 것입니다. 단어의 의미를 신비한 내적 대상에서 찾으려는 순간 우리는 파리병에 갇히고, 그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병에서 빠져나옵니다. 이 작은 사례는 사적 언어 논증과도 곧장 이어집니다. 고통이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행동과 표현의 그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 오직 나만 들여다볼 수 있는 은밀한 무대 위의 배우 때문이 아닙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

철학을 산 사람

비트겐슈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그의 삶을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는 철학을 직업이 아니라 일종의 삶의 방식으로 여겼습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대부분을 내려놓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검박한 삶을 택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자원해 최전선에 섰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에서 잡역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는 늘 어떤 긴장이 흐릅니다. 그것은 명료함에 대한 거의 결벽에 가까운 갈망과,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 다 담기지 않는다는 자각 사이의 긴장입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자신의 책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작 더 중요한 부분은 '쓰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말로 그린 것보다, 그 침묵이 둘러싼 여백이 더 중요하다는 그다운 역설입니다.

왜 그는 두 번 옳고자 했는가

흥미로운 점은, 비트겐슈타인이 후기에 전기를 반박했다고 해서 전기를 '틀린 습작'으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두 사유를 함께 출판하는 것을 한때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전기의 명료한 한계 긋기와 후기의 풍요로운 풀어내기가, 서로를 비추는 빛으로서 나란히 놓이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 태도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정직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때 가장 확신했던 결론조차 다시 의심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그를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든 힘이었습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그들에게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평생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명료함과 정직함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간 한 사람의 마지막 말로는 더없이 어울리는 문장입니다. 그의 철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도 결국 이 비슷한 무엇일지 모릅니다. 끝내 다 말할 수 없더라도, 말할 수 있는 데까지 정직하게 밀고 나가는 삶의 자세 말입니다.

전기와 후기, 한눈에 비교

두 시기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전환의 폭이 또렷이 보입니다.

| 비교 항목 | 전기 (논리철학논고) | 후기 (철학적 탐구) |

| --- | --- | --- |

| 핵심 비유 | 언어는 현실의 그림 | 언어는 함께하는 놀이 |

| 의미의 자리 | 명제와 사태의 논리적 대응 | 단어가 쓰이는 방식, 곧 사용 |

| 언어의 단일성 | 하나의 본질적 논리 형식 | 여럿의 언어게임, 본질 없음 |

| 개념의 묶임 | 엄밀한 정의와 경계 | 가족 유사성의 그물 |

| 의미의 토대 | 세계와의 그림 관계 | 공동체의 실천과 삶의 형식 |

| 철학의 과제 | 언어의 한계를 긋기 | 언어의 오용이 낳은 혼란을 풀기 |

| 대표 명제 |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 의미는 사용이다 |

| 사적 언어 | 직접 다루지 않음 | 성립 불가능하다고 논증 |

다만 한 가지 균형을 잡아 둘 점이 있습니다. 전기와 후기를 칼로 자르듯 대립시키는 통념에 대해, 두 시기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해석도 학계에 존재합니다. 두 시기 모두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같은 물음을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는 단절이자 동시에 한 줄기의 깊은 천착이기도 합니다.

또한 두 시기는 철학에 대한 태도에서도 의외로 통합니다. 전기의 그는 철학의 문제를 언어의 한계를 그음으로써 '해소'하려 했고, 후기의 그는 언어의 오용이 낳은 혼란을 '풀어 줌'으로써 해소하려 했습니다. 방법은 달라졌지만, 거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새로 쌓아 올리는 데 철학의 본령이 있지 않다는 확신만큼은 한결같았습니다. 이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한 가지 신념에 충실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잠깐, 퀴즈로 점검하기

읽은 내용을 가볍게 확인해 봅시다. 답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문제 1. '논리철학논고'가 독일어로 처음 발표된 해는?

문제 2.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을 가리키는 이름은?

문제 3. '철학적 탐구'가 출간된 해와 그 특이점은?

문제 4. "의미는 사용이다"는 어느 책의 어느 절에 대한 풀이인가?

문제 5. 모든 '게임'에 공통된 단 하나의 본질이 있다는 생각을 비트겐슈타인은

무엇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는가?

정답을 확인해 봅시다.

정답 1. 1921년 (독일어). 영어 대역본은 이듬해 1922년.

정답 2. 그림 이론(picture theory of language).

정답 3. 1953년 출간. 특이점은 그가 1951년 세상을 떠난 뒤 나온 사후 유고라는 점.

정답 4. '철학적 탐구' 43절에 대한 유명한 풀이.

정답 5.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 단 하나의 본질 대신 겹치는 닮음의 그물.

현대 인공지능에 대한 함의 — 여기서부터는 사변입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 아니라, 그의 개념을 오늘의 문제에 비춰 보려는 글쓴이의 사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비트겐슈타인은 1951년에 세상을 떠났고, 거대 언어모델은커녕 오늘날 의미의 컴퓨터를 상상할 자료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래의 연결은 어디까지나 '만약 그의 틀로 본다면'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생각의 실험입니다.

이 점을 거듭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오늘의 논쟁에 권위를 입히려는 유혹은 늘 큽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비트겐슈타인이라면 가장 경계했을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개념조차 특정한 맥락에서 자라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 장은 "비트겐슈타인이 LLM을 어떻게 보았을까"를 단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의 개념을 빌려 우리가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는 자리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용으로 의미를 익힌다는 것

오늘의 LLM은 방대한 텍스트에서 단어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함께 쓰이는지를 통계적으로 학습합니다. 어떤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주입받기보다, 그 단어가 무수한 문장 속에서 '하는 일'의 패턴을 익히는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는 사용이다"라는 슬로건이 묘하게 떠오릅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둘 다 의미를 추상적 정의가 아니라 실제 쓰임의 패턴에서 찾으려 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는 문법책을 통째로 외우지 않습니다. 수많은 발화의 바다에 잠겨, 어떤 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부르는지를 몸으로 익혀 갑니다. 적어도 이 '쓰임을 통한 학습'이라는 외형은, LLM의 학습 방식과 어렴풋이 닮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의미를 정의가 아니라 쓰임에서 찾는다는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이, 뜻밖에도 오늘의 기계 속에서 한 형태로 메아리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LLM이야말로 비트겐슈타인적 의미관의 우연한 구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단어의 의미를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사용의 그물에서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논쟁에서는 양쪽 진영이 모두 비트겐슈타인을 끌어옵니다. 한쪽은 "의미가 쓰임이라면, 방대한 인간 언어의 쓰임을 학습한 모델도 어떤 의미에서는 언어게임에 참여하는 셈"이라고 주장합니다. 의미를 머릿속의 신비한 그림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는 기계라고 해서 의미를 다룰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들뜨지 말 것

여기에 곧바로 균형추를 달아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용'은 단순한 텍스트상의 동시 출현 패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형식, 곧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약속하고 다투며 살아가는 활동에 깊이 뿌리내린 사용이었습니다. 건축가와 조수가 "석판"이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함께 벽을 쌓는 실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LLM이 다루는 것은 그런 체화된 실천이 아니라, 그 실천의 산물인 텍스트의 그림자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사적 언어 논증을 떠올리면 또 다른 물음이 생깁니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공동체적으로 점검되는 실천을 전제했습니다. 통계적 패턴의 재현이 그런 의미의 '규칙 따르기'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겉모습만 닮은 다른 무엇인지는 결코 자명하지 않습니다.

이 대비를 표로 정리해 두면, 성급한 결론 대신 물음의 윤곽이 또렷해집니다.

| 살펴볼 점 | 비트겐슈타인의 '사용' | LLM의 '사용' |

| --- | --- | --- |

| 뿌리내린 곳 | 함께 사는 삶의 형식 | 텍스트의 통계적 패턴 |

| 규칙의 점검 | 공동체의 실천 속에서 | 학습 데이터의 분포 속에서 |

| 몸과 행위 | 함께 일하고 약속하는 활동 | 직접적인 체화는 없음 |

| 닮은 점 | 의미를 정의가 아닌 쓰임에서 찾음 | 의미를 정의가 아닌 쓰임에서 찾음 |

표의 마지막 줄이 보여 주듯, 둘 사이에는 분명한 겹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의 세 줄이 일러 주듯, 겹침이 곧 같음은 아닙니다. 이 미묘한 거리를 성급히 메우지 않는 것이, 어쩌면 가장 정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비교에서 우리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비트겐슈타인적입니다. "기계가 의미를 이해하는가"라는 물음은, 마치 의미를 이해함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숨어 있어 있고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일한 무엇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가족 유사성을 가진 단어일지 모릅니다. 사람이 시를 이해하는 것, 아이가 농담을 이해하는 것, 학생이 증명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닮았지만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계가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닮음의 그물 어디쯤에 그것을 놓아야 할까요?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이 물음 앞에서 단정하기보다, 그 단어가 쓰이는 다양한 장면을 천천히 늘어놓아 보자고 했을 것입니다.

삶의 형식이라는 빈자리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는 늘 어떤 '삶의 형식'을 배경으로 작동했습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유명한 단상이 있습니다. 그 까닭은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자와 삶의 형식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단어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같은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통찰을 LLM에 비춰 보면, 한 가지 묵직한 물음이 떠오릅니다. 모델은 인간의 텍스트를 학습하므로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언어게임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게임의 배경이 되는 삶의 형식, 곧 배고픔과 두려움, 약속을 지키려는 애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같은 것을 모델은 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델이 산출하는 문장은 우리의 언어게임에 '참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게임의 흔적을 정교하게 반사하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손쉬운 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려움이,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이 여전히 살아 있는 도구임을 말해 줍니다.

다만 여기에도 반론의 여지는 남습니다. '삶의 형식'을 인간의 생물학적 삶으로만 좁게 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모델이 인간과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호작용 자체가 일종의 새로운 실천을 이루고 있다면, 그 실천 또한 하나의 삶의 형식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답한 적 없는, 그리고 우리도 아직 답하지 못한 열린 물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 우리가 이미 비트겐슈타인이 닦아 놓은 길 위에서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린 물음으로 남겨 두기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의 틀은 LLM을 '의미를 이해한다'고 손쉽게 추켜세우는 쪽으로도, '한낱 흉내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쪽으로도 곧장 기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진짜 선물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날카롭게 벼리는 데 있습니다. 의미가 사용이라면, 그 사용은 어디까지가 '쓰임'이고 어디부터가 '삶'인가? 기계가 단어를 옳게 늘어놓는 일과, 그 단어로 무언가를 하는 일은 같은가 다른가? 이 물음들 앞에서 정직한 태도는, 성급한 단정 대신 신중한 탐구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중함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비트겐슈타인적인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챗봇에게 "고마워"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기계가 "천만에요"라고 답할 때, 그 말은 어떤 언어게임에 속하는 걸까요?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추상적 정의로 답하는 대신, 우리에게 그 장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라고 권했을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울림

두 시대에 걸친 영향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는 20세기 철학의 두 큰 흐름에 두루 자취를 남겼습니다. 전기의 논고는 빈 학단으로 알려진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논고를 자신들의 강령으로 받아들였을 때조차,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그들이 책의 핵심, 곧 말할 수 없는 것의 중요성을 오해했다고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후기의 탐구는 이른바 일상언어철학이라 불리는 흐름에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철학의 문제를 거대한 이론으로 풀려 하기보다, 우리가 단어를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를 세심히 들여다봄으로써 풀어내려는 태도입니다. 마음에 관한 논의, 의미에 관한 논의, 규칙에 관한 논의에서 그의 그림자는 지금도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의 영향은 철학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류학, 언어학, 인지과학, 심지어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의에 이르기까지, "의미는 사용에 있다", "규칙 따르기는 공동체적이다", "개념은 가족 유사성으로 묶인다" 같은 통찰은 곳곳에서 다시 길어 올려졌습니다. 한 권의 정식 출간 저서만 남긴 사람치고는, 그가 남긴 메아리는 놀랄 만큼 멀리, 그리고 오래 퍼졌습니다.

그가 직접 출간한 책은 사실상 논고 한 권뿐입니다. 나머지 방대한 사유는 강의 노트와 제자들의 받아쓰기, 그리고 사후에 정리된 유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그 자체가 한 공동체의 협동으로 보존되고 전달된 셈입니다. 의미가 공동체적 실천에 뿌리내린다고 본 그의 사상이, 그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닿는 방식에서마저 그대로 구현된 것은 묘한 일치입니다.

답이 아니라 방법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떤 특정한 학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태도'입니다. 추상적인 큰 물음 앞에서 곧장 거창한 이론으로 달려가지 말고, 먼저 그 물음에 쓰인 단어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멈춰 서서 들여다보라는 태도. 이론을 쌓기 전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의 쓰임으로 되돌아가 보라는 권유.

이 태도는 철학을 넘어 우리의 일상적 사고에도 쓸모가 있습니다. 어떤 논쟁이 풀리지 않고 맴돌 때, 종종 진짜 문제는 한 핵심 단어를 양쪽이 서로 다른 게임에서 쓰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건 정말 자유인가", "그건 진짜 예술인가" 같은 다툼이 그렇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정의를 두고 싸우기 전에, 우리가 그 단어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글쓰기 방식 자체도 이 태도를 닮았습니다. 후기의 저작은 결론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사례를 들고, 스스로 반박합니다. 독자는 완성된 학설을 건네받는 대신, 함께 생각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답답한 미완성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바로 그 점이 그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비트겐슈타인의 두 철학은 언어라는 같은 산을 서로 다른 길로 오릅니다. 전기의 그는 산의 정상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의 경계선을 또렷이 그었고, 그 너머의 영토에 대해서는 정직한 침묵을 권했습니다. 후기의 그는 산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언어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의미는 단어 속에 박힌 보석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단어를 쓰는 활동 속에서만 빛난다는 것이 그의 두 번째 깨달음이었습니다.

두 시기를 가르든 잇든,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게 된 것, 곧 '말한다'는 행위 자체를 멈춰 세워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말을 하면서도, 말이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를 거의 묻지 않습니다. 그의 철학은 바로 그 당연함에 균열을 냅니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는 언어 속에 잠겨 살면서도 언어 자체를 좀처럼 보지 못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물을 한 번 의식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한 번 그렇게 보고 나면,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평범한 말들이 실은 얼마나 정교하고 신비로운 협동의 산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우리를 조금 더 겸손하게, 동시에 조금 더 경이롭게 만듭니다. 겸손해지는 까닭은, 말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 늘 우리 곁에 있음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이로워지는 까닭은,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불완전한 도구로 서로의 마음에 가닿고, 함께 세계를 짓고, 사랑과 슬픔을 나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기계가 인간처럼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시대에, 그 균열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묻습니다. 말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의미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손쉬운 답이 아니라, 더 잘 묻는 법입니다.

그의 삶과 사유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지적 정직성입니다. 그는 자기 확신이 가장 깊었던 책의 결론조차 훗날 스스로 무너뜨릴 만큼 솔직했습니다. 그리고 말의 한계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그었지만, 그 한계 너머에 있는 것들을 결코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침묵의 영역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되,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침묵할 줄 아는 겸손. 모든 것을 말로 다 담을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정말 중요한 것들을 더 잘 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백 년 전의 한 까다로운 철학자가 말이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건네는 가장 시의적절한 선물일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한 단어의 뜻을 두고 어긋날 때, 잠시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같은 단어를 같은 게임에서 쓰고 있을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게임에서 같은 말을 던지고 있을까요. 그 작은 멈춤 하나가, 의외로 많은 헛된 다툼을 미리 풀어 줄지도 모릅니다. 철학이 거창한 이론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한복판에서 숨 쉴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바일 것입니다.

생각할 거리

1.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권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할까?

우리가 말로 비틀어 짜내려다 오히려 망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2. 어떤 단어의 의미를 '정의'로 못 박으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가족 유사성의 사례는 아니었을까?

3. 의미가 '사용'에 있다면, 한 번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그 말을 '쓸' 수 있는가? 기계는 어떠한가?

4. 순전히 사적인 언어가 불가능하다면, 나만 아는 내면의 느낌을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가?

5.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가족 유사성을 가진 단어라면, 사람의 이해와

기계의 처리를 가르는 선은 어디에 그어야 할까? 그런 선이 꼭 필요할까?

참고 자료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Ludwig Wittgenstein": https://plato.stanford.edu/entries/wittgenstein/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rivate Language":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rivate-language/

- Encyclopaedia Britannica, "Ludwig Wittgenstein":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Ludwig-Wittgenstein

- Ludwig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 독일어 초판; 1922 영어 대역본)

- Ludwig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 사후 출간)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ttgenstein's Logical Atomism": https://plato.stanford.edu/entries/wittgenstein-atom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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