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 그 글이 실제로 다루는 것
- 에릭슨이 실제로 주장한 것, 그리고 하지 않은 주장
- 매크나마라 메타분석, 그리고 2018년 정오표
- 반박, 재반박, 그리고 재현 실패
- 유전 쪽에서 온 가장 불편한 증거
- 그렇다면 정직하게 남는 주장은 무엇인가
- 통제 가능한 부분만 최적화하기
- 마치며 — 통제 밖의 변수를 인정할 때 통제 안의 것이 보인다
- 참고 자료
들어가며 — 그 글이 실제로 다루는 것
2026년 7월 26일, GeekNews에 "재능이라는 허상"이 올라와 56포인트에 댓글 12개를 받았습니다. 원문은 곽지욱 님의 개인 블로그 글입니다.
제목만 보면 재능과 연습을 둘러싼 심리학 논쟁을 다루는 글 같습니다. 실제로는 아닙니다. 원문은 주니어 개발자의 커리어 불안을 다룬 개인 에세이이고, 인용된 연구는 한 편도 없습니다. 논지는 이렇습니다 — 많은 주니어가 "개발 재능"을 어려운 기술 문제를 즐기고 코드를 잘 짜는 특정 유형으로만 정의하고, 자신이 거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만둔다. 그런데 실제로 성과를 내는 개발자들은 문서화, 커뮤니케이션, 도메인 이해, 사용자 관점, 직군 간 번역 같은 다른 능력으로 일한다. 저자는 이걸 포커 비유로 설명하면서, 모두가 같은 로열 플러시를 노리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패를 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확인해 본 바로는 이 글은 Hacker News에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에세이로서는 괜찮은 글입니다. 문제는 이런 글이 "재능은 허상"이라는 더 강한 주장으로 요약되어 유통될 때입니다. 그 강한 주장은 실제 문헌이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적 연습 연구는 재능이 무관하다고 말한 적이 없고, 최근 20년의 데이터는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역시 재능이 전부"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문헌을 끝까지 따라가면 남는 주장은 더 좁고, 그래서 더 쓸모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 좁은 주장까지 가 보겠습니다.
에릭슨이 실제로 주장한 것, 그리고 하지 않은 주장
출발점은 Ericsson, Krampe & Tesch-Römer(1993), Psychological Review 100권 3호 363~406쪽입니다.
연구 1의 설계는 이렇습니다. 서베를린 음대 바이올린 전공생을 교수 추천에 따라 세 집단으로 나눕니다 — 국제 솔리스트 후보인 "최상위", 성별과 나이를 맞춘 "상위", 그리고 상대적으로 성취가 낮은 "음악 교사" 지망 집단. 각 집단 10명씩입니다. 여기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방송 교향악단의 중년 프로 연주자 10명이 검증용으로 붙습니다. 연습 시간은 회고적 자기 보고로 추정하고, 7일간의 연습 일지로 교차 검증했습니다.
핵심 숫자는 18세까지 누적한 혼자 연습 시간입니다.
- 최상위: 7,410시간
- 상위: 5,301시간
- 음악 교사 집단: 3,420시간
연구 2의 피아노 전공에서는 전문가 12명이 7,606시간, 아마추어 12명이 1,606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를 하나 정리하고 갑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표현은 에릭슨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44쪽짜리 논문 전체에서 1만 시간이라는 숫자는 종합 논의부에 딱 한 번, 최상위 집단이 20세까지 축적한 연습량을 지나가듯 서술하는 문장에 등장합니다. 법칙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임계값으로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법칙이라는 프레임은 15년 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2008)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하나. 에릭슨 팀은 재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논문 안에서 그들은 키처럼 명백히 유전적인 요인은 인정하고, 정서성이나 활동 수준의 유전적 개인차가 의도적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이들의 주장은 "재능은 없다"가 아니라, 전문가 수행의 주요 사실들을 재능의 희소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중화 과정에서 사라진 건 이 조심스러움입니다.
그리고 표본 크기를 다시 봅시다. 집단당 10명입니다. 심리학에서 1993년의 표본 규모로는 이례적이지 않지만, 30년 뒤에 이 주장이 견딜 수 있는 무게는 아닙니다.
매크나마라 메타분석, 그리고 2018년 정오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반론은 Macnamara, Hambrick & Oswald(2014), Psychological Science 25권 8호 1608~1618쪽입니다. 88개 연구, 111개 표본, 157개 효과 크기, 총 N은 11,135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널리 인용되는 숫자들은 2018년 정오표에서 이미 수정되었습니다. 저자들이 종속적 효과 크기 보정을 잘못 적용한 것을 발견하고 Psychological Science 29권 7호 1202~1204쪽에 정오표를 냈습니다. 두 판본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 영역 | 2014년 원 논문 | 2018년 정오표 |
|---|---|---|
| 전체 | 12% | 14% |
| 게임 | 26% | 24% |
| 음악 | 21% | 23% |
| 스포츠 | 18% | 20% |
| 교육 | 4% | 5% |
| 전문직 | 1% 미만(유의하지 않음) | 1% |
저자들은 이 수정이 결론의 실질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다만 인터넷에 도는 "12퍼센트"는 기술적으로는 대체된 숫자이니, 인용한다면 14퍼센트를 쓰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표에서 읽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분산 설명력이 14퍼센트라는 것은 나머지 86퍼센트가 다른 요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86퍼센트에는 유전, 시작 연령, 코칭의 질, 기회, 측정 오차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연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연습만으로는 개인차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영역별 편차가 결론보다 중요합니다. 게임과 음악처럼 규칙이 안정적이고 피드백이 즉각적인 영역에서는 연습이 20퍼센트대를 설명하지만, 교육과 전문직에서는 5퍼센트와 1퍼센트로 떨어집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규칙이 계속 바뀌고, 피드백이 지연되며, 성과 정의가 조직마다 다른 영역입니다. 음악보다는 전문직 쪽입니다. 이건 연습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영역에서는 연습의 총량보다 연습의 대상 선택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장 냉정한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연습량을 회고적 기억이 아니라 일지나 컴퓨터 로그처럼 객관적으로 측정한 하위 집합만 보면, 설명력은 5퍼센트로 떨어집니다. 회고적 자기 보고가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 주는 수치입니다.
반박, 재반박, 그리고 재현 실패
에릭슨은 반박했습니다. Ericsson(2016),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11권 3호 351~354쪽에서, 메타분석이 "의도적 연습"을 너무 느슨하게 코딩했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든 예는 단체 활동, TV로 경기 시청, 놀이와 시합까지 종목 관련 활동이면 다 합산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의한 의도적 연습은 약점을 겨냥해 설계되고 즉각적 피드백이 따르는 개별 활동인데, 그것과 "종목에 쓴 시간 총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당한 지적입니다.
매크나마라 팀의 재반박(2016, 같은 호 355~358쪽)은 두 갈래였습니다. 에릭슨이 문제 삼은 복합 측정치를 제외하고 다시 계산해도 스포츠 영역 설명력이 18퍼센트에서 17퍼센트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에릭슨 본인의 과거 논문들도 의도적 연습을 교사 설계 활동으로만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가장 무거운 결과는 논쟁 자체가 아니라 재현 시도였습니다. Macnamara & Maitra(2019), Royal Society Open Science 6권 8호 190327은 에릭슨의 1993년 연구를 이중 맹검 절차로 다시 수행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39명(각 집단 13명씩)입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누적 의도적 연습량이 숙련도 등급에 대응한다는 핵심 발견이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상위 연주자 다수의 혼자 연습 누적량이 상위 집단의 평균보다 적었습니다. 원 논문의 순서가 뒤집힌 것입니다. 혼자 연습과 수행의 관계는 에타제곱 0.26, 즉 분산의 26퍼센트였는데, 저자들은 이 값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수행 수준이 연습량 차이로 대체로 설명된다"는 원래의 주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문헌의 상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의도적 연습은 실재하는 효과를 갖고, 그 크기는 영역에 따라 대략 5퍼센트에서 26퍼센트 사이입니다. 그건 상당한 효과이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닙니다. "연습이 전부"도 "재능이 전부"도 데이터가 지지하지 않습니다.
유전 쪽에서 온 가장 불편한 증거
연습 옹호론에 가장 아픈 결과는 Mosing 외(2014), Psychological Science 25권 9호 1795~1803쪽에서 나왔습니다. 스웨덴 쌍둥이 10,500명 표본입니다.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첫째, 연습량 자체가 4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유전적입니다. 얼마나 연습하는가는 순수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상당 부분 물려받은 성향입니다. 둘째,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일란성 쌍둥이 쌍 안에서 연습량이 다른 경우를 비교했을 때 더 많이 연습한 쪽이 안정적으로 더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유전과 가정 환경을 사실상 통제한 가장 강력한 설계에서, 연습의 인과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연구에는 정당한 한계 반론이 있고, 앞서 본 에릭슨의 지적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표본이 일반 인구 기반 쌍둥이이지 음악원 수준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구간에서 인과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전문가 구간까지 일반화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건 억지 방어가 아니라 실제 범위 제한입니다.
그래도 남는 함의가 있습니다. "더 연습하면 된다"는 조언의 대상이 되는 그 연습 성향 자체가 개인차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의지력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라고 가정하고 세운 계획은, 그 가정 때문에 자주 실패합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남는 주장은 무엇인가
여기까지 오면 "재능은 허상"이라는 명제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대신 더 좁고 더 방어 가능한 주장이 남습니다. 초기의 작은 차이는 능력 자체보다 기회와 피드백의 경로를 통해 복리로 불어납니다.
가장 깨끗한 사례는 스포츠의 상대 연령 효과입니다. 같은 선발 연도 안에서 1월생과 12월생은 유소년기에 최대 1년 가까운 발달 격차가 나고, 그 격차가 선발에 반영되고, 선발된 아이는 더 좋은 코치와 더 많은 경기 시간을 받고, 그 결과 실제로 더 잘하게 되어 다시 선발됩니다. 재능이 결과를 만든 게 아니라 선발 시스템이 재능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 현상의 존재는 캐나다 주니어 아이스하키에서 시작해 여러 종목에서 반복 확인되었지만, 저는 이 글을 쓰면서 1985년 원 논문의 구체적 월별 분포 수치를 1차 출처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방향만 인용하고 숫자는 쓰지 않겠습니다.
숫자까지 확인한 사례는 다른 쪽에 있습니다. Jean Côté의 스포츠 참여 발달 모델(DMSP)은 6세에서 12세를 표집기, 13세에서 15세를 특화기, 16세 이상을 투자기로 나눕니다. 그리고 Wall & Côté(2007), Physical Education and Sport Pedagogy 12권 1호 77~87쪽은 엘리트 유소년 하키 선수 12명을 추적해 흥미로운 결과를 냅니다. 모델의 단순 예측 — 중도 포기자가 종목을 덜 경험했고 즐거운 놀이 시간이 적었을 것 — 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한 선수와 그만둔 선수는 종목 경험 폭과 놀이 시간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유의하게 다른 항목은 딱 하나였습니다. 중도 포기 집단은 재미없고 성과만을 겨냥한 오프아이스 훈련(웨이트, 러닝)을 훨씬 이른 나이에 시작했습니다 — 평균 11.75세 대 13.8세, p 값 0.01 미만. 표본 12명짜리 연구이니 무게를 과하게 싣지는 말아야 하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조기 특화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이 제거된 훈련을 언제 도입했는가입니다.
통제 가능한 부분만 최적화하기
위의 문헌에서 나오는 실행 항목은 "더 많이 연습하라"가 아닙니다. 그건 방금 본 대로 상당 부분 통제 밖입니다. 통제 가능한 것은 네 가지입니다.
연습의 대상을 고르십시오. 전문직 영역에서 연습의 설명력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할 줄 아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만든 것을 나열해 보고, 그중 시작할 때 어떻게 만들지 몰랐던 것이 몇 개인지 세어 보십시오. 그 비율이 낮으면 경력은 쌓이지만 실력은 정체됩니다.
피드백 지연을 줄이십시오. 게임과 음악의 설명력이 높은 이유는 잘못하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에서 이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이미 다 알려져 있습니다. 테스트, 짧은 배포 주기, 코드 리뷰, 그리고 자기 예측을 기록해 두고 나중에 대조하는 습관입니다. 설계 결정을 내릴 때 "이 선택이 6개월 뒤에 어떻게 아플 것인가"를 한 줄로 적어 두고, 6개월 뒤에 실제로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루프가 닫힙니다.
기회 쪽을 설계하십시오. 상대 연령 효과가 알려 주는 건 능력이 아니라 배치가 복리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개인 수준에서 이건 어떤 팀, 어떤 프로젝트, 어떤 리뷰어 앞에 서느냐의 문제입니다.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의 3년 뒤 격차는 대개 연습량이 아니라 그 3년 동안 어떤 문제를 만질 기회가 있었는지에서 갈립니다. 조직 수준에서는, 좋은 프로젝트가 이미 잘하는 사람에게만 반복 배정되는 구조가 있는지 점검할 일입니다.
즐거움이 제거된 훈련을 너무 일찍 도입하지 마십시오. 하키 연구가 시사하는 부분입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강도는 총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줄입니다. 연습량이 상당 부분 성향의 산물이라면, 그 성향을 소진시키지 않는 것이 총량 관리의 핵심입니다.
원문 에세이가 옳게 짚은 부분도 여기서 만납니다. 개발자로서의 "재능"을 어려운 알고리즘 문제를 즐기는 능력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앞의 표에서 본 영역 구분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규칙이 고정된 좁은 게임이 아니라, 성과 정의가 맥락마다 달라지는 넓은 영역입니다. 그런 영역에서 단일 축의 재능 개념은 측정 도구로서 부정확합니다.
마치며 — 통제 밖의 변수를 인정할 때 통제 안의 것이 보인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에릭슨의 1993년 연구는 집단당 10명 표본이고, 1만 시간이라는 법칙을 주장한 적이 없으며, 재능의 존재를 부정한 적도 없습니다.
- 매크나마라 메타분석(N은 11,135명)에 따르면 의도적 연습의 분산 설명력은 전체 14퍼센트이고, 게임과 음악은 20퍼센트대, 교육과 전문직은 5퍼센트와 1퍼센트입니다. 연습량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면 5퍼센트로 떨어집니다.
- 2019년의 이중 맹검 재현 시도는 원 연구의 핵심 발견을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 스웨덴 쌍둥이 10,500명 연구에서는 연습량 자체가 4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유전적이었고, 일란성 쌍둥이 쌍 안에서 더 연습한 쪽이 안정적으로 더 낫지 않았습니다.
- 따라서 정직한 주장은 "재능은 허상"이 아니라, 초기 차이가 기회와 피드백을 통해 복리로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이 김빠진다면, 그건 우리가 "노력하면 된다"와 "타고나야 한다"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둘 다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게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는 계획은 실패하면서 자책까지 남기지만, 범위를 정확히 알면 남은 레버에 힘을 몰아줄 수 있습니다. 남은 레버는 연습의 총량이 아니라 그 구조입니다 — 무엇을 연습할지, 얼마나 빨리 틀렸다는 걸 알 수 있게 할지, 그리고 어떤 문제 앞에 서 있을지.
참고 자료
- GeekNews — 재능이라는 허상 (2026-07-26, 56P)
- 곽지욱 — 재능이라는 허상 (원문, 개인 에세이, 연구 인용 없음)
- Ericsson, Krampe & Tesch-Römer (1993) —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3)
- Macnamara, Hambrick & Oswald (2014) —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Psychological Science 25(8)
- Corrigendum (2018), Psychological Science 29(7) — 수정된 수치
- Ericsson (2016) — 메타분석에 대한 반박,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11(3)
- Macnamara, Hambrick & Moreau (2016) — 재반박, 같은 호
- Macnamara & Maitra (2019) — 1993년 연구 재현 시도, Royal Society Open Science 6(8)
- Mosing 외 (2014) — Practice Does Not Make Perfect, Psychological Science 25(9), 스웨덴 쌍둥이 10,500명
- Wall & Côté (2007) — 중도 포기와 투자로 이어지는 발달 활동, Physical Education and Sport Pedagogy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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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6일, [GeekNews에 "재능이라는 허상"](https://news.hada.io/topic?id=31828)이 올라와 56포인트에 댓글 12개를 받았습니다....