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당신은 지금 마법을 부리고 있다
잠시 멈추고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당신의 눈앞에는 검은 선과 곡선의 작은 모양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양들이 눈을 스치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떠오르고, 누군가의 생각이 마치 당신 자신의 생각처럼 흘러 들어온다.
이것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의 마법에 가깝다. 종이 위의 잉크 자국, 혹은 화면 위의 픽셀이,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는가.
우리는 이 일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내서 그 경이로움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숨을 쉬듯, 걷듯, 읽기는 우리에게 거의 무의식의 동작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읽기는 우리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인간의 뇌에는 "읽기를 위한 영역"이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말하도록 태어나지만, 읽도록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읽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은 글자가 의미로 바뀌는 그 신비로운 순간 안으로 들어가 본다.
1. 읽기는 타고나지 않는다
말하기와 읽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다.
말하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되었다. 인간은 수만 년, 어쩌면 그 이상 오랫동안 말을 해 왔고, 그래서 뇌에는 언어를 다루도록 진화로 다듬어진 바탕이 있다.
아이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도,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말을 배운다. 말하기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읽기는 다르다. 문자가 발명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진화가 뇌에 "읽기 전용 회로"를 새겨 넣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읽기는 본능이 아니라 발명이다. 그리고 모든 발명이 그렇듯, 읽기는 배워야만 익힐 수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저절로 글을 읽게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사고 실험
이렇게 상상해 보자. 갓 태어난 아이를 말소리는 가득하지만 글자는 단 하나도 없는 세상에 둔다고 하자. 책도 간판도 표지판도 없는 곳이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풍부하게 말을 익힐 것이다. 농담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평생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한다.
말은 사람들 사이에 떠다니는 공기와 같아서 저절로 스며들지만, 글자는 누군가 손을 잡고 가르쳐 주어야만 비로소 열리는 문이다. 이 차이가 읽기의 본질을 말해 준다.
뇌의 재활용
그렇다면 읽기 전용 영역도 없는 뇌가 어떻게 읽기를 해내는 걸까. 답은 뇌의 놀라운 융통성에 있다.
뇌는 본래 다른 일을 위해 마련된 영역들을 빌려 와, 읽기라는 새로운 임무에 맞게 재배치한다. 물체의 모양을 알아보던 시각 영역, 소리와 말을 다루던 언어 영역, 의미를 연결하던 영역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읽기는 뇌가 가진 여러 부품을 모아 즉석에서 조립한 임시 기계 같은 것이다. 누구도 읽기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지만, 누구나 훈련을 통해 그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사실은 인간의 뇌가 얼마나 유연한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인상적인 증거 중 하나다. 연구자들은 이런 빌려 쓰기를 흔히 "신경 재활용"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원래 짐승의 흔적이나 나뭇가지의 윤곽 같은 자연의 형태를 읽어 내던 시각 회로가, 어느 날부터 글자라는 인공의 형태를 읽어 내는 데 동원된 것이다.
> 우리는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읽는 법을 우리 안에서 새로 발명한다.
난독을 이해한다는 것
이 관점은 난독에 대한 이해도 바꾼다. 글을 읽고 익히는 데 유독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난독이라고 부른다.
읽기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여러 뇌 영역의 정교한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협력의 어느 한 부분이 다르게 작동할 때 읽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읽기의 어려움이 지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에 가깝다.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중에는 다른 영역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이도 많다. 큰 그림을 보는 능력,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같은 것들이다.
이 이해는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을 탓하는 대신, 그에게 맞는 다른 길을 찾아 주는 태도로 이어진다. 다만 구체적인 진단과 도움은 전문가의 영역이며, 이 글은 그것을 대신하지 않는다.
2. 눈은 미끄러지지 않고 도약한다
읽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눈이 글줄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져 간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눈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눈은 글줄 위를 작은 도약으로 건너뛴다. 한 지점에 잠시 멈췄다가, 다음 지점으로 휙 뛰고, 또 멈춘다. 이 짧은 도약을 "도약 운동"이라 부르고, 그 사이의 멈춤을 "고정"이라 부른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글자를 또렷이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멈춰 있는 그 순간뿐이라는 사실이다. 눈이 도약하는 동안에는 세상이 흐릿하게 번지며, 뇌는 그 순간의 흐릿함을 알아서 지워 버린다.
우리는 멈춤의 순간에만 본다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한쪽 눈에서 다른 쪽 눈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아무리 애써도 자기 눈동자가 움직이는 순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 도약의 순간을 뇌가 매끄럽게 가려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사실 여러 장의 고정된 스냅 사진을 이어 붙인 것에 가깝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우리의 눈은 수백 번 멈추고 도약한다. 그 멈춤마다 한 줌의 글자를 또렷이 붙잡고, 그것을 뇌로 보낸다.
능숙한 독자는 도약이 길다
읽기에 서툰 사람은 도약이 짧고 멈춤이 잦다. 한 번에 받아들이는 글자가 적어, 자주 멈추고 자주 뒤로 돌아가야 한다.
능숙한 독자는 도약이 더 길고 멈춤이 더 효율적이다. 한 번의 멈춤으로 더 많은 글자를 붙잡고, 앞으로 매끄럽게 나아간다.
| 눈의 움직임 | 뜻 |
| --- | --- |
| 도약 |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휙 건너뛰는 순간 |
| 고정 | 잠시 멈춰 글자를 또렷이 받아들이는 순간 |
| 되돌아감 | 이해가 막혀 앞으로 시선을 다시 보내는 일 |
이 작은 도약과 멈춤의 춤은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매끄러운 읽기의 환상 아래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3. 뇌의 문자 상자
읽기를 배우는 동안, 뇌의 어떤 영역은 특별한 일을 맡게 된다. 연구자들은 뇌의 한 부위가 글자와 단어의 시각적 형태를 빠르게 알아보는 데 점점 더 특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영역은 흔히 비유적으로 "뇌의 문자 상자"라고 불린다. 보다 학술적인 이름으로는 "시각 단어 형태 영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영역이 하는 일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그것은 글자의 모양을 거의 순식간에 알아보는 전문가다.
글꼴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손글씨와 인쇄체가 달라도, 같은 글자는 같은 글자로 알아본다. 우리가 길에서든 책에서든 화면에서든 같은 단어를 별 노력 없이 읽어 내는 데에는 이런 시각적 전문성이 깔려 있다.
같은 자리에서 자라나는 전문성
흥미로운 점은, 이 문자 상자가 사람마다 거의 같은 위치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읽는 사람이든, 영어를 읽는 사람이든, 아랍어를 읽는 사람이든, 비슷한 자리에서 이 전문성이 자라난다.
이것은 읽기가 임의의 영역을 아무렇게나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언어가 만나기에 알맞은 자리를 골라 자리 잡는다는 뜻이다. 마치 새로운 가게가 손님이 모이기 좋은 길목에 들어서듯 말이다.
그리고 이 영역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글자를 배우는 그 몇 해 동안 비로소 빚어진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뇌에는 이 전문가가 아직 없다.
능숙한 읽기는 모양을 통째로 본다
읽기를 막 배우는 아이는 글자를 하나하나 더듬는다. 소리를 또박또박 짚어 가며 단어를 천천히 조립한다.
그러나 읽기에 능숙해질수록, 우리는 단어를 글자의 모음으로 일일이 해독하기보다 하나의 친숙한 모양처럼 통째로 알아보게 된다.
이것이 능숙한 독자가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의 일부다. 자주 만나는 단어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거의 한 덩어리로 인식한다. 마치 익숙한 얼굴을 멀리서도 알아보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힘겹게 글자를 더듬던 행위가, 충분한 연습을 거치면 의식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매끄러운 과정으로 바뀐다.
| 단계 | 읽기의 모습 |
| --- | --- |
| 초보 | 글자를 하나씩 소리로 더듬어 단어를 조립 |
| 익숙 | 자주 보는 단어를 한 덩어리로 인식 |
| 능숙 | 의미가 거의 즉각적으로 떠오름 |
글자가 뒤섞여도 읽히는 까닭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단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만 제자리에 있으면, 가운데 글자들이 조금 뒤섞여도 우리는 그 단어를 어렵지 않게 읽어 낸다.
이는 능숙한 독자가 글자 하나하나를 차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전체 윤곽과 익숙한 모양에 크게 기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뇌는 늘 가장 그럴듯한 의미를 향해 앞질러 가며 빈칸을 메운다.
다만 이 현상은 익숙한 단어에서만 잘 통한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낯선 단어나 정밀한 정보 앞에서는, 우리도 다시 글자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짚어야 한다.
4. 문자라는 발명, 그 긴 이야기
읽기가 발명이라면, 그 발명은 언제 어떻게 일어났을까. 문자의 역사는 인류가 자기 생각을 바깥에 새겨 두려 한 오랜 분투의 기록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셈을 하고 물건을 기록하기 위해 점토에 표시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곡식이 몇 자루, 가축이 몇 마리. 처음의 글자는 시가 아니라 장부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르며 이 표시들은 점차 다듬어져, 사물을 그린 그림에서 소리를 담는 기호로 옮겨 갔다. 그림이 곧 말소리를 가리키게 되면서, 문자는 비로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알파벳이라는 도약
그 다음의 큰 도약은 알파벳의 등장이었다. 수천 개의 기호를 외워야 하던 글쓰기가, 몇십 개의 기호만으로 모든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쓰기로 바뀌었다.
소리의 가장 작은 조각마다 하나의 글자를 짝지어 주는 이 방식은, 글을 배우는 일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쓸 수 있게 된 데에는 이 단순함의 힘이 컸다.
두루마리에서 책으로
글자를 담는 그릇도 함께 진화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긴 두루마리에 글을 적었다. 두루마리는 한쪽을 풀며 읽어야 해서, 가운데 어느 대목을 곧장 펼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낱장을 묶어 한쪽을 꿰맨 형태, 곧 오늘날의 책에 가까운 모양이 나타났다. 이 변화는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난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책장을 넘겨 원하는 대목을 곧장 펼치고, 앞뒤를 오가며 견주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페이지를 넘긴다는 그 작은 동작이 읽기의 방식을 바꾸었다.
인쇄, 그리고 모두의 읽기
마지막 큰 전환은 인쇄였다. 책을 한 권 한 권 손으로 베껴 쓰던 시절, 책은 너무도 귀해 소수만이 가질 수 있었다.
인쇄가 등장하자 같은 책을 수없이 찍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책값은 내려갔으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크게 늘었다. 읽기는 점차 소수의 특권에서 많은 이의 일상으로 옮겨 갔다.
| 시대의 그릇 | 읽기의 모습 |
| --- | --- |
| 점토판 | 셈과 기록, 짧은 표시 |
| 두루마리 |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 가며 읽기 |
| 책(코덱스) | 원하는 대목을 펼치고 오가며 읽기 |
| 인쇄본 | 같은 글을 많은 이가 함께 읽기 |
지금 우리가 손에 든 화면도 이 긴 줄의 가장 최근 한 칸이다. 점토에서 화면까지, 글자를 담는 그릇은 계속 바뀌어 왔다.
5. 아이는 어떻게 읽기를 배우는가
읽기가 발명이고 배워야만 익히는 것이라면, 그 배움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특별히 흥미롭다.
아이가 읽기를 배우는 첫걸음은 의외로 눈이 아니라 귀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먼저 말소리가 더 작은 조각들로 쪼개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야 한다.
"사과"라는 말이 몇 개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감각, 이것이 읽기의 숨은 토대다. 이 소리의 감각이 자라야, 글자와 소리를 짝지을 준비가 된다.
소리 내어 짚어 가기
그 다음 단계가 글자와 소리를 잇는 일이다. 아이는 글자를 보고 그것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하나하나 짚어 가며, 더듬더듬 단어를 조립한다.
이 더듬거림은 답답해 보여도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의 뇌 속에서 글자와 소리와 의미를 잇는 길이 닦이기 때문이다. 이 길이 충분히 다져져야 비로소 빠르고 매끄러운 읽기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읽기를 배우는 아이에게 소리 내어 또박또박 짚게 하는 일은, 답답함을 견디는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풀어 읽기에서 통째 읽기로
처음에는 모든 단어를 소리로 풀어 조립하던 아이가, 점차 자주 만나는 단어들을 통째로 알아보기 시작한다. 한 단어, 또 한 단어, 통째로 읽는 단어가 늘어 간다.
이 전환이 충분히 일어나면, 아이는 더 이상 글자를 푸는 데 힘을 쓰지 않고 의미에 마음을 쓸 수 있게 된다. 읽기의 진짜 즐거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열린다.
> 글자를 푸는 데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소리 내어 읽어 주기의 힘
아이가 아직 스스로 읽지 못할 때, 곁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일에는 깊은 뜻이 있다.
그 목소리를 통해 아이는 글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야기가 어떤 가락으로 펼쳐지는지를 먼저 익힌다. 글자를 읽기 전에 글의 음악을 먼저 듣는 셈이다.
또한 함께 책을 보는 그 시간은 읽기를 따뜻한 기억과 묶어 준다. 읽기가 즐거운 것이라는 느낌, 이 느낌이야말로 평생 읽는 사람을 길러 내는 가장 든든한 토양이다.
6. 묵독과 속독, 그 진실
오늘 우리는 대부분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읽는다. 이른바 묵독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조용한 읽기는 인류에게 늘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에는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용히 속으로만 읽는 사람을 보고 신기해했다는 옛 일화도 있다.
시간이 흐르며 묵독이 점차 자리를 잡았고, 오늘날 우리는 머릿속으로만 글을 따라간다. 그런데 정말로 머릿속이 완전히 조용할까.
많은 사람이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함께 따라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른바 내면의 목소리다.
읽기가 본래 소리와 깊이 얽혀 발달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소리 내지 않고 읽을 때에도 우리 뇌가 소리와 관련된 처리를 어느 정도 함께 굴린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속독은 정말 가능한가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속독이다. 페이지를 사진 찍듯 훑어 엄청난 속도로 읽어 낸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직하게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읽기에는 두 가지가 늘 함께 간다. 글자를 알아보는 속도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깊이다.
눈이 글자 위를 빠르게 지나가게 만드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속도를 크게 올리면, 대개 이해와 기억이 함께 옅어지는 대가를 치른다.
빠르게 보는 것과 깊이 이해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이 한 번의 멈춤에서 또렷이 붙잡을 수 있는 글자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이 신체의 한계를 마법처럼 뛰어넘기는 어렵다.
물론 익숙한 주제의 쉬운 글은 빠르게 읽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아는 내용이 많아 뇌가 빈칸을 빠르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설고 복잡한 글을 마법처럼 빠르게, 그러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알맞은 속도는 달라진다.
> 빠르게 읽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빠르게 읽고 무엇을 천천히 읽을지 아는 분별이다.
7. 깊은 읽기와 디지털 읽기
종이책을 읽을 때와 화면으로 읽을 때,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읽고 있을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깊은 읽기"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자. 깊은 읽기란 단지 글자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천천히 음미하고, 앞뒤를 연결하고, 떠오른 생각을 곱씹고, 때로는 멈춰 자기 경험과 견주어 보는 읽기다.
한 편의 긴 글에 푹 잠겨 사색하는 그런 읽기 말이다.
디지털 환경의 읽기는 이와 결이 다른 경우가 많다. 화면 위의 글은 흔히 짧고, 곁에는 늘 다른 알림과 링크가 손짓한다.
우리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보다 빠르게 훑고, 옆길로 새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읽기 쉽다. 이런 읽기를 흔히 훑어 읽기, 또는 가볍게 건너뛰는 읽기라고 부른다.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여기서 한쪽을 무조건 옳고 다른 쪽을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두 가지 읽기는 서로 다른 쓸모를 가진다.
| 읽기 방식 | 잘 맞는 상황 | 주의할 점 |
| --- | --- | --- |
| 깊은 읽기 | 긴 글, 복잡한 사고, 사색 | 시간과 집중이 필요함 |
| 훑어 읽기 | 정보 검색, 빠른 확인 | 깊은 이해에는 부족할 수 있음 |
필요한 정보를 재빨리 찾아야 할 때는 훑어 읽기가 효율적이다. 그러나 한 편의 깊은 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색하려면 깊은 읽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깊은 읽기에 머무는 힘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주의력을 둘러싼 걱정과 희망
화면은 우리의 주의를 잘게 쪼개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다. 알림 하나, 링크 하나가 끊임없이 다른 곳을 가리키며, 우리를 한 글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한 문단을 다 읽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손이 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깊은 읽기에 익숙했던 사람조차 이 흐름에 휩쓸리기 쉽다.
그러나 이것이 절망할 일만은 아니다. 뇌의 유연함은 양쪽으로 작동한다. 깊은 읽기의 회로가 약해질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단련하면 되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제안하는 것은 균형이다. 빠르게 훑는 읽기와 천천히 잠기는 읽기를 모두 의식적으로 연습하자는 것이다.
특히 깊은 읽기는 마치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꾸준히 쓰면 단단해진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종이와 화면, 손과 몸의 차이
같은 글이라도 종이로 읽을 때와 화면으로 읽을 때, 우리의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종이책은 손에 무게가 있고, 두께가 있고, 지금 어디쯤 읽고 있는지가 손끝으로 느껴진다.
이 작은 신체 감각이 의외로 큰 역할을 한다. 책의 어느 대목이 왼쪽 위 즈음에 있었다는 공간 기억이, 나중에 그 내용을 떠올리는 실마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화면은 이런 단서를 거의 주지 않는다. 모든 페이지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글 속에서 자기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이것이 화면 읽기가 무조건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깊이 새기고 싶은 글이라면, 손에 잡히는 그릇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8. 우리는 왜 읽은 것을 잊는가
한 가지 쓸쓸한 진실이 있다. 우리는 읽은 것의 대부분을 잊는다. 어제 읽은 기사, 지난달에 읽은 책, 작년에 밑줄까지 그어 가며 읽은 그 문장들이 대부분 흩어져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망각은 뇌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기능에 가깝다. 모든 것을 다 붙잡아 두는 뇌는 정작 중요한 것을 골라내지 못한다.
뇌는 한 번 스친 정보를 잘 붙들지 않는다. 그것이 거듭 되돌아오고, 다른 아는 것과 이어지고, 어떤 감정이나 쓸모와 묶일 때, 비로소 기억은 자리를 잡는다.
잊지 않으려면
그래서 많이 읽는 것보다 깊이 읽는 것이, 잊지 않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 빠르게 한 번 훑고 지나간 글은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곧 지워진다.
인상적인 대목에서 잠시 멈춰 자기 말로 되새기거나, 며칠 뒤 다시 떠올려 보거나, 누군가에게 그 내용을 들려줄 때, 글은 비로소 우리 안에 머문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 잊더라도, 좋은 글은 우리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정확한 문장은 잊어도, 그 글이 남긴 결은 남는다.
> 우리는 읽은 것을 대부분 잊는다. 그러나 좋은 읽기는, 기억보다 깊은 곳에서 우리를 바꾼다.
9. 읽기는 공감을 키운다
읽기의 효과 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어쩌면 읽기가 우리를 더 잘 공감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한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안에서부터 따라간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직접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늘 자기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나와 전혀 다른 처지의 사람,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내면을 잠시나마 빌려 살아 본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관점에 반복해서 들어가 보는 경험이, 현실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충분히 그럴듯하다.
물론 책 한 권이 사람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수많은 인물의 마음을 빌려 살아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지도 모른다.
사실을 읽을 때와 이야기를 읽을 때
흥미롭게도 우리가 사실을 읽을 때와 이야기를 읽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뭇 다른 듯하다.
사실을 읽을 때 우리는 정보를 받아 자기 지식의 선반에 정리한다. 차갑고 또렷하게, 옳고 그름을 따져 가며 읽는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한 인물과 함께 두려워하고 함께 바란다. 그가 위험에 처하면 마음이 졸아들고, 그가 사랑을 잃으면 우리도 한 줌의 슬픔을 나눠 가진다.
이야기는 우리 머리뿐 아니라 마음까지 빌려 간다. 그래서 잘 쓰인 이야기는 어떤 논설보다도 사람을 깊이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 읽기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우리 바깥의 삶으로 데려다준다.
10. 더 잘 읽기 위한 작은 태도
읽기가 발명된 곡예라면, 우리는 그 곡예를 더 잘 다듬을 수 있다. 거창한 비법이 아니라, 읽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몇 가지 태도를 제안해 본다.
- 가끔은 느리게 읽기. 모든 글을 빠르게 읽을 필요는 없다. 좋은 글은 천천히 음미할 때 더 깊이 남는다.
- 멈추고 생각하기. 인상적인 문장을 만나면 잠시 멈춰, 그것이 내 경험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떠올려 본다. 이 멈춤이 깊은 읽기의 핵심이다.
- 방해를 줄이기. 깊이 읽고 싶을 때는 알림을 잠시 끄고, 한 편의 글에 온전히 머무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 다양하게 읽기. 정보를 위한 읽기와 사색을 위한 읽기, 빠른 읽기와 느린 읽기를 두루 경험하면 읽기의 근육이 고르게 자란다.
- 이야기를 읽기. 정보뿐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빌려 보는 가장 좋은 연습이다.
- 자기 말로 되새기기. 읽은 것을 잠시 덮고 자기 말로 요약해 보면, 흩어질 뻔한 내용이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 아이에게 읽어 주기. 곁의 아이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일은, 한 사람의 평생 읽기를 키우는 가장 따뜻한 씨앗이다.
마치며: 글자 너머로 가는 다리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종이 위의 작은 모양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는가.
이제 우리는 그 다리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진화가 미리 깔아 준 길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뇌의 여러 부품을 모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 지어 올린 다리다.
우리는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지만, 배움을 통해 읽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건너,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가닿는다.
점토판에 셈을 새기던 손에서 시작해, 두루마리를 풀고, 책장을 넘기고, 이제 화면을 쓸어 넘기기까지. 글자를 담는 그릇은 바뀌어 왔지만, 글자가 의미가 되는 그 마법은 한결같았다.
지금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방금 그 마법을 한 번 더 부린 것이다. 검은 모양들 사이를 지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생각이 당신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것이 읽기가 인류에게 준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선물이다.
생각할 거리
- 읽기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배워서 발명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은, 교육과 배움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
- 당신의 읽기는 최근 얼마나 "깊은 읽기"였고 얼마나 "훑어 읽기"였는가. 그 균형은 어떠한가.
- 가장 최근에 한 인물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 이야기는 무엇이었는가. 그 경험은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 만약 인류가 끝내 문자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앎과 기억과 마음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참고 자료
- Encyclopaedia Britannica, "Reading" 및 "Literacy" 항목, britannica.com
- Encyclopaedia Britannica, "Writing" 및 "Alphabet" 항목, britannica.com
- Encyclopaedia Britannica, "Dyslexia" 항목, britannica.com
- Nature, 읽기·문해의 뇌 처리 관련 연구 기사, nature.com
- 미국 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NCBI)와 PubMed의 읽기 신경과학 및 시각 단어 인식 관련 문헌, ncbi.nlm.nih.gov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언어·마음·인지 관련 항목, plato.stanford.edu
- 매리언 울프 등 읽는 뇌를 다룬 대중 과학 저술(읽는 뇌의 작동 원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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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추고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당신의 눈앞에는 검은 선과 곡선의 작은 모양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