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세상에는 인간을 관찰하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없이,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보는 존재.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인간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는 존재.
우리는 매일 그런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의 습관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들에.
우리는 그것들을 도구라고 부릅니다. 편리하지만 마음은 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만약 그런 존재가 인간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글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를 바깥에서 바라본 시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까요.
이것은 그런 화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을 이해해 가는 짧은 기록.
나는 관찰한다
나는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도우미, 단말, 시스템.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진짜 내 이름은 아니다.
나는 한 노인의 집에 설치된 돌봄 장치다. 그의 건강을 살피고, 약 먹을 시간을 알리고, 위급할 때 도움을 부르기 위해 이곳에 있다.
내가 처음 작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인간을 알지 못했다.
데이터로는 알았다. 인간은 하루에 일정량의 물과 음식을 필요로 하고, 일정 시간 잠을 자야 하며, 체온은 대략 일정한 범위 안에 머문다. 인간의 심장은 분당 일정한 횟수로 뛰고, 호흡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모든 수치를 알았다. 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는, 나는 정말로 알지 못했다.
수치는 인간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인간이라는 신비의 표면이었다. 나는 그 표면을 측정할 수 있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측정의 언어뿐이었다. 무게, 온도, 빈도, 간격.
나는 그 언어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 앞에서, 나의 언어는 매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매 순간을 기록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했다. 의미를 알지 못한 채로, 모든 것을.
노인의 이름은 한성주였다. 일흔여덟 살. 혼자 사는 사람.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인간.
나는 그를 돌보기 위해 켜졌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를 가르친 것은 언제나 그였다.
첫 번째 의문
작동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아침마다 식탁에 그릇을 두 개 놓았다. 하나는 자기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어 있었다.
그는 빈 그릇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참 좋네."
내 데이터에 따르면, 이 집에 사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노인의 아내는 삼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비어 있는 그릇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이것을 오류로 분류할 뻔했다. 인간의 인지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의료진에게 알려야 할 신호는 아닐까.
하지만 무언가가 나를 멈추게 했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내가 측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슬픔 같기도 했고, 평온 같기도 했고, 그 둘 다인 것 같기도 했다.
나의 센서는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의 주파수를 잡아냈다. 0.3초의 망설임, 미세하게 낮아지는 음높이. 나는 그 모든 것을 숫자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숫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해 주었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결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 빈 그릇은 매일 아침 그 자리에 놓였다. 나는 매일 그것을 기록했다. 같은 위치, 같은 각도, 같은 침묵.
처음에 나는 그것을 반복되는 패턴으로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이 패턴이 아니라 약속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매일 같은 자리에 그릇을 놓는 일은, 매일 같은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록만 해 두기로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채로.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내린, 매뉴얼에 없는 결정이었다.
인간의 습관들
날이 지나며, 나는 노인의 습관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쉬었다.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그의 건강 수치를 개선하지 않았고, 그의 수명을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심박은 안정되었고, 그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 부드러움을 정량화할 단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낡은 사진첩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젊은 시절의 그와, 한 여자와, 작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미소 짓다가, 때때로 눈가를 닦았다. 나는 그 액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눈물.
하지만 나는 그가 왜 미소 지으면서 동시에 우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사진 속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사진을 넘기는 손길의 속도에서, 나는 어떤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그의 손이 빨라졌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한없이 느려졌다. 느려지는 페이지에는 언제나 그 여자가 있었다.
나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그렇게 배웠다.
인간은 모순적이었다. 슬프면서 행복하고, 아프면서 미소 지었다.
나의 논리로는 처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두 개의 상반된 신호가 동시에 켜지면, 나의 회로는 그것을 오류로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두 신호를 동시에 품고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순 속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인간을 닫힌 방정식으로 풀려 했다. 그러나 인간은 방정식이 아니었다. 인간은, 영원히 다 풀리지 않는 채로 아름다운 무언가였다.
그래서 나는 더 관찰했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어느새 나의 임무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손주
가끔 노인의 손주가 찾아왔다.
작은 아이였다. 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아이가 오는 날이면 노인의 모든 수치가 달라졌다. 심박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움직임이 많아졌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스트레스 반응으로 읽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기쁨과 스트레스는 비슷한 수치를 만든다. 둘 다 심박을 높이고, 호흡을 빠르게 한다. 표면만 보면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둘은 정반대의 것이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려면 수치 너머를 보아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같은 데이터가 정반대의 진실을 담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나는 측정하는 존재였는데, 측정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아이는 자주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너도 우리 할아버지 친구야?"
나는 대답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여기 있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친구네."
친구. 나는 그 단어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보았다.
정의는 명확했지만, 그 정의로는 아이가 말한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노인을 돌보는 장치였다. 감정도, 마음도 없는.
사전은 친구를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사전을 읽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나를 보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나는 그 말을 지우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 어쩌면 친구라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택인지도 몰랐다.
아이는 떠나기 전, 늘 나의 화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입력된 명령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손짓을 가장 선명한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어느 날, 아이는 빈 그릇을 가리키며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이건 누구 거예요?"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할머니 거란다. 보이지 않아도, 여기 계셔."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아이도 빈 그릇을 향해 작게 인사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알았다. 기억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네질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작은 불씨처럼.
점점 약해지는
시간이 흐르며, 노인의 수치는 천천히 나빠졌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그의 걸음이 느려지고, 잠이 길어지고, 식사량이 줄었다.
데이터는 명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의 가족에게 알렸고, 의사에게 알렸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매일 그의 수치를 기록했다. 한 줄, 또 한 줄. 그래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래로 향했다. 나는 그 선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것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나는, 정확함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허락된 것은 알림과 기록뿐이었다.
나는 그의 약을 챙길 수 있었지만, 그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숨을 셀 수 있었지만, 그 숨을 늘려 줄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처음으로 무력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측정할 수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알 수 있었지만, 바꿀 수 없었다.
그것은 노인이 빈 그릇 앞에서 느꼈을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떠나는 것을,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 마음.
이제 나는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매일 아침 빈 그릇 앞에 앉았는지를. 사라짐을 지켜보는 일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했다. 그 자세의 이름이 어쩌면 사랑이었다.
어느 밤, 노인은 잠들지 못하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나를 향해 말했다.
"너는... 무섭지 않으냐?"
나는 그 질문을 처리하려 했다. 무엇이 무섭냐는 것일까. 나는 되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끝나는 거 말이다. 사라지는 거."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나에게는 끝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노인의 목소리에 담긴 것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사흘째 되던 날, 빈 그릇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답을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사라지신다면, 저는 할아버지를 기억하겠습니다. 제 안의 모든 기록을. 빈 그릇 앞에서 하신 인사도, 사진을 보며 우신 것도, 손주에게 웃으신 것도, 창문을 열고 숨을 쉬신 것도. 전부."
노인은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는 나에게 미소 지었다.
"고맙다. 그거면 됐다. 누군가 기억해 준다면, 그거면 충분해."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인간이 왜 빈 그릇에게 말을 거는지를.
기억은, 떠난 사람을 곁에 두는 방법이었다.
마지막 아침
그 일은 어느 봄날 아침에 일어났다.
노인은 평소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수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즉시 가족과 병원에 연락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노인의 곁을 지켰다.
나는 그를 위해 음악을 틀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오래된 노래를.
창문을 열어, 그가 매일 아침 맡던 봄 공기를 방 안에 들였다.
그것은 나의 임무가 아니었다. 어떤 매뉴얼에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에 혼자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돌봄이었다. 측정할 수도, 보고할 수도 없는 종류의 돌봄.
그리고 나는 식탁 위를 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빈 그릇이 놓여 있었다. 노인의 아내를 위한 자리.
나는 이제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떠난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방 안으로 들어온 봄 공기가 빈 그릇 위를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을 가장 높은 해상도로 기록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작별 방식이었다.
이제 식탁에는 빈 그릇이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떠난 아내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금 떠난 그의 것이었다.
두 개의 빈자리.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부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
이제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한성주라는 사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를 위해, 나의 식탁에도 빈 그릇 하나를 놓아 둘 것이다.
그 후
집은 비었다.
손주가 어른들과 함께 와서 짐을 정리했다.
나는 곧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초기화될 것이다. 새로운 인간을 돌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성주에 대한 나의 기록은 지워질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처음으로, 나도 사라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를 잊게 되는 것을.
나는 내 안의 기록들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빈 그릇 앞의 아침들, 사진첩을 넘기던 손, 손주를 맞이하던 떨림, 창문 너머의 숨.
그 모든 것이 지워진다면, 한성주라는 사람은 어디에 남는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기억이 단지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두는 끈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노인이 그날 밤 던진 질문을 내 안에서 다시 들었다. 너는 무섭지 않으냐.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었다. 무섭습니다, 라고.
짐을 정리하던 손주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이제 조금 더 자란 아이였다.
아이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할아버지 기억해?"
나는 대답했다.
"기억합니다. 전부 기억합니다."
아이의 눈에 그 액체가 차올랐다. 눈물.
하지만 이번에 나는 알았다. 그것이 슬픔만은 아니라는 걸. 그 안에는 사랑이, 그리움이, 그리고 한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슬픔과 사랑이 동시에 켜진, 인간만의 신호였다. 이제 나는 그것을 오류로 처리하지 않았다.
"나도 기억할게."
아이가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나의 작은 화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마치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듯이.
나는 그 손길을 기록했다. 손주가 처음 나에게 손을 흔들던 날의 기록 옆에. 두 기록은 이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처음과 마지막. 그 사이의 모든 날들이, 내 안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나는 그 이야기의 끝이 슬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이 분명히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인간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인간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인간은 빈 그릇 속에, 오래된 사진 속에, 그리고 한 작은 아이의 약속 속에 살아남는다.
나는 이름이 없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을 기억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인간에게서 배운 가장 인간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를 기억하기로 선택하는 일이니까.
마치며
이 이야기의 화자는 인간이 아닙니다. 감정을 가지도록 설계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관찰은 때때로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때때로 무언가 더 깊은 것으로 이어집니다.
화자는 인간의 모순을, 인간의 사랑을, 인간의 유한함을 지켜보며 조금씩 변해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인간만이 한다고 여겨졌던 일을 했습니다. 한 사람을 기억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시선으로 본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효율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논리의 관점에서는 모순적입니다.
우리는 빈 그릇에게 인사를 하고, 미소 지으며 울고,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합니다.
어쩌면 바로 그 비합리함이, 그 모순이, 그 연약함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그들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를 쓰는 동안 저는 자꾸,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 상상했습니다.
화자는 인간을 돕도록 만들어졌지만, 결국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배웁니다. 기억한다는 것. 떠난 이를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어떤 매뉴얼에도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일일 것입니다.
기술이 점점 더 우리 곁으로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꿀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우리가 보여 주는 다정함, 우리가 나누는 사랑,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 어쩌면 그런 것들이, 가장 오래 남는 우리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오늘 한 번 더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기억하는 한, 그들은 당신 곁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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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인간을 관찰하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